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21

▲ 남녘땅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 남일대의 아침.
얼마 전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걸 들었습니다. 진행자가 일반 청취자와 전화연결이 된 상태에서 어디에 사는 분이냐고 질문을 하자 순천에 산다고 합니다. 순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곧바로 순천만이라고 답변을 했죠. 그러자 진행자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어조로 순천만이 뭐냐고, 힐난하는 식으로 되묻는 겁니다. 순천만 갈대밭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면 희화화의 대상이자 바보소리가 되어버리네요.

실제 목격담 중에 하나인데, 서울에 사는 30대 가정주부와 20대 학생의 대화였습니다. 학생이 고향에 간다고 하니 가정주부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죠. 학생이 부산이라고 하니 대뜸 하는 소리가 “아, 방학이라고 시골에 가는 구나……, 그런데 부산에도 맥도날드가 있어?” 서울 외에는 무조건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이건 서울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보질 못한 서울촌놈이라서 그런 걸까요? 물론 이런 몇몇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하도 자꾸 겪다보니 그런 생각을 저절로 가지게 됩니다.

얼척없는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남일대 해수욕장에 대한 개인적 경험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어디에 사냐는 질문에 경남 사천에 산다고 했더니 거긴 뭐가 유명하냐고 묻네요. 시기가 여름철이라 남일대 해수욕장이라고 흔쾌히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일대? 남이대? 나미와 붐붐? 이런 말을 남발하면서 웃는 게 아니겠습니까. 와~ 분노 게이지가 막 차오르데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께서 ‘남녘땅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서 남일대(南逸臺)라고 명명하셨다고 하는데, 그 친구에게 해수욕장은 해운대와 경포대 밖에 없는 겁니다. 고운 선생의 안목이 무참하게 짓밟히다니, 아, 지하에서도 슬퍼하실 겁니다.

남일대도 같은 대(臺)로 끝나는 해수욕장인데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자, 그럼 열심히 홍보를 해봅시다. 논리학의 관점에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이든 뭐든 고운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남녘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런데 뭘 보고 그렇게 극찬을 하셨을까요?

우선 해수욕장의 모양 자체가 참 아름답습니다. 누천년의 세월에 마모된 돌들이 새하얀 백사장이 되어 길이 700m 폭 500m의 마치 학익진(鶴翼陣)처럼 반달을 이루고 있는데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고운 모래와 완만한 경사 그리고 얕은 수심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음껏 놀기에 충분합니다. 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서쪽 해상에 있는 학섬(鶴島)은 실제로 백로(白鷺)와 왜가리의 서식지로도 유명합니다.

해수욕장의 기본은 물놀이인 만큼 그렇게 실컷 물놀이를 즐기면 되고, 지난 2011년부터는 해수욕장 위를 가로지르는 놀이시설인 에코라인이 설치돼 있어 신바람을 내고 날아가도 됩니다. TV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이수근과 엄태웅 등이 에코라인을 타고 사자성어 맞히기를 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남일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해수욕장 양쪽에 위치한,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천혜의 절경입니다. 동쪽으로는 변산반도의 채석강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해식애 사이로 산책로가 있어 굳이 여름철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만나는 웅장한 장면, 목이 타는지 바닷물을 연신 들이키는 코끼리 바위입니다. 이거 뭐라고 할까요,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줄도 모르고 우와~ 소리를 내뱉게 되네요. 인터넷에서 코끼리 바위라고 검색을 하면 울릉도와 태안반도가 유명한데요, 그보다 더 닮았고 가장 유려한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 남일대와 삼천포를 한 눈에 아우러볼 수 있는 진널전망대.
해수욕장의 서쪽으로 향하면 진널전망대가 있습니다. 방파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꼬마 흔들다리도 있고, 좀 더 지나가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진널전망대에 오르게 됩니다. 남일대를 비롯해서 삼천포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하게 되는데, 아마도 옛날 옛적 고운 선생께서는 이곳에서 남일대를 굽어보지 않으셨을까요. 한 자리에 앉아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부터 햇살이 부서지는 일몰까지 감상하셨을 겁니다.

사천에 살면서 늘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사천을 대표할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랜드 마크라고 해도 창선-삼천포 대교 정도나 떠오를 뿐인데요, 물론 연륙교에 도로공사 선정 가장 아름다운 교량이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들에게는 그냥 전국에 널리고 널린 흔한 다리일 뿐입니다.

▲ 진널전망대에서 바라본 코끼리바위.
그러니까 차를 타고 오고가면 끝인 다리보다는 지역의 진정한 절경을 형상화하고 구현해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겠죠. 그래서 남녘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일대를, 그것도 코끼리바위를 상징화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전국에 코끼리바위가 많지도 않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잘생겼으니까요. 이참에 그냥 사천시 심벌부터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대부분의 지자체가 마찬가지지만 사천시의 심벌은 설명을 듣지 않고는 정말 무얼 상징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

지역의 관광자원은 하나만 집중적으로 홍보해도 충분합니다. 관광자원 낙수효과라고나 할까요, 특정장소를 목적지 삼아도 대부분 여러 군데를 돌아보고 가게 되니까요. 따라서 남일대를 앞세우고 코끼리바위를 들먹이면 된다는 거죠. 어딘가가 정말 좋더라, 이런 소리를 백날 해봐야 별무소용입니다. 최치원 선생이 어쩌고저쩌고…… 코끼리바위가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구체적인 무언가를 들먹이는 게 효과는 훨씬 큽니다. 남일대가 대(臺)자로 끝나는 3대 해수욕장으로 등극하는 날, 은근히 기대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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