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의 이야기보따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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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의 이야기보따리 4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3.11.28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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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호랑이의 전설 (下)

 마을은 고요했어요. 고양이는 소름끼치는 그곳을 얼른 벗어나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어요. 허물어져 가는 집 한 채가 있었고, 손바닥 만 한 마당에서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어요.

“우리집이에요.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어요.”

어린 소녀가 두 팔을 벌린 채 마당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었어요. 그 뒤에는 병색이 짙은 할아버지와 어린아이 둘이 떨며 앉아 있었지요.

“요 맹랑한 녀석을 봤나. 돈 줬잖니. 그거 받았으니, 이제 여기서 떠나야 해. 이곳에 아주 커다란 집을 지을 거란 말이야. 다들 떠났는데, 너 하나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잖아”

양복 입은 남자가 소녀의 멱살을 잡았어요. 그 뒤에는 몽둥이를 든 건장한 청년들이 서 있었지요.

소녀는 멱살을 잡힌 채 남자가 고함을 칠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어요. 고양이는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기 전에 용맹스러운 호랑이의 발자취를 남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곤 포효했어요.

그리고 있는 힘껏 달려가 멱살을 움켜 쥔 남자의 팔을 물었어요.

“아야, 이건 또 어디서 나타난 고양이 새끼야?”

남자는 단번에 고양이를 땅에 패대기쳤어요. 고양이가 달려들 때마다 남자는 너무도 간단하게 내팽겨 쳤어요.

고양이의 머리와 다리에는 붉은 피가 흘렀지요. 하지만 멈추지 않았어요. 다시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어요.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머리가 터지고, 다리가 부러졌는데, 정작 아픈 것은 가슴이었습니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소녀가 청년들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거든요. 고양이는 소녀의 두 뺨에 눈물이 흐르는 걸 보고 말았어요.

이제 꼬리도 한 번 흔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버렸어요. 포효는커녕 ‘야옹’ 하는 하품도 할 수 없었죠.

“죽었나 보네. 내다 버려. 재수 없어.”

한 청년에게 목덜미를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어요. 어둡고 축축한 골목길이었어요. 간신히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늘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태양은 이미 산 너머 초원으로 사라진 뒤였어요. 꼼짝도 못한 채 밤을 보냈어요.


그때였어요. 주위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이상한 일이었지요. 아침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주위가 밝아질수록 고통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제법 주위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을 땐 부러진 다리를 움직일 수도 있게 됐어요.

“친구야, 초원으로 가자.”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어요. 고양이가 예전에 함께 놀았던 호랑이 액자가 있었어요. 유리에 잔뜩 금이 가 있었지만, 분명히 그 호랑이 액자가 맞았어요.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 우리 함께 초원으로 가자.”

호랑이가 재촉했어요.

“난 그럴 힘이 없는 걸?”

고양이가 힘없이 대답했어요.

“넌 초원에서 살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어. 어서 가자고!”

“나 고백할 게 있어. 난 초원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왜?”

고양이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어요. 한참 뒤에야 고개를 숙인 채 말했지요.

“사실 난 호랑이가 아니야. 새끼 고양이에 불과해.”

“하하하”

호랑이가 큰 소리로 웃었어요.

“자, 여기를 봐.”

그가 가리킨 벽에는 거실에 걸려 있던 거울이 있었어요. 거울에도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지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라고! 넌 분명히 호랑이가 맞아. 다만 이 지긋지긋한 도시가 자네를 고양이로 키운 것일 뿐이야. 우리가 함께 갈 초원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우선 그 야옹거리는 말투부터 새로 배워야 할 것 같군.”

고양이는 다시 힘이 솟는 것 같았어요. 그의 말대로 얼른 초원으로 달려가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싶어졌어요. 호랑이다운 것들 말이에요.

“그렇다면 어서 초원으로 가자고. 난 너무 힘들고 오랜 여행을 했어. 이제 저 산만 넘으면 되겠군.”

하지만 호랑이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저 산 너머에는 초원이 없어. 자네 뭔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군. 네가 가야할 곳은 바로 이 액자 속이야. 어서 들어와.”

고양이는 초원 액자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그러나 유리가 너무 단단했습니다. 고양이의 머리에서는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답니다. 흘린 피만큼 유리가 조금씩 얇아졌어요. 그리고 드디어 '쫙!'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양이는 포효하며 마지막 돌진을 시작했어요. 그의 입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닌 우렁찬 호랑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어흥~”

그리고 유리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고양이를 닮은 호랑이 한 마리가 초원 속으로 그렇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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