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피나코테크의 그림들

일화적 소묘(Interieur mit Mutter und kind 1815)
물병과 컵이 있는 탁자 위에 작은 여성용 파우치가 놓여 있다. 볼 살이 통통한 아기가 애완견을 만지고, 엄마는 아기를 쳐다보지 않고 정면의 약간 위쪽을 응시하고 있다. 목에 두른 스카프와 헤어스타일, 그리고 애완견으로 보아 19세기 초 유럽 귀족 가문의 여인임을 알 수 있다. 더욱 분명한 증거는 탁자 위의 유리병과 유리컵인데 19세기 초 왕족이나 귀족가문을 제외하고는 유리병을 물병으로 쓰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엄마는 아기와의 교감이나 사랑을 느끼고 있는 표정으로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어찌 보면 약간 굳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렇게 예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사랑스런 표정은 분명 아니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 법하지만 단지 이 그림에서 엄마의 표정이나 태도로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엄마는 아이를 무릎에 단지 앉혀 놓은 상태로만 보인다.

브아이(Louis-Léopold Boilly)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일화(逸話)가 숨어 있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지만 뭔가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는 즐겨 그렸다. 그가 그린 “로베스피에르(프랑스 혁명 지도자)”에도 우리가 쉽게 감지 할 수 없는 기묘한 장치들을 그림 여기저기에 숨겨 놓고 있다.

브아이는 1761년 프랑스 북부. 현재 벨기에의 국경지역인 노르에서 태어났다. 1785년 파리로 진출한 그는 세밀하고 정교한 관찰에 의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혁명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초상화들을 그렸다. 그는 프랑스 석판화의 선구자로서 많은 석판화 작품을 남겼다.

그는 스냅사진처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재된 장면의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림이다. 그 이유는 그림 속에 그러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즉, 엄마의 시선이나 아기의 위치, 탁자위의 파우치, 반쯤 보이는 술병, 그리고 브아이 인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애완견 등이 다양한 이야기, 즉 일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엄마 품에 있는 아이를 보자. 세 네 살 정도의 남자아이로 추정되는 이 아이는 애완견을 어루만지고 애완견은 아이의 손을 핥고 있다. 그런데 옷은 입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목욕을 막 마치고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분명 목욕을 시킨 사람은 아니다.
스카프를 두른 우아한 옷차림으로 아기 목욕을 시킬 수는 없다. 유모가 있고 그 유모를 아기가 더 따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아기와 엄마의 친밀감이 그림에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아기를 바짝 끌어안지 않고, 아기는 보통의 경우처럼 엄마에게 착 달라붙지 않는, 뭔가 둘의 관계가 어색해 보이는 그림이다.

옷감의 질감이 느껴질 만큼 섬세한 표현은 18세기 유럽 미술의 전형적 특징인데 브아이의 그림으로 보아 19세기 초까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이 그림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에서 보았듯이 마치 사진처럼 묘사하는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피나코테크의 그림들’은 사천 곤양고등학교 김준식 교사가 꾸미는 공간으로, 독일‘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그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풀어 소개한다. 14세기 이후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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