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면 사천경찰서장.
11월이 다가도록 볕이 봄날처럼 따뜻하여 올겨울은 추위 없이 넘기나 했는데, 12월 들어서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겨울이 따뜻하리라는 예보 때문에 두터운 패딩점퍼를 만드는 회사들에 비상이 걸렸다던데, 기우에 그치나 보다. 명실상부, 과연 그 이름이 겨울이라 날씨 역시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즈음에는 사람들이 새해 벽두에 스스로 다짐했던 각오와 약속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증자는 매일 세 가지 항목[忠, 信, 習]을 두고 자신을 점검했다지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기껏 세밑에 이르러서야 겨우 반성의 기지개를 켠다. 올 한 해 나는 다짐했던 바를 얼마나 이루었는가, 작년에 비해 약간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스스로 되돌아보지만 아무리 짚어 봐도 실천으로 지켜낸 다짐이 없고 사람됨에도 별로 나아진 바가 없다. 해가 바뀌면 조금 나아지려니, 철이 좀 나려니, 내내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이윽고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데도 여전히 철없기는 마찬가지다.

노자(老子)에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이란 구절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경에 빠지니 마음에 간직하는 만 못하다”는 뜻이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말, 실천하지 못하는 약속이나 다짐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러시안 제스처’란 말이 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한 사람이 어떤 친구를 돕자는 얘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를 도울 방법과 자기 역할에 대해 한껏 부풀리며 방정을 떨지만 이튿날 아침이면 무슨 일이 있었던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러시아인들의 술버릇을 비꼬는 말인데, 어찌 러시아인에 한정된 얘기이겠는가. 길바닥 물웅덩이 속의 물고기에게는 한 달 후에 강물을 끌어주겠다는 약속보다는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더 절실한 법, 역시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고 실천이다.

한 해를 돌아보니 안자(晏子)의 말씀이 옳았다. “위자상성 행자상지(爲者常成 行者常至), 뭔가를 꾸준히 하는 자는 반드시 이루는 것이 있고,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자는 늘 이르는 곳이 있다.”

말재주 자랑하는 사람이야 입으로 만리장성도 쌓겠지만, 우공(愚公)은 삽 한 자루를 들고 집 앞의 산을 파내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산을 옮기고야 말았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고, 둔한 말도 열흘을 쉬지 않고 걸으면 천리를 간다고 했다. 비록 하루에 천리를 가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네 인생이 어디 하루로 끝나는가. 천천히 걸어도, 부지런히 걷기만 한다면 천릿길을 왜 못 갈 것이며, 아득해 보이는 저 먼 산꼭대기인들 왜 못 오를 것인가. 아직 금년이 스무날이나 남았다. 가야 할 곳이 있고 거기로 가기로 했다면 마지막 날까지 계속해서 가보자. 행자상지(行者常至),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은 늘 그곳에 이를 수 있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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