땅이 갈라진 검고 깊어 보이는 틈새가 화면의 중심에 있다. 지상에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의 흔들림이 느껴지고 긴 나무는 휘어져 있다. 하늘의 구름으로 보아 비가 내렸거나 혹은 비가 내리기 전의 을씨년스럽고 음산한 풍경이다. 두 명의 남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이 틈새를 발견하고 한 남자는 개를 데리고 그 틈새를 살피고 있다. 전체 그림의 크기와 비교해서 말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지만 말의 갈기와 역동적인 자세가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낭만주의 회화의 시작점에 위치한 이 그림은 이전의 회화가 가졌던 인물중심으로부터 과감하게 풍경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학자들은 여기가 바르비종파의 산실 ‘퐁텐블로’숲이라고 하지만 Huet가 그린 숲과 풍경은 바르비종파의 ‘퐁텐블로’숲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비종파들이 그린 숲은 수평선을 중심으로 그 위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면 이 숲은 수평선을 화면 가운데 놓고 위 · 아래를 동일한 비중으로 묘사하려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평의 밑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폴 위에(Paul Huet 1803 – 1869)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Bonaparte at the pont d’Arcole를 그린 Antoine-Jean Gros의 영향과 Pierre-Narcisse Guérin의 영향을 받아 그림 공부를 시작했는데 Antoine-Jean Gros의 화실에서 당시 영국의 풍경 화가였던 Richard Parkes Bonington을 만나게 된다. 20대의 Huet에게 영국의 풍경화는 매우 큰 감명을 주었고 이러한 탓에 Huet는 당시의 미술경향이었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거부하고 풍경화가로 경도되게 만든 원인이 된다. 사실 당시 영국은 이미 John Constable이라는 걸출한 풍경화가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Huet의 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Huet가 50대 후반의 일이었는데 이미 파리의 화단은 바르비종파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이미 낭만주의는 쇠퇴하여 초기의 디오니소스적인 감상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자유분방함(이성적 계몽주의에 반발하는)은 스러지고 인간의 감각적 자극에 의존하는 인상주의 회화로의 전이되는 그 시절 Huet는 초기의 낭만주의 회화가 가지고 있던 격정과 분노, 격렬함, 인간 내부로의 관심 등이 그대로 살아있는 회화를 이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Huet의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의 풍경화, 특히 John Constable의 영향을 받아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는 파도와 그 위에 펼쳐져 있는 누런빛의 하늘이 주조를 이룬다. 이런 화풍은 당연히 당대의 비평가들(이미 낭만주의는 퇴조하고 인상파로 옮아가는 시기의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지만 Huet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 역시 Huet가 가지고 있던 모든 특성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으로서 인간의 深淵에 존재하는 갈등을 숲과 동굴, 하늘과 바람이라는 대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Huet는 정치적 성향도 강하여 1830년 7월 혁명에 참여하였다. 7월 혁명은 1824년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샤를 10세는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16세의 동생이었는데 즉위하자마자 입헌정치를 인정하지 않고, 구제도(舊制度)에로의 복귀를 원하여 극단적인 반동정책(反動政策)을 실시하였다. 1830년 7월 25일 소위 7월 칙령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출판 자유의 정지, 하원의 해산, 선거자격의 제한 등을 포함하고 있어, 혁명의 기폭제(起爆劑)가 되었다. 이 혁명에 30대의 열혈 청년 Huet는 공화파로 혁명에 참여하였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深淵은 화면의 중심에 있는 검은 동굴처럼 불확실함인데 그림의 두 명의 남자 중 한 남자는 동굴 입구에서 아래쪽 동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사냥개가 주인을 말리지만 남자는 동굴로 들어갈 태세다. Huet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인간 내면에의 관심이 한 남자로 대신하여 이렇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혹은 Huet가 보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땅이 갈라진 틈으로 관심을 보이는 저 남자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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