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리뷰

▲ 전투중인 이순신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은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 대한 헌사다. 이 영화로만 보자면 이순신은 담담하고 뚜렷하며 동시에 강렬하고 용감하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그 공을 하늘과 백성에게 돌릴 줄 아는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말과 행동과 태도가 우리에게 이토록 큰 반향을 주는 것은 2014년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1597년 정유재란 당시의 상황과 큰 차이가 없다는 뚜렷한 반증이다. 임진년(1592) 전란이 일어나고 왜군이 파죽지세로 몰려오자 수도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제 목숨 하나 보전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 갈 요량으로 피난을 나선 선조 임금과 권력자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와 2014년 대한민국, 엄청난 인재와 재난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절묘하게 비교되면서 이순신의 풍모로부터 대리 만족하려는 것이 이 영화의 폭발적 흥행 배경은 아닐까싶다.
 
영웅 이순신
 
임진왜란 당시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스스로 자신에게 위협적이라고 느끼며 단 한 번도 공로를 치하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는 틈 날 때마다 죽이려고 했다. 이런 왕에게 이순신이 가졌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왕조 시대의 신하된 자로서 충(忠)의 정점에 백성을 둔다는 자체가 사실은 선조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역모’에 버금가는 수준의 생각이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한다.”
 
영화적 요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명량해전 다큐’에 가깝다. 자연적인 요인과 인간 심리, 그리고 자신의 내부적 갈등까지 모든 것을 감안하여 치밀하게 설계된 전투를 시간대별로 보여준 다큐멘터리 혹은 생중계 같은 느낌이다. 한편으로 이순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의 영화 속 위치와 존재감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만화적 주인공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전설에 가깝다. 특히 전란 중에 적들로부터 받은 그의 평가는 참으로 놀랍다. 영화 속에서 해적 구루지마(류승룡 분)를 못마땅하게 여겨 구루지마가 이순신과의 전투에서 거의 잡았던 승기를 놓쳐버리게 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조진웅 분)는 전후 그의 회고록에서 이순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역시 근세 일본의 해군제독 중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는 러일 전쟁 승리 축하연에서 그를 영국의 넬슨과 역시 이순신에 비교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
 
어떤 방식이든, 어떤 이유든 간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본 후의 분명한 생각이다. 전쟁은 인간의 지배욕과 권력욕이 빚어낸 최악의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전쟁의 당사자와 향유자가 너무나 다른 거의 유일한 인간행위다. 전쟁의 당사자는 언제나 민중이다. 그들은 국가, 민족, 집단의 이익을 위해 충성을 강요받고 또 충성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상처를 입는다. 특히 전쟁의 패배는 더욱 가혹하게 민중을 유린한다.
 
반면 전쟁의 향유자는 철저하게 권력자들이다. 권력자들은 전쟁에 패배하여도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고 어떤 경우에는 패배 이전의 삶이 보장되기도 한다. 이처럼 지독한 불평등의 인간행위가 인간의 역사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화에서도 전란은 민초들을 유랑하게 하며 심지어 아이들을 장난삼아 죽이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그 상황에서 관료들은 백성을 핍박하고 저들의 목숨만을 보전하기 위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민초들을 전장으로 몰아간다.
 
이순신 스스로 쓴 난중일기에 의하면 이러한 전쟁의 상황에서 민초들의 삶을 살핀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위기 상황에서 이순신을 구하는 것은 민초들이다. 이것은 이순신이 평소 민초들에게 베푼 선정에 대한 민초들의 보은이었을 것이다. 참혹한 전장에서 민초들에 의해 구해지는(물론 영화적 설정이었겠지만) 것은 그가 이야기한 충의 본질에 지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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