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의 화가 뭉크
Aasgardstrand 마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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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의 화가 뭉크
Aasgardstrand 마을 거리
  • 김준식 객원기자
  • 승인 2014.09.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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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Dorfstraße in Aasgardstrand)1902

(Das Dorfstraße in Aasgardstrand)1902
북위 약 48˚이상의 고위도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북극에는 하지 무렵부터 6개월 동안 낮과 밤은 경계가 없다. 이 불분명한 어둠을 우리는 ‘백야’라고 부른다.

노르웨이는 북위 60°를 넘어 위치하는 나라다. 백야가 지속되는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집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고 잠을 청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어둡지 않는 환경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수면을 취하면(즉 백야 같은 환경) 우리 몸 속에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불균형으로 우울, 불안, 신경쇠약, 편집증 등의 정신적 장애가 올 수도 있다 한다.

뭉크의 불안과 우울, 그리고 신경쇠약과 집착증세가 우연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1863년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마을 뢰텐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인 1864년 그의 가족은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로 이주했다. 그의 형제는 다섯 명이었는데 둘째였던 뭉크가 5세 때(1868) 어머니가 결핵으로 죽었다. 그로부터 9년 후에는 누나 소피에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기독교 신자이며 지나친 경건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였던 아버지(크리스티앙 뭉크)는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뭉크가 오슬로의 보헤미안들(Hans Jæger 등)과 어울리는 것에 그의 아버지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런 그의 아버지는 뭉크가 파리에서 살았던 18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동생도 1895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뭉크 역시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일생 동안 질병이 늘 따라다녔다. 한 마디로 불행하고 불운한 가족사를 가진 뭉크였다. 이런 그의 개인적인 불행은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1893년부터 <생의 프리즈>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 뭉크는 <생의 프리즈>에서 삶과 사랑과 죽음에 관한 것을 시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의 말라르메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 난해한 시에 빠졌었고 이것이 <생의 프리즈> 연작의 바탕에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이 그림은 비슷한 시기지만 그러한 흐름에서 약간은 빠져나온 듯 자신의 연인, 혹은 어린 시절 떠나보낸 어머니 또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카렌 이모를 연상시키는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의 이미지와 실제로 여름 별장을 짓고 매년 여름을 보냈던 Aasgardstrand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뭉크는 1885년에 처음으로 파리를 여행했으며,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둘러보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폴 고갱(Paul Gauguin)의 작품에 크게 공감했다. 이들의 작품은 뭉크에게 그림의 목적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일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주제들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며, 작품 속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투영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뭉크의 그림 ‘절규’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이 그림에서 붉은 옷을 입고 마을의 오솔길을 내려오는 여인의 모습은 매우 평화로우며 뒤편의 녹음과 푸른 하늘은 뭉크의 다른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의 표현이다. 어쩌면 뭉크의 모든 시기의 그림과 비교해 보아도 가장 밝고 화사하며 안정감 있는 그림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도 뭉크는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느낌을 강렬한 순색에 의해 표출하였고, 형태의 단순화와, 왜곡을 통해서 극적인 감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매우 거친 선묘를 통해 그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는 그의 회화에서 색채가 갖는 의미는 대상의 실제적인 모습과 직접 연결되지 않고, 색채를 정신적인 표현매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과장되거나 혹은 여러 색들이 뭉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도 그렇듯이 그의 작품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는 색은 검은색, 붉은색과 갈색인데, 이러한 색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바로 그의 아픈 과거의 상징이자 분노이며 저항을 담고 있다. 검은색은 주로 죽음을 암시하는 색으로 사용하고 붉은 색은 자신의 내부에 흐르는 피와 욕망에 대한 관심으로, 또한 갈색은 생명과 동시에 매장의 상징으로 삶과 죽음의 개념과 연결시킬 수 있다.

뭉크는 1933년 70세 생일에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성 울 라프 대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말년에 그는 시력을 거의 다 잃었으며, 1944년 1월 23일 오슬로 근처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뭉크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오슬로 시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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