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대화 시도하는 조세원 씨

“거의 매일 밤, 하늘을 봅니다. 처음엔 내 생각이 옳음을 입증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리스신화 한 편 읽는다는 느낌을 가질 만큼 여유가 생겼네요.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도 알겠고요.”

2011년 늦은 겨울, 남해군 금산에 함께 올라 이 산 중턱에 있는 바위(경상남도 기념물 제6호)를 유심히 살폈던 이가 있었다. 일명 ‘거북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에는 그림인지 글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애매한 무늬가 오목새김 돼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다시 2년여의 세월이 지난 올해 10월, 특유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이제는 확신합니다. 남해양아리석각은 분명한 별자리입니다. 서불과차의 흔적이 아닌 거죠. 그런데도 남해군은 수백억 원을 들여 서불과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니 어이가 없네요.”

이렇게 말하는 이는 사천시 벌리동에 사는 조세원(66살) 씨다. 2011년 3월, 뉴스사천 인터넷판에서 [하병주가 만난 사람]으로 이미 소개했던 인물인데, 최근 그의 연구에 진척이 더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종이매체에 그를 다시 한 번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30여년 만에 푸는 수수께끼

남해양아리석각의 비밀을 캐고 있는 조세원 씨
조 씨는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가 고향으로, 다초초-남해중-남해농고-진주교대를 거쳐 동아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울산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1981년 남양중학교에 부임해 후학 양성에 힘쓰다 2007년 8월에 퇴임했다.

그가 남해양아리석각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1년 무렵. 당시 한글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던 그는 고향에 있는 양아리석각을 떠올렸고, 이것이 고대 문자인 가림토문 또는 녹도문 등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현장을 방문하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봤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스르르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30여 년이 흘러 퇴임을 맞았다.

그러자 조 씨는 묵은 과제를 다시 꺼냈다. 못다 푼 수수께끼를 다시 풀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때론 홀로, 때론 아내와, 때론 자식과 사위를 데리고서 금산에 올랐고, 거북바위를 살폈다. 이 과정에 양아리석각을 두고 떠도는 여러 가지 설, 이를 테면 거란족문자설, 선사시대각석설, 수렵선각설, 선사석각화설, 고대문자설, 서불기례일출설을 접하는데, 하나 같이 신뢰하기 힘들다고 결론지었다.

이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은 ‘서불기례일출(徐市起禮日出)’ 설이다. ‘서불이 일어나 뜨는 해에 예를 표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서불은 진나라 진시황제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떠났던 인물이다. 그가 남해를 지나던 중 그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명으로, 따라서 ‘서불과차(徐市過此)’ 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 씨는 이를 미심쩍어 했다. 그 서각을 서불기례일출이란 한자로 보는 것이 억지스럽기도 했고, 서불과차 그 자체도 중국의 역사관인 듯해 마뜩하지 않았다.

남해양아리석각.
그러던 중 그는 ‘하늘 천(天)’ 글자에 주목했다. 다른 부분은 글자로 인식하기가 어려웠지만 이 ‘天’자 만큼은 또렷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대 암각화 자료를 섭렵하는 등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 석각이 ‘밤하늘의 별자리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후론 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석각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해 동서양 별자리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조 씨는 자신의 가정이 하나씩 맞아 들어감에 기쁨을 넘어 흥분했다.

“그때 기분은 정말 짜릿했지요. 온몸에 경련이 일 정도였으니까.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리는구나’ 생각하니 며칠 동안 잠이 안 왔습니다.”

그의 결론은, 한로 경 자정 전후의 페르세우스, 양, 삼각형, 안드로메다, 물고기, 도마뱀, 백조, 페가수스, 케페우스, 조랑말, 독수리, 작은곰 등의 별자리를 새겨놓은 ‘성좌도’였다. 다시 말해 이 석각은 ‘天’자를 중심으로 한 가을 천문도의 1/4에 해당하고, 이는 북극성을 축으로 구도와 위치, 배열과 크기, 천체의 자오선과 경사면 방향에 있어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문화재청과 경남도 등에 알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무관심. 그저 일선 기관인 남해군에 민원을 이첩한다는 회신만 있었고, 남해군 역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 개인적 관심만 표명해왔을 뿐이다.

#“역사가 걸린 일, 반드시 고증해야”

시간은 다시 2013년 10월 22일. 양아리석각이 성좌도라는 그의 주장 이후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조 씨 자택에서 만난 그는 예전처럼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제자가 선물한 대형 돋보기로 살피다보니 예전에 미처 못 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석각 왼쪽 윗부분에 작은 글씨들이 있었는데, 이를 풀어보면 ‘10월10일부터 10월18일까지 별자리 관측이 가장 좋은 시기다’라는 겁니다. 이보다 더한 증거는 없다고 봅니다.”

그의 주장을 잠시 살피자면, 좌측상단에 새겨진 글자는 ‘古旨十月十日十月十八日吉辰(고지 시월 십일 시월 십팔일 길신)’이다. 여기서 ‘고지’는 하늘을 뜻하고, ‘길신’은 별자리 관측이 가장 좋은 시기임을 뜻한다는 게 조 씨 설명이다.

그는 추가 연구 결과를 다시 학계 전문가 등에게 보낼 생각이다. 또 남해군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도 보내 남해양아리석각에 대한 역사적 고증작업을 다시 해 줄 것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노 학자의 주장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특히 중국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목적으로 833억원을 들여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남해군의 반응이 궁금하다.

학계 전문가나 관계 기관에서 볼 때 조 씨의 주장이 미흡할 수도 있겠다.(지면의 한계로 조 씨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부족한 점은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할 테다.

분명한 점은 조 씨의 주장 외 다른 학설도 그저 ‘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고, 이는 ‘서불과차’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든 역사적 유물이든, 정확한 고증 없이 그저 상술로만 접근하려는 세태에 대해 조 씨는 학문탐구의 열정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음이다.

“수천 년 우리 역사까지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분노한 게 엊그젭니다. 그럼에도 2천년이 훨씬 넘는 옛일을 소재로, 이렇게 쉽게 우리 역사를 내어줘도 되는 겁니까? 우리네 역사를 팔아먹었다는 비판도 돌아올 수 있음입니다.”

노 학자의 눈에 아쉬움과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밤하늘에서 한 편의 그리스신화를 읽거나 지구의 자전을 깨달으려면 도대체 고개를 얼마나 젖히고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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