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사천유족회’가 오는 20일 다섯 번째 합동위령제를 갖는다. 유족회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경찰과 군인 등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가족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국이 비상하다 하나 적법한 절차 없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생명을 앗아간 것에 유족들은 억울하고 비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유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진실규명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또 다른 박해와 탄압이었다. 되레 연좌제란 이름으로 유족들마저 ‘빨갱이’ 굴레를 씌우고 상당기간 감시를 서슴지 않았다. 서슬 퍼런 국가권력 앞에 유족들은 ‘억울하다’ 소리마저 지르지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살아야 했다.

그러던 2005년, 여야 합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줄여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졌고, 과거사 진실 규명 활동이 정부에 의해 이뤄졌다. 유족들은 잠시나마 눈물을 씻을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5년이란 짧은 기간 한시적으로 활동했고, 전국적으론 6742건, 사천에는 26건만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민간인희생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이 있고 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에 유족들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화해위를 다시 설립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유해발굴과 유해 안치를 위한 추모공원 조성, 나아가 배‧보상과 과거사재단 설립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다.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을 60년도 더 지난 지금 5년이란 짧은 시간에 규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1년이란 제한된 신청기간과 연좌제로 인한 불신과 공포 등으로 진상규명 기회를 놓친 유족들도 상당히 존재할 수 있다. 이미 발굴한 유해는 마땅히 안치할 곳이 없어 발을 구르고 있고, 진실화해위 연구용역에서는 전국 66곳에서 유해발굴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유해발굴과 안장’ 건의안을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한 바 있고, 특별법 제정도 건의했더랬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사죄, 관련자 처벌을 이어갔던 독일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에 주목하자. 독일과 같이 전쟁을 일으켰으면서도 전범을 신사에 모셔 추모하고, 동아시아 곳곳에서 저질렀던 온갖 만행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자.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우리의 역사이며, 이를 바로잡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곧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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