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세상읽기]무용지용(無用之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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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세상읽기]무용지용(無用之用)
  • 백승면 사천경찰서장
  • 승인 2014.11.1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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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요즘 주말의 산에는 오색의 나뭇잎에다 등산객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더해져 팔레트에 온갖 물감을 다 짜서 섞어놓은 듯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단풍으로 짙어가는 산을 혼자 걸으며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를 듣고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받는 상쾌함도 좋지만, 거기에 더해 호젓한 산길을 몇 시간이고 같이 걸으며 산 아래에서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속마음을 온전히 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좋은 동행이 없다면 산행의 즐거움에 미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을 것이다.

산 아래 현실의 세상에서 우리는 내내 ‘이익’을 얘기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좀 더 많이 가지기를 욕망하며 산다.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을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옆의 동료와 차 한 잔에 미소를 나눌 여유도 없고, 친구에게 소식을 묻는 전화 한 통 못한 채 훌쩍 하루를 보낸다. 여유를 버리고 이익에만 몰두해 사는 현실은 한때 스스로 소중하게 여겼던 꿈들, 진정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많은 가치들을 차츰 잊게 만든다.

하루하루 누리고 즐기는 것 없이 오로지 갖기만을 소원하는 각박한 삶이 언젠가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울타리가 될 줄은 아예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는 여유와 꿈, 사랑과 추억 같은 것들이야 삶에서 꼭 필요하지도 않고 돈만 있으면 주변에 사람 없이 살아도 불편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잠시 장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는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지 비로소 쓸모 있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네. 가령 저 땅이 아무리 넓고 커도 사람이 쓰는 것은 걸을 때 발을 딛는 좁은 공간일 뿐이네. 그렇다고 발 디딘 곳만 남겨두고 그 나머지 땅을 모두 파내어 황천까지 이르게 한다면, 사람들이 밟고 서 있는 그 땅이 쓸모 있을 수 있겠는가?”

“그 땅은 쓸모가 없을 것이네.”

“그렇다면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또한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 ‘외물편’에서)


살다보면 평소에 별로 쓸모없다고 여겼던 어떤 것이 진정 소중한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현실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거리가 필요하다. 산은 그러기에 넉넉한 거리를 제공하고 친구는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떠올릴 여유를 준다.

장자의 말처럼, 지금껏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겼던 어떤 것이 진정 쓸모 있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면,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말에 단풍이 물든 산으로 가을 산행 한 번 떠나보지 않겠는가.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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