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은, “하늘의 일은 치우침이 없다”는 뜻일 게다.

삼천포에서 매일 누리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아침 운동이다. 새벽 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용두공원 초입에서 시작하여 와룡저수지를 거쳐 청룡사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는 한 시간 남짓 동안에는 논밭도 지나게 되어 황금빛 들판에 이삭이 여물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침내 긴 여름이 가고 ‘결실의 계절’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비록 내 농사는 아니지만 이 순간만큼은 가을걷이를 앞둔 농부처럼 넉넉한 마음이 된다.

하지만 더러 안타까움도 없지 않은데, 한눈에 보아도 잡초가 무성하여 수확이 형편없을 듯한 논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다. 비가 내리거나 가뭄이 들거나, 하늘은 사사로운 치우침이 없다. 김씨 논에 비를 뿌리면서 옆의 이씨 논에는 비를 내리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까. 결국 수확의 차이는 하늘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탓해야 하리라. 거름을 실하게 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때맞춰 물을 대고 잡초를 뽑아내는 농부의 땀방울에서 수확의 차이가 생겨날 뿐, 하늘은 무관하다. 그러니 하늘을 탓할 필요가 없고 탓한들 얻을 것도 없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인연(因緣)’이란 말을 이렇게 풀이한다. “‘인(因)’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해서 외적인 것이 ‘연(緣)’이다. 내적 조건인 ‘인’과 외적 조건인 ‘연’이 결합해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다시 말해서 ‘인’이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학습하고 실천하면서 스스로 자기 속에 축적해온 ‘내공’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인’만 가지고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이 닿아야 한다. ‘인’을 축적하였으나 ‘연’이 닿지 않으면 일이 성취되지 않는 것이다.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것이 ‘인’을 쌓는 일이라면 그해 날씨가 충분한 수확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는 것이 ‘연’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노력해도 기대한 만큼 성과를 얻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연’이 닿지 않는다는 말은 이때 할 수 있는 얘기다.

‘연’이 닿지 않아 일이 잘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하늘의 소관이고 사람으로서는 ‘인’을 쌓는 노력, 즉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번 시도로 그치지 않고 몇 번이건 다시 힘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실하게 ‘인’을 쌓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음에는 ‘연’이 닿게 되어 있다. 하늘이라는 ‘연’은 공평하다. ‘천도무친’, 하늘은 치우침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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