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갱의 탄생(Die Geburt)1896
1848년 파리에서 출생한 고갱(Paul Gauguin)은 정치부 신문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을 피해 남미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이주해서 신문사를 차리기로 계획하고 가족을 데리고 페루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페루로 가는 여객선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폴 고갱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페루 리마에서 불행하게 시작되었다.

고갱의 가족은 1854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오를레앙에 정착하게 된다. 1865년 17세 되던 해 고갱은 선박의 항로를 담당하는 수습 도선사(사관후보생)가 되어 상선(商船)을 타고 라틴아메리카와 북극 등 지구촌 여러 곳을 여행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부터 그의 삶과 예술 전체를 관통하는 이국적 느낌이 형성되게 된다.

고갱은 일생동안 여러 번 타히티와 파리를 오갔고 마침내 영원히 타히티 섬으로 돌아갈 것으로 결심하였고 1895년 6월 말 프랑스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그가 파리에 있던 시절 열렸던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훗날 피카소 등 젊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 탄생(Die Geburt)은 타히티 파페에테에로 돌아 온 이듬해 그려진 것으로서 그의 삶 전체에 드리워진 병마와 고독의 반작용으로서 나타난 그림이다.

원시적인 색감과 원주민의 강렬함 그리고 누워있는 산모를 마리아로 만든 아기의 할로(Halo)는 고갱이 가진 정신세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고갱은 가끔씩 자신조차도 예수로 표현하곤 했는데 당시 그가 살았던 시기의 타이티에서라면 어쩌면 그는 예수처럼 월등한 존재로 자신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멀리 보이는 소 등은 여기가 마구간, 즉 예수가 태어나신 곳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동시에 화면 중앙에 서 있는 강렬한 붉은 기둥과 원색적인 꽃과 인물들의 묘사는 기존의 화면위에 그가 살았던 곳의 이미지를 레이어(층:層)처럼 중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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