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의 이야기보따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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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의 이야기보따리 3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3.11.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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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호랑이의 전설 (上)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부자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답니다. 그 집 거실에는 초원을 거니는 호랑이 액자가 걸려 있었지요. 주인님은 으리으리한 집을 건사하느라 늘 바빴어요. 그래서 새끼 고양이는 거실에서 혼자 놀아야 했답니다. 고양이는 호랑이 액자와 거울을 번갈아 보며 혼잣말 수다를 떨었어요. 노란색 털과 검은색 줄무늬가 닮아서인지 호랑이가 친근하게 여겨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집안이 텅 비어 있었어요. 벽에 걸려 있던 액자와 거울도 사라지고 말았지요.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님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양이는 빈집을 헤매며 놀았지만, 도통 신이 나질 않았어요. 초원과 호랑이가 너무 그리웠어요.

어느새 주인이 남기고 간 먹이가 떨어졌어요. 그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몸집도 꽤 커졌죠. 더 이상 새끼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비 내리던 밤, 번개가 치는 순간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아주 잠깐 보게 됐죠. 그때 고양이의 머릿속에 번쩍하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였던 것이야. 주인은 내가 무서워서 더 자라기 전에 버려두고 도망가 버린 거야.”

고양이는 출생의 비밀을 스스로 깨닫고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그래, 내가 있을 곳은 빈집이 아니라 초원이야. 그곳으로 돌아가야겠어.”

고양이는 담을 훌쩍 뛰어 넘어 집을 나섰어요.

거리에 나온 고양이는 잠시 휘청거렸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집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어서 겪는 멀미 같은 것이었어요. 그러나 곧 힘과 용기를 되찾았어요. 그는 용맹스러운 호랑이였으니까요. 고양이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양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초원은 금세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없는 빌딩과 가로수들이 펼쳐질 있을 뿐이었어요.

태양은 느리게 움직였지만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힘껏 내달려도 금세 서쪽으로 사라져 버리곤 했거든요. 그렇게 해가 지고 나면 도시의 쓰레기통 근처에서 잠이 들곤 했어요. 불량한 거리의 강아지들을 만나는 날도 있었지요. 굶주린 배를 달래며 잠을 청하면, 녀석들이 다가와 말을 걸곤 했어요.

“야, 넌 어디서 굴러먹던 고양이 새끼냐!”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피식 웃으며 돌아눕곤 했어요.

“아니, 이 주먹 만한 놈이 내 말을 무시해?”

그리고 녀석들은 발길질을 해댔죠. 많이 아팠지만, 꾹 참았어요. 호랑이 체면에 강아지 몇 마리가 짖는다고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도시는 정말 거대했어요. 아무리 뛰고 걸어도 끝이 나질 않았어요. 힘이 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봤지요. 붉고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저 녀석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초원에 닿을 수 있겠지.”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했지요. 늦은 밤, 뒷골목에서 친구를 만나는 날도 있었어요.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새끼 호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고양이는 벼락같은 목소리로 야단을 쳤답니다.

“그 따위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다니. 호랑이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지.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초원으로 가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고양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뜻 그를 따르는 고양이는 없었어요. 그는 별 수 없이 외로운 여행을 계속해야 했지요.

거대한 도시를 통과하는 동안 고양이는 많은 사람들도 보게 됐어요. 대체로 사람들은 불친절했지요. 가끔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몽둥이나 발길질로 괴롭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아직 사람들 사이에는 ‘도시 호랑이 소문’이 퍼지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고양이는 드디어 도시의 변두리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높고 거대한 산이 있는 곳이었지요. 그곳만 지나면 그토록 꿈꾸던 초원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어요. 고양이는 길고 지루했던 여정을 되돌아 보며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답니다. 산에 가로막힌 변두리에 여장을 푼 고양이는 주위를 살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 산에 나무 한 그루 없고, 작고 초라한 집들만 빼곡했어요. 더욱 이상한 점은 그렇게 집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지요.

드디어 아침이 밝았어요. 고양이가 걸어왔던 저 멀리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올랐어요. 아마도 오늘은 태양보다도 빨리 산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고양이는 그 괴상한 산을 좀 둘러보기로 했어요. 집집마다 대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가위표가 그려져 있었어요. 세상 무엇이든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가위표였어요. 고양이는 그 무서운 가위표가 그려진 대문을 하나씩 지나치며 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어요.

[다음 호에서 (하)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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