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드리는 편지

자연의 힘,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사람의 체온을 넘나들 만큼 유난했던 무더위, 밤이 찾아와도 꺾일 줄 몰랐던 그 기세가 ‘9월’이란 이름 앞에 스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들녘은 조금씩 색을 바꾸고 풀벌레 소리 점점 커지네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이런 존재인가 봅니다, 얼마간의 굴곡과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약속된 시간에 새로우면서도 변함없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너무 인간 중심적 사고인가요?

생각해보면 자연은 ‘지구’의 다른 말입니다. 나아가 뭇 생명은 햇빛에 의지해 살아가고,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과도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니, 자연은 곧 ‘우주’라 할 수 있겠네요. 게다가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다시 은하계 중심을 일정하게 돌고 있으니, 일종의 약속 또는 규칙을 잘 따르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 일정한 약속을 따르며 긴밀한 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시공의 영역만 좁혔을 뿐 그 틀을 그대로 쫓고 있겠지요.

그리고 여기, 유구한 역사, 문화의 향기 숨 쉬는 이 땅에서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12만 사천시민이 있습니다. 비록 몸은 여기 있지 않지만 마음만은 늘 고향 산천과 푸른 바다를 품고 있을 출향인들도 있고요. 나아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듯이 사천과 좋은 인연 하나쯤 맺었을 경남사람, 대한사람, 심지어 외국인까지. 이들 모두가 ‘사천사람’입니다. 사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들려줄 ‘사천이야기’ 기억 한 조각 지녔다면 그가 바로 사천사람인 거죠.

‘무슨 해괴한 논리냐’ 탓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저는 1971년생, 이름은 하병주, 뉴스사천 편집장입니다. 5년 남짓한 세월 전, 지역 선후배들과 “우리 사천의 이야기를 들려줄 지역신문 하나 만들자”는 결의에 따라 맡게 된 직업이요 직책입니다.

저는 오늘 ‘뉴스사천’이 인터넷신문으로 시작해 주간신문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떤 고뇌의 시간이 있었는지, 1면에서 큼지막하게 새긴 물음표와 느낌표에는 어떤 뜻이 담겼는지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롯이 사천을 들여다볼 우리 신문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던 5년 전 2008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뉴스사천은 이런 분위기 속에 태어났습니다.

“웬만한 지자체마다 지역신문 하나쯤은 다 있는데, 우리는 이게 뭔가. 주간지가 있긴 하나 생활정보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예전에 발행되던 신문들도 하나 같이 문을 닫았다. 사천지역사회가 이 정도 힘도 없는 곳인가? 도내 일간지가 있고, 방송사가 있다 한들 사천 소식 얼마나 전하나? 크고 중요한 이야기 아닐지라도 이웃들의 작은 이야기를 기사로 다루는 우리 신문을 만들자. 그러다보면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 나아가 사람과 자연까지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사천의 모든 구성원이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으리라!”

이게 지역언론 즉 뉴스사천이 필요한 이유였다면, 다음은 그 방법입니다.

“지역신문 만들기가 쉽지 않을 텐데, 돈도 많이 들고.”

처음 뉴스사천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을 적에 주위에서 이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한 지적이었지요. 그래서 도원결의 비슷하게 처음부터 뜻을 모았던 사람들은 운영비용이 비교적 적게 드는 ‘인터넷신문’ 형식을 택했습니다. 큰 고민도 없었지요. 종자돈을 넉넉하게 준비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겁니다.

매체 형식을 결정하고 나니 다음은 회사 형식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길게 고민할 것 없이 답을 찾았습니다.

“언론이 가져야 할 공명정대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공기’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소수가 좌지우지 하게 해선 안 된다. 그러니 다수 시민이 조금씩 주식을 나눠 갖는 주식회사 즉 ‘시민주주신문’으로 만들자!”

곧바로 발기인을 모집하는 시민설명회를 열었습니다. 능력의 한계로 많은 시민들을 모으진 못하고 수 십 명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어 주주 모집에 들어갔는데,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111명이 주식회사 설립에 필요한 50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4월말부터 8월말까지 넉 달. 그리고 그해 8월 29일 사천시문화예술회관에서 창간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제 입장에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조상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해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첫 마음, 초심을 잃지 말라고들 합니다. 가장 순수하고 결의가 높았던 시절에 품었던 마음가짐을 줄곧 유지하라는 얘기일 텐데, 그만큼 지키고 따르기에 힘이 들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뉴스사천의 초심은 무엇이었던가? 5년 전 주주와 독자와 사천시민들께 내 걸었던 약속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네요.

“뉴스사천이 드리는 네 가지 약속 : -사천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이웃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힘없는 이들의 든든한 벗이 되겠습니다. -정론직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나가겠습니다.”

돌아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빤한 약속입니다.

첫 번째는 사천을 깊이 들여다봄과 동시에 그곳에 갇혀 있기보다 더 넓은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역신문답게, 중앙언론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무겁고 큰 주제가 아닌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입니다. 세 번째는 힘이 있어 제 앞가림 잘하는 사람은 그대로 두면 될 테고, 그 반대에 있는 사람에겐 다가가 손을 잡아주겠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끝으로, 안으로는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밖으론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정론직필의 원칙, 아무리 작은 지역언론이지만 놓쳐선 안 될 일입니다.

사실 이런 약속을 내세웠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군가 코웃음 치며 비꼬지나 않을까 이런 염려도 있었는데, 적어도 제 앞에선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던 거죠. 저와 뉴스사천은 바로 이점에 주목했습니다.

“아, 웬만한 지역민들도 ‘언론이 어떠해야 한다’ 이런 정도는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저희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자발적 후원독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매주 운영회의에 참석해 몇 시간씩 ‘토론의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대표이사는 자신의 권한을 크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보도와 편집을 두고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신났습니다.

저희가 내 건 네 가지 약속, 이를 좀 더 구체적 표현으로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턴 그 얘길 해보려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뉴스사천은 사천의 일기장 또는 역사서가 되겠다.”

‘사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석이나 논평이 없더라도 일단 기록해 두자’ 이런 속마음이었습니다. 이 일기장에는 그 날 있었던 일과 함께 사람들 분위기와 표정, 이런 느낌까지 담길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어렵고 애매한 부분을 쉽게 풀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할 거였고, 이런 것들이 쌓여 두툼한 지역 역사서가 되리란 기대를 가졌습니다. 훗날 누군가 뉴스사천을 펼치면 지역에서 일어났던 깨알 같은 일들이 속속 드러나게 할 요량이었지요.

뜻이야 거룩했지만 지금 자평하건데 썩 만족스럽진 못합니다. 놓친 정보와 일들이 많았던 것이죠. 그럼에도 5년 세월이 지나고 나니 쌓인 기사가 1만4000여 개에 이르는군요. 혹시 사천에 관해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뉴스사천 인터넷판에 접속해 검색해 보세요.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취재를 하면서 옛 아픈 역사를 들추는 일도 있었습니다. 옛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잘 모르는, 그런 일들이었지요.

한국전쟁을 전후해 일어났던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대표적인 게 보도연맹사건입니다. 많은 민간인들이 억지 이념굴레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뉴스사천은 이 사건을 자세히 조명하고, 유족회와 함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위령제를 해마다 열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아름다운 섬, 서포면 비토리에 얽힌 핏빛 이야깁니다. 1957년,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을 나환자 또는 문둥이라 부르며 딱지를 붙였던 시절. 생존을 위해 비토섬을 개척하던 한센인을 서포 원주민들이 들고일어나 집단 희생시킨 일입니다.

심각한 오해에서 빚어진 그 일을 이제 후손들이라도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해야 하지 않은가 살폈습니다. 위령비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지역사회에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에도 앙금이 남았음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예로 이런 구호도 내세웠습니다.

“지역사회의 제3의 안전장치가 되자.”

이번에도 표현이 거창합니다. 보통 지역사회의 안전지킴이라 하면 먼저 경찰을 떠올리기가 싶습니다. 소방서 소방대원 또는 응급구조요원들이 떠오르기도 할 거고요. 또 정치의 영역이 대중과 만나는 행정, 사천 같으면 사천시정을 펼치고 있는 시청 공무원들도 지역민의 안전지기일 겁니다. 이밖에도 여러 기관과 소속 직원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 속에 언론종사자도 포함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2009년 3월의 일입니다. 시도1호선을 끼고 있는 사천유치원 앞에 주유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학부모들의 걱정이 컸습니다. 주유소 후보지는 아이들이 드나드는 정문에서 30미터, 유치원 담장에선 2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요. 사천시와 교육청에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뉴스사천에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온갖 법과 규정을 뒤진 끝에 학교, 어린이집, 노인복지시설, 의료시설 등 여느 사회적 보호시설과 달리, 유치원만큼은 주유소(=위험물저장처리시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안전규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른바 ‘주유소공동대책위’가 꾸려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과 학부모들의 소리를 전했고, 이 과정에 새로운 정보들을 찾아내 관계기관의 소극적 대응을 따졌습니다.

결국 수개월간 이어진 이 논란은 주유소 터를 공원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소방방재청의 ‘위험물시설의 안전거리 기준 적정성 연구’ 과정에서 유치원이 처한 불합리성을 깨닫도록 했고, 나아가 사천시에 주유소 등록 고시 제정을 촉구해 주유소와 유치원이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도록 규정했습니다. 이쯤 되면 뉴스사천을 ‘지역사회의 또 다른 안전장치’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지 않을는지요.

이밖에 “권력의 감시자요 비판자가 되자.” “지역발전을 이끌 정책제안자가 되자.” “지역사회의 문화기획자가 되자.” 등등 온갖 솔깃한 말은 다 동원했습니다. 이를 당장 이룰 능력이야 안 되겠지만 다짐을 되풀이함으로써 목표의식을 분명히 했던 겁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후보검증은 물론 정책 설문조사로 유권자들의 생각을 후보들에게 전달했고, 2012년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방송사와 함께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도왔습니다.

2011년 초반 사천-진주 행정통합론이 불거지자 인근 창원과 제주 등 사례를 분석하며 통합이 주는 ‘빛과 그늘’을 알렸고, 일방적 찬성 또는 반대의 논리가 아닌 그 주장의 합리적 논거와 비합리적 논거들을 구분해 소개했습니다. 통합 찬반 양쪽 패널을 불러 ‘지방행정체제개편 사천시민토론회’를 300여 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 것도 짜릿한 기억입니다.

지역민들의 문화인문교양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도올 김용옥 선생과 안도현 시인을 불러 인문특강 시간을 갖기도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우는 모습에서 갈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간단히 돌아봐도 제 기억 속에 잡히는 것이 여럿입니다. 물론 여러분과 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겁니다. 그렇더라도 ‘아, 뉴스사천! 진정성은 있었구나’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텁니다. 어쩌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 없이 뉴스사천을 만들었습니다. 그래 놓고 ‘주주가 되어 달라’ ‘후원독자가 되어 달라’ 아쉬운 소리 많았습니다. 처음 시민들과 약속했던 여러 가지 약속, 그 이행도를 따져도 높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실제 그런 지적도 종종 받습니다.

반면 “지금껏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으니 성공한 것 아니냐”하고 격려하는 이도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그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습니다. 편집장이란 직을 가진 입장에서 흥감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뉴스사천은 또 한 가지 ‘무모할지 모를’ 도전을 지금 시작합니다. 바로 종이신문 창간입니다. 매주 단위로 나오는 신문이니 ‘주간신문’이라 불러도 되겠네요.

이 종이신문을 낸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인터넷에 밀려 종이신문이 힘을 잃어가는 마당에 웬 주간신문이냐는 지적에서부터 인쇄비용과 발송비용 등 운영자금이 적지 않을 것임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또 “신문 구독 부탁드립니다” “광고 하나 실어주시죠”하고 어딘가 손 내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하고 고민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뉴스사천을 왜 만들었던가? 지역민과 소통하며 더 나은 사천을 만드는 일이 소중하며, 그 길에 좋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아니었던가? 지역사회에서 인터넷매체는 한계가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나오는 사천 관련 뉴스, 그 첫 출처가 뉴스사천임을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이는 독자층의 한계요, 인터넷매체의 한계다. 경영과도 맞닿은 이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러나, 뉴스사천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지 않은가?’

이런 까닭과 배경으로 저는 오늘 사천시민과 뉴스사천 독자 여러분께 이 편지를 띄웁니다. 뉴스사천이 인터넷신문과 함께 10월 9일부터 주간신문을 발행함을 아룁니다. 그동안 뉴스사천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옳은 것은 유지하고 부족했던 점은 채우겠노라 다짐합니다. 비록 몸집은 크지 않을 지라도 언론으로서 맡아야 할 책무를 다하겠노라 약속드립니다. 사천 구석구석 다니며 사천사람을 만나고 사천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당부의 말씀도 드립니다. 뉴스사천 구독료가 한 달에 6000원입니다. 크다면 큰 돈, 아깝지 않도록 애쓰겠습니다. 뉴스사천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천사람 사천이야기’ 담긴 뉴스사천, 권해주시고 보내주십시오.

종이신문으로 거듭나는 뉴스사천. 물음표와 느낌표로 채우겠습니다. 물음표는 진실을 쫓음이요 느낌표는 감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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