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피나코테크의 그림들1

‘피나코테크의 그림들’은 사천 곤양고등학교 김준식 교사가 꾸미는 공간으로, 독일‘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그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풀어 소개한다. 14세기 이후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편집자-

피나코테크에 대한 소개

독일의 3대 미술관이자 세계 6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알테 피나코테크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유럽의 세계적인 회화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14~18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보티첼리,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루벤스 등의 7000여 점의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화가들의 방을 시대별, 나라별로 잘 정리해놓았으며, 근대 회화관(노이에 피나코테크)과 현대 회화관(모던 피나코테크)이 나란히 있어 서양 미술사 전체를 한 장소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피나코테크는 그리스어로 ‘그림수집’이란 뜻이다.

늙은 그리스 수도사

高人惠中 고고한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사랑하고
古鏡照身 오래된 거울에 또 스스로를 비춰보네.
(사공 도 24시품 인용)

反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이자 가치다. 하지만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라 누구나 그러하지는 못하다. 반성과 진보는 상반된 개념이나 어느 한 쪽이 빠진 것은 진정한 반성도 진보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절대자 앞의 인간들은 오직 절대자에게 희망과 요구사항만을 늘어놓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절대자 앞에 서기 전까지의 행동과 삶에 대한 절절한 반성이 아닐까 싶다.

프랑수와 앙드레 빈센트는 18세기 프랑스의 화가이다. 그가 그린 <그리스 수도사(The Greek Priest)>에서 우리는 신을 섬기는 사도로서의 기도와 한 인간으로서의 깊은 반성을 읽을 수 있다.

머리 위에서 마치 신의 은총 인양 내리 비치는 희미한 광선은 수도사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에 닿아 놀랍게도 그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에 생기를 부여한다. 깊고 굵게 파인 그의 이마 주름 속에서 살아온 날들의 깊이가 숨어 있다. 여전히 윤기 있는 이마와 콧등으로 흐르는 유려함과 강건함은 그가 살아온 세월이 매우 단단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내려 보는 그의 시선은 왠지 서글픔과 회한의 빛이 묻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눈 밑에 거무스름하게 쳐져 있는 피부, 젊은 시절 붉게 빛났지만 이제는 붉은 빛을 잃은 입술이 빛의 영향으로 희미해지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지혜를 보여 준다. 그의 얼굴에서 읽히는 서글픔은, 이를테면 그의 삶에 대한 반성의 흔적이 아닐까?

그의 어깨 위에 보이는 옷깃은 끝 부분이 닳아 오랜 세월 그와 함께 보내왔음을 말하고 있고 머리 위에 쓴 검은 모자의 끝도 빛의 반사에 얼핏 갈색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모자 또한 오랜 세월 수도사의 머리위에서 함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이것은 수도사로서의 삶이 결코 녹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의 기층민중의 삶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1782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로코코사조가 귀족들의 우아하고 화려한 삶을 반영한 것이었다면 계몽주의는 로코코와는 달리 민중의 삶과 애환을 반영한 것으로서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한 사조이다. 그리스 수도사의 종교가 그리스 정교이든 아니면 가톨릭이든 또 아니면 개신교이든, 그것은 이 그림에서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늙은 수도사의 희미한 얼굴을 통해 18세기 말 유럽 민중들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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