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세월호 사고의 인류학적 접근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일주일에 두 번씩 안산으로 출근한다. 내가 살고 있는 마포구에서 안산까지는 2시간으로 꽤 먼 거리다. 서울 ‘강북’에서, 강을 건너 강남으로, 안양과 과천을 거쳐, 안산으로.. 기나긴 여정을 버스, 지하철 2호선과 4호선,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고서 간다. 서울과 붙어있는 경기도이지만, 이렇게 집에서 멀리까지 정기적으로 오가는 건 내게도 처음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의 안산에 대한 연구이긴 하지만 직접 피해자와 가족들을 대면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안산에 다녀올 때면 마음이 무겁다.

지난 주, 안산에서 퇴근해 올라오는 길에 생존자 학생들이 먼저 떠난 친구들을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기 전에도, 이미 내 머릿속은 하루 종일 세월호 아이들 생각으로 꽉 차 있던 중이었다. ‘친구를 위해 이것이라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하며 행진하는 학생들을 보는 그 가슴 저림을 달리 어찌 표현할까. 4월 이후로 내게 길고 긴 지하철 4호선행은 자꾸만 ‘그 날’을 되새기며 상기하는 길이다. ‘당신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나요?’라는, 어떤 소설에서 본 듯한 문장이 가끔 떠오르는데, 그 이유는 이제는 내게 그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라니.

생존자 학생들의 행진 소식은 기사만 봐도 눈물이 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아주 의연하고 씩씩했다는 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어린 그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큰 사람들 같다. ‘가만히 있으라’고 더 이상은 아무도 명령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이들이다. 아직 덜 철들어도 되었을 그들을 그렇게 성숙하게 만든 ‘그 일’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건강하게 잘 버텨내기 위해 노력해 주어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손을 잡고, 웃고 떠들면서, 뚜벅뚜벅 걸어주어서 정말 그들에게 감사하다.

나는 그 행진하던 친구들이, 자신들이 사랑받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꼭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수많은 국민들이 영원한 수학여행을 떠나야만 했던 200여명의 친구들을 아파하는 것 못지않게, 그 생존자 학생들이 잘 살아내길 간절히 바란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 날 같이 행진하고, 혹은 같이 걷지 못하더라도, 지켜보고, 잊을 수가 없는 채로 함께 맘이 떠나지 않는 그런 사랑도 세상에 있다는 걸, 그 친구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상하게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며 내 속에 새로운 '사랑'이 싹 트는 게 느껴진다. 그 학생들의 한 명 한명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감히, 그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진을 하던 그 날 길거리에 시민들이 학생들을 맞이하며 들고 서 있던 피켓의 <얘들아 사랑해>의 ‘사랑해’를 나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7월 24일은 세월호 사고 이후 1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 ‘잊지 않겠다’가 아니라 ‘잊을 수 없다’가 더 정확하다. 잊는다? 차마 잊을 수가, 없다. 다만 더 잘 기억해나갈 방법을 생각할 뿐이다.

필자 소개: 이영롱/ 사천에서 20년을 살고 ‘유학’차 서울에 올라와, 서울 하늘을 지붕 삼아 올 해로 9년째. 대학에서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문화연구와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현재는 잠시 독립연구자로 살면서, 앞으로 더 깊이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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