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자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

전국 9대 일몰지 중 하나로 꼽히는 실안낙조. 해안에서 보는 바다와 섬을 건너 남해 서산에 지는 저녁노을이 일품이다. 부채꼴 모양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과 섬, 바다 그리고 일몰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친구들끼리 속된 말로 “아가미가 갑갑하다.”고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뭔가 답답한 마음에 주로 썼습니다만, 최근에는 몸에 정말 아가미라도 달린 것 같은 기분에 쓸 때가 더 많습니다. 자동차 매연에 가로수가 누렇게 뜬 곳에서 살다가 직장 때문에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떠돈 지도 근 20년, 그리고 사천시민이 된 지도 9년. 어쩌다 고향이라고 가면 물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쉬기가 곤란하다싶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밖으로 안개를 품은 산이 자리하고 저 멀리 푸르고 잔잔한 바다가, 집 앞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개울이 있습니다.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조금만 움직이니 곳곳이 미로(美路)입니다. 잘 정리된 해변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벚나무 터널을 지나기도 합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전거 도로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무엇하나 아쉬운 것 없습니다. 그랜드캐넌과 같이 한 눈에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절경은 아니지만 오밀조밀해서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던 나태주 시인에게 제목을 《풀꽃》이 아니라 《사천》이라 지어야 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천으로 막 이사 왔을 때 지명의 한자를 보니 내가 두 개(泗川)가 있네요. 그래서 집에다가 ‘이내운재’라고 이름도 붙였습니다. 아침에 스며드는 자욱한 안개가 구름 같아서 구름 운(雲)자를 넣어서 말이죠. 그러고 나니 어쩐지 너무 고풍스럽다는 느낌에 운자는 빼고 ‘이내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필명으로 쓰기도 하고, 참 멋진 곳에 살게 되었다고 흐뭇해했네요.

사천시민으로 살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 쪼잔하다 욕먹을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법이 있어야 제 한 목숨 부지하고 살 사람 등등. 세상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라 딱히 사천사람만의 특성을 찾진 못했습니다. 아직 성향을 파악할 만큼 오래 살지 못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천이 참 예쁘다고 하면 대체로 “그래요?”하고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그다지 수긍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지만 슬며시 미소 짓는 걸 보면 공감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모든 사람을 다 만나본 게 아니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예쁘다는 말에 간혹 사천과 삼천포를 구분하는 사람을 봅니다. 딱히 구분을 지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그래도! 라고 비교급을 요구합니다. 사실 10년도 채 살지 못한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한 마음이 듭니다. 덕분에 지역의 형성 역사까지 공부하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천시는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사천현'이 시작이며, 삼천포는 고려의 수도 개성까지의 거리가 무려 3,000리여서 ‘삼천리’가 유래라더군요. 그런데 지역이 통합될 당시 삼천포라는 지역명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사천시로 결정됐다는 인터넷 백과사전의 설명을 봤습니다. 그게 사실일까 미심쩍지만 한편으로는 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싶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삼천포항 풍경. 삼천포에 빠질 만한 여러 이야기가 숨어 있다. 뉴스사천 자료사진.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에는 정확하진 않은 몇 가지 유래가 있네요. ?김천-삼천포행 열차 ?부산-진주행 열차 ?진주에 가려던 장사꾼 이야기 등 대충 찾아봐도 9가지가 넘는데, 문제는 삼천포로 빠진다란 말의 수식어가 “잘 나가다가”라는 점이겠죠. 이 때문에 1977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가 이 표현을 비속어·은어로 규정해서 방송에서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저도 무심결에 쓰기도 했고 그렇게 입에 오르내려서인지 친근함이 더 컸기에, 이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말인지 몰랐습니다.

몰랐으니 앞으로 조심하면 되겠지만, 저는 이미 은방울자매의 《삼천포 아가씨》를 읊조리는 삼천포‘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하, 그럼 삼천포라는 지명의 뉘앙스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 겁니다. 어쩌다 가게 된 곳이 아니라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가는 곳, 풍요로운 자연과 넉넉한 인심에 한번 오면 헤어나지 못하고 머물고 마는 곳. 방향격 조사 ‘로’가 아니라 목적격 조사 ‘에’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인식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 말입니다. 당연히 “잘 나가다가”란 수식어는 떼야 하고요.
흔히 변화의 시작은 나부터(It starts with you)라고 합니다. 본인의 인식은 그대로인데 남들만 바뀌길 바라면 놀부 심보라고 타박 받겠죠.

내가 사는 곳을,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지역을 알고 나면 자랑이 되고 자부심과 자긍심이 됩니다. 남들이 모르는 우리 마을의 비경, 숨바꼭질하듯 숨은 아련한 전설, 우리 가족만 속닥하게 즐기는 살살 녹는 맛, 두고두고 설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면 숨겨두지 말고 함께 나눠주세요. 삼천리 곳곳에 퍼지는 것도 순식간일 겁니다.

삼천포에 빠지는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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