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딜롱 르동의 스테인드글라스(Die Bunt glasfenster)

외광(Plein air)속에서 사물이 반사해내는 빛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는 것을 신념으로 삼은 인상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그런 흐름의 반대의 세계에서 상상과 관념의 모호함을 추구한 화가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1840-1916)이다.

그의 본명은 Bertrand Jean Redon인데 ‘오딜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의 어머니 이름 Odile로부터 유래한다. 르동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에 의해 영향 받은 바 큰데 모로는 르동보다 한 세대 앞서 활동한 화가로서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연결하고, 사실주의적 미술에 반대되는 경향을 선도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어 르동이 가진 미술사적 위치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르동과 모로, 두 화가는 큰 차이가 있다. 모로는 신화나 전설, 역사 관련 주제를 통해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반해, 르동은 대상을 매우 ‘주관적’인 해석으로 표현하여 보통의 기준으로는 완벽한 이해가 어려운 모호함(Obscurity)을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모로의 그림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며 그의 화면은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공간감을 가지는 데 반해, 르동의 그림은 일견에 맥락(Context)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르동의 그림은 마치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듯 한 불특정의 공간에 위치하여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프레임에 한정된 그림의 내용을 넘어 기이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다. (Guardian Spirit of the Waters, Ophelia)

오딜롱 르동의 스테인드글라스(Die Bunt glasfenster)
중세의 교회 건축 양식에서 고딕 양식이 가지는 의미는 벽체와 유리창의 활용이다. 지붕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벽체에 받는 하중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져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비잔틴 양식에서 벽체를 가렸던 작은 기둥들이 사라짐으로서 상대적으로 넓어진 벽체와 그 벽체의 밋밋함을 해소할 수 있는 창문은 고딕 양식의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이게 했다. 특히 둥근 장미창(Rose window)으로 대표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천국의 화려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르동의 이 그림도 교회 장미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그린 것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상세하고 정교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장미창의 느낌을 르동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몽상적인 색채를 기본으로 한 바탕위에 푸른색을 중심으로 한 장미창의 빛이 붉은 색으로 확산되고 있다. 붉은 색 계통의 색채들이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장미창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명암의 대비를 통해 묘한 신비감을 형성하고 있다. 두 개의 칼럼 사이에 위치한 화려하지만 약간은 모호한 채색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장미창 밑으로 피에타 상이 위치하고 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피에타 상을 그림의 중앙이 아니라 한편에 두고 오히려 장미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교회 바닥에 반사되고 그 반사된 빛이 피에타 상과 장미창 밑을 환하게 비추는 기묘한 빛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르동은 1870년 그의 나이 30세 때 보불전쟁에 참전한다. 이 전쟁의 참전은 르동의 삶에 있어 또 다른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즉, 그는 전쟁이후 본격적인 자기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 시기가 그의 작품경향을 ‘낭만주의의 검은 연기’라고 부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검은 색(Noirs)’의 작품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이 검은 색은 그의 개인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르동은 1840년에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서 출생했으나, 태아나자 마자 페이를르바드(Peyrelebade)의 가족 소유 농장으로 보내져 11살 때까지 외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오랜 동안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부모의 불화, 르동의 지병, 모친의 질병 등 여러 설이 있다.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버려진 듯 한 느낌을 받았던 르동은 이곳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두움, 침묵, 상상의 시간으로 기억되었고 이것이 ‘검은 색의 원천’이라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다행히도 이 그림은 1912년 그의 말년 작품으로서 ‘검은 색’의 주조를 이루던 시절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빛나는 색채’와 ‘고요한 서정성’의 시대에 당도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장미창으로 들어오는 은근하지만 화려한 빛은 말년의 르동이 추구하고자 했던 외부보다는 내면을 향한 시선, 외양보다는 본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여 꿈과 같이 신비롭고 모호하며 암시적인 이미지를 지향하는 르동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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