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오페라 [지아니스키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르네 마그레트 그림

해가 바뀌면 주변에서 자녀들 결혼 걱정하는 소리가 유독 많이 들립니다.
나이 들어가는 자식들 보면서 결혼 시키면 일단 큰 숙제를 해 치우는 듯한 안심이랄지, 비교적 일찍 결혼한 주변사람들이든, 아무튼 그 문제에서 자유로운 부모는 없겠지요.

가까이 지내는 댁의 어머니가 과년한 딸을 몹시 걱정하십니다.
결혼이란 것에 적령기가 있을까마는 자신을 기준으로 보면 한참 늦은 나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사자에게는 말 못하고 주위에 끓는 속을 더러 토로하지요. 어디 그분 뿐일까요. 모름지기 대부분의 부모가 그럴 겁니다.

오랜만에 뵌 그 엄마께서 기막힌 에피소드를 내 놓으셨습니다.
알뜰하고 헌신적인 친정어머니께 자식들 맡기고 지방에 사는 그 양반에게 전화가 왔답니다.

“아무개가 신랑감이라고 제 방에 사진 붙여놨는데 문디 거튼 놈이더라.”

그 귀띔에 남편에게 말도 안 하고 초조한 엄마, 직장에서 냅다 서울 집으로 달렸답니다.
딸(엄마에게는 근심덩이)은 자고 있었고 그 방에 있다는 신랑감 사진은 안 보이더랍니다.
 
“사진 어디 있는데요? 이 방에 없네.”

“오데 뒸더라, 아, 여 있다.”

너무나 궁금해 천리도 넘는 길을 달려온 엄마가 보고 싶은 문제의 사위감 사진을 노모께서 냉장고 뒤편 먼지구덩이 속에서 구깃구깃한 채 거의 쳐박히다시피 한 종이를 꺼내 보여주시며 또 한 번 내 뱉으셨답니다.

“문디 거튼 놈을 신랑감이라꼬...”

혀를 차시며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시고요.

“그기 누군 줄 아나?”
 
얘기 듣는 제게 돌아온 물음이었습니다. 알 리가 있나요.

“르네 마그레트 전시회 포스터다.”

반 죽었습니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얼마 만에 그렇게 많이 웃었던지요.

아시잖아요. 파이크가 코에 걸려있고 모자는 건공중에 떠있는 심란한 남자들.

“그러니까 본인에게 맡겨두세요. 억지로 되는 일 없어요.”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일이 그렇잖아요,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저 보겠다고 수요일에 일본대사관 집회장소에 생전 처음 온 동기 몇 명과 도란거렸습니다.

“너희 아무개, 별다른 신분상의 변화는 아직 없어?”

민망해할까봐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없어.”

남보다 좀 일찍 출산한 그 엄마가 눅진하게 대답합니다.

“그렇구나, 드물게 동구권 유학했으니 일 잘 하지?”

재치 넘치는 그 엄마가 굉장한 압박 비밀을 꺼냅니다.

“얘 내가 우리 아무개한테 그런다, 빵 빼!”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결혼? 글쎄요. 인연문제 아닐까요.
위 얘기에 등장하는 두 처녀 모두 수긋한 심성이라 별로 기가 드세지도 않아요.
그러니 엄마에게 시달리는 이 처녀들에게 선물할 노래는 때 되어 나타날 신랑감에게 푸치니 오페라 [지안니스키키]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워지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날릴 수밖에요.
새해 벽두부터 아까운 딸들 들볶지 마시고, 엄마들 마음 다스립시다.

이 아리아는 레나타 테발디의 조신한 목소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노래 잘하는 마리아 칼라스는 너무 색깔이 두드러지는 목소리라 성격도 드셀 것만 같아 아버지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애원을 할 것 같지 않거든요. 저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요.

혹시라도 당신들 마음에 덜 차는 신랑감이라도 너그럽게 봐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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