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재의 음악놀이터]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꼭 십 년 전이군요.
모처럼 시내 대형서점에 갔다가 고장 난 오디오 때문에 듣지 못하는 음악이 그리워 시청(試聽) 목록에 있는 별 것 아닌 'Londen derry Air(아 목동아!)'가 나올 때까지 버텼습니다.

바이올린으로 '운다고 옛사랑이...'식 연주가 촌스럽게 좋았습니다.
이번 백화점 세일 끝나기 전 대동변을 내서라도 오디오 사야지 결심하고 서성대는데 말총머리에 반바지, 슬리퍼차림, 마치 계 깨진 아낙 같은 젊은 애가 직원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달라고요.
수입 음반이라 지금은 없다는 대답에 몹시도 낭패한 기색을 한 그 소녀에게 다가갔지요. 오지랍 어디 갑니까?

"언제 적 연주를 구해요?"

"어 엉?"

"굴드 연주는 몇 개가 있거든요."

"몰라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요."

"이리 와 봐요."

근처 아는 가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는 잘 알려진 녹음이 서너 개 있거든요."

"연주할 때 연주자가 흥얼거리던가요?"

"아니요, 그냥 미친 듯이 휘몰아쳐요."

"알았어요."

고 3 수험생이 입시공부 하다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너무 듣고 싶어서 달려왔답니다.
대강 설명해 주고 원하던 바로 그 음반을 구해줬습니다.

1959 년 짤쯔부르크 실황연주, 굴드는 스물일곱살이었겠네요.
그 학생에게 시험이 끝나면 굴드의 영상자료를 한 번 보라고 했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굴드 연주. 출처 : 유투브
 

골드베르크 음반을 영상으로 보고 있자면 피아니스트의 손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해 소아암을 고쳐보겠다는 포부를 가진 치아교정기를 끼운 씩씩한 그 학생을 보며 부디 원하는 학교에 가기를 바라면서 우리나라의 대학진학 제도를 생각해봤습니다.

온 집안이, 아니 외가에 친가까지 합하면 몇 집안이 거의 전시상태로 돌입하지요.
방문은 물론이고 전화도 삼가면서 오로지 입시생 하나만을 위해 바치고 법석입니다.
오직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 이 아이들은 꽤 많은 수가 대학에 진학해서도 점수광이 됩니다. 세상이 점수로 평가하니 그렇겠지만요.

한 학기 징그럽게 속 썩이고, 그 아이만 보면 온 세포가 곤두서는 것 같아 속 끓이는 경우, 채점 해보면 역시입니다, C 라도 줄라치면 '출석 다 하고 리포트 꼬박꼬박 내면 기본으로 나오는 점수가 C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이런 점수를 받아요?'

‘졸업반인데요, 다른 과목은 A로 깔았는데,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인데... ’

끝도 없이 불평이 쏟아지고, 전화통에 불이 납니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대학 가는지 기준이 없나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온 집안이 법석을 떠는 이런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서 그런 걸까요?
그나마 음악 들어야 공부되겠다고 맨발에 뛰어나온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제도에서 기계적으로 찍어져 나와 취미 하나 제대로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이 현실을 어떻게 고쳐야할까요?
개선이 없다면 우리 미래 정말 우울할 것 같습니다.

일본사람들 없는 말 만들어내기 실력은 좋던 나쁘던 굉장합니다.

식민지라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지 우리나라 어린 처녀들 잡아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끔찍한 일 저지르고 ‘절대로 그런 일 없다’며 쌩 까는 미친 짓부터, 자기들도 빤히 아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왜곡에, 날조사실은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그 뿐인가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그럴듯한 맹인소녀 이야기며 불면증에 시달린 귀족이 바흐에게 옆방에서 수면음악 만들라는 주문에 작곡됐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야기도요.

사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귀족의 방자함에 치를 떤 기억도 있습니다.

1981년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는 연주하다 흥이 나 멜로디를 흥얼거렸던 것까지 녹음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이 그랬대요.

"역시 국산은 못 써!"

남다르게 살아서 괴상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함께 뛰던 강아지가 성견이 되어 마지막 길, 애용하던 피아노가 밖으로 나갈 때 멀거니 바라보는 달마시안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던 영상자료입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요즈음, 제게 분노나 막막함, 슬픔을 가라앉혀주는 음악으로 이 곡에게 신세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대단한 치료제인 셈이지요.

도무지 마음을 추스릴 수 없게 힘들거나 이상한 흥분에 안정을 잃었을 때는 잠도 안자고 열 번도 넘게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해 삼십 여년, 적어도 삼천 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된 독일의 ‘헬무트 발햐’의 명증한 쳄발로소리 참 좋아요. 피아노 전신쯤에 해당하는 쳄발로연주가 제법 있는데 영원한 어둠에 갇힌 발햐의 구도자 같은 소리 듣다보면 겸손한 마음 챙기게 되는 귀한 음반입니다.

관현악, 실내악 등 상당히 많은 연주자들이 새롭게 시도한 연주도 많지만 제게는 역시 원래의 건반연주가 편안하더라고요. 이 곡이 워낙 대단한 음악이어서일 겁니다.

90년대 초 '세상에 뭐 이런 소설과 영화가 있담', 말도 못하게 놀랐던 작품이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양들의 침묵>과 동명의 영화입니다.

한 눈에도 '영국사람'임이 감지되는 안소니 홉킨스가 끔찍한 짓 하고난 후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바로 <골드베르크> 5번 변주인가 하는 장면입니다. 참 기막혔습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엽기라는 말을 그 때 처음 중얼거린 것 같아요.

분명히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였는데 아직도 못 구한 음반입니다. 좀 젊었을 때는 무슨 수를 쓰던 간에 억척을 떨며 찾아다녔을 텐데 수굿해 진 것 보면 제가 나이 들었군요.

가장 자주, 그리고 많이 들은 것이 81년 녹음, '역시 국산은 못 쓴다!'는 바로 그 음반입니다.
수십 년 신세졌더니 CD가 망가졌나봅니다. 나름대로 꽤 정갈하게 간수한 것 같은데 디지털 음반도 고장이 있나 보네요. 하긴 그렇게 오래 고생했으니 CD인들 골병이 안 들었을까요?
은퇴시켜야겠지요. 이러다 사리 나오겠습니다.

참, 그 해 겨울 그 여학생이 음반가게로 저를 찾아왔다더군요, 아마도 원하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연락처라도 줄 걸.

십 년 지났으니 '치사하게 미용성형 하기 없기!'라던 제 주문에 지금쯤 자기가 원했던 ‘소아암’ 퇴치하려 틀림없이 좋은 의사로, 대단한 전사로 분주히 뛰어 다닐 듯합니다.

자기 이름만 달랑 남긴 김채리 의사선생,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젊고 바른 그 마음씨에 따끈한 차 한 잔 꼭 대접하고 싶군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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