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농사 3년 만에 전국 ‘호박왕’ 오른 곤명면 성방마을 김희 씨

▲ 농촌진흥청 주관 제11회 박과채소 챔피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희 씨. 10월 1일 전시관에서 자신이 수확한 호박 옆에 섰다.
9월의 끝자락,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로 접어들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에 사는 김희(46) 씨가 농촌진흥청과 한국박과채소연구회가 공동 주관한 제11회 박과채소 챔피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어? 저 분이 벌써 일을 냈네!’

평소 김 씨를 알고 있던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매실농사에 딸기와 토마토까지, 그의 부지런한 근성을 알고 있던 터라 ‘호박왕’이 됐다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짧은 호박농사 경력을 생각하면 뜻밖의 일임은 분명했다.

“대상은 뜻밖.. 다음엔 100㎏짜리”

농촌진흥청에서 대상을 받고 돌아온 그를 만난 건 태풍 ‘다라스’가 한반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도가 한창이던 7일 늦은 오후다. 김 씨는 아내 김명춘(44) 씨와 함께 곤명면 완사들 그의 농장에서 대추토마토 순 고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호박농사에도 박사가 되셨더군요?”

기자의 말에 김 씨 특유의 멋쩍은 표정이 얼굴에 묻어났다.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신경을 좀 썼더니 일이 이리 됐네요. 은상쯤 기대했는데 뜻밖에 대상을...”

그렇다. 김 씨의 호박농사 경력은 비교적 짧다. 사천시농업기술센터가 성방마을을 ‘호박명품화마을조성사업’ 대상으로 삼고 지원하기 시작한 게 2011년, 그의 전문 호박농사 경력은 올해로 3년째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호박 농사꾼들을 제치고 ‘올해의 호박왕’에 올랐으니, 그의 근면성실함이 다시 한 번 빛났다.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교감’인 것 같아요. 기술로 배운 것도 있지만 식물이 원하는 걸 잘 살펴야 되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거죠.”

그에게 ‘호박왕’의 영광을 안겨준 호박은 둘레 129㎝, 무게 91.3㎏으로 ‘기네스’ 감이다. 처음엔 출품까지 생각지 않았으나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는 바람에 막바지엔 은근히 욕심을 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둘러보고 살피는 통에 주변 사람들의 핀잔까지 감수해야 했단다.

“제가 출품한 호박은 ‘동아’라는 품종인데, 고려 때부터 왕실에서 음식으로 해 먹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토종인 셈이죠. 약재로도 쓴다는데, 다음엔 100㎏짜리에 도전해 보려고요.”

다양한 얘깃거리 품은 고향 성방마을

김 씨는 마을공동이익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가 호박농사를 짓게 된 계기이기도 한 ‘호박명품화마을조성사업’은 얘깃거리가 풍부한 성방마을에 또 다른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려는 뜻이 크게 담겼음이다. 그래서 이 사업을 주도한 김영태 마을이장을 비롯해 신용식, 이재기, 김성욱 씨와 호박작목반을 구성했고 ‘농촌관광’과 접목시키려 애쓰고 있다.

사실 김 씨가 태어나고 자란 성방마을은 뉴스사천에 여러 번 기사로 등장했던 마을이다. 2009년엔 한 사업가가 마을 야산에 채석장을 건립하려다 김 씨를 비롯한 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주민들은 비슷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애썼다. 성방마을이 진양호와 인접한 청정마을임을 강조하면서 수달 서식의 흔적을 찾아냈다. 중생대 백악기 복족류 화석을 발견해 학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터와 옛 도요지가 마을 곳곳에 널려 있음을 알리며 마을이 지닌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런 노력은 성방마을을 특색 있는 마을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농촌진흥청과 사천시는 이 마을에 ‘전통주 체험마을’ ‘구전자원 활용 시범마을’ 등의 이름을 붙이며 각종 지원사업을 펼쳤다. 마을주민들이 합심해 성방마을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 김 씨는 마을이장과 호흡을 척척 맞춰 왔다.

“다섯 살 때부터 소 두 마리 한꺼번에..”

▲ 농부로서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김희 씨가 아내 김명춘 씨와 그의 농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 씨가 이렇듯 마을 일에 애정을 보인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뜻도 담겼음이다. 그의 꿈은 농부였고, 이웃인 다른 농부들과 오순도순 어울려 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졌다.

이런 꿈은 어릴 적부터 품었지만 실천으로 옮긴 건 11년 전이다. 직업전문학교 교사생활을 거쳐 자동차정비 검사원으로 활동하던 김 씨는 학창시절부터 품었던 ‘농부의 길’을 과감히 선택했다.

“중학교 때부터 제 꿈은 농부였습니다. 당시 졸업앨범에도 ‘농부가 되겠다’고 글을 남겨 뒀었는데, 언젠가 아내가 그걸 보고 놀라며 묻더라고요. ‘옛날부터 농부가 그리도 되고 싶었냐?’고. 전 떳떳이 말합니다. 진짜 그랬노라고. 자연과 어울리는 게 그렇게 좋다고.”

그는 어릴 적 전설 같은 얘기도 덧붙였다.

“동네 할머니들 말씀이 ‘니는 다섯 살 때부터 소 두 마리를 한꺼번에 몰았다 아이가’ 하시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고, 어쨌거나 농부는 제 운명인 것 같습니다. 허허허”

김 씨의 너털웃음이 상큼했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꿈꾸고 시도하지만 ‘열에 아홉은 실패한다’ 했던가. 그만큼 예사로 접근했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하지만 준비된 농부, 김 씨의 경우는 달랐다. 여기에는 장남의 귀향을 응원한 아버지 김동석(71) 씨의 도움이 컸다. 매실농사, 딸기농사를 짓고 있던 아버지는 그의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김 씨도 젊은 기지를 발휘했다. 귀농 전 만들어둔 인터넷홈페이지를 통해 수확물을 홍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량의 전부를 사이버공간에서 판매하는 쾌거를 이뤘다. 생산량이 달리니 농장을 늘려야 했고, 이는 농업경영 측면에서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 청출어람이었다.

새로운 꿈 ‘농촌관광’

지금 김 씨는 아버지와 함께 더 다양한 농사짓기에 도전하고 있다. 주력 품목인 매실과 딸기, 그리고 딸기 후속작인 대추토마토, 여기에 더덕, 장뇌삼, 표고버섯까지 발을 넓혔다. 물론 3년 전부터 시작했다는 호박농사도 빼 놓을 수 없다.

김 씨가 재배한 다양한 박과채소들.
이 과정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은 모양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농촌진흥청과 농업기술센터에서 마련한 농업강좌를 들었단다. 이는 외국 견문 기회로 이어져 네덜란드, 일본, 중국에서 선진교육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꿈도 키우고 있다.

“인력난이 심해서 농사를 더 늘리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농촌관광’과 연결 짓는 일을 해볼까 합니다. 단골손님들 중에 농장을 직접 방문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있는걸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이를 위해 펜션을 갖춰 놓겠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또 성방마을의 여러 가지 볼거리, 얘깃거리, 체험거리도 방문객을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사실 농업과 관광을 접목시키는 ‘농촌관광’ 개념은 대도시를 낀 농촌에서는 일찌감치 시도됐고 그 효과 또한 입증된 바 있다. 허나 사천의 경우 관계기관과 농민들 노력에 비해 결실이 미약한 편이다. 김 씨의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김 씨는 전문 농사꾼답게 정책적 제언도 잊지 않았다. 다름 아닌 농업재해보험에 관한 얘기였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지금의 재해보험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지난해 하우스의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는데, 재해보험에서 고작 50만원 나왔어요. 인건비도 없이 비닐 재료비만 나온 거죠. 그런데 내가 낸 재해보험료만 70만원이 넘었고, 여기에 국가가 보조한 보험료도 있으니, 결국 보험회사 배만 채우는 재해보험이란 생각이 듭니다. 작물에 대한 보상도 없고, 재료비만 보상할 것 같으면 차라리 보험 없이 내 돈 주고 구입하는 게 낫죠.”

그의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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