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쟤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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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쟤 죽여!"
  • 임계재 시민기자
  • 승인 2013.07.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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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재의 음악놀이터]마스네의 오페라 '마농'

방송을 보거나 들으면서 많이 거슬리는 말이 결혼한 여성들이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표현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TV에 나오는 젊은 연예인 당사자나 아내인 여성이 ‘오빠가...’ 이렇게 말하면 화가 치밉니다. 한 세대 지나면 다른 표현이 대체할 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 없는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 보면 세태라는 것, 참 이상합니다.

뛰어나게 고운 여인들은 언제나 수난을 달고 사나봅니다.

웬만큼 인물 좋으면 조신하고 편안하게 한 평생 여유 있게 살지만 사람 홀리게 아름다운 여자 가운데 무던한 삶 살아내기보다는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생이 더 많아 보여요.

특히나 역사 속에는 꽤 자주 아름다움이 저주가 된 경우가 많지요.

한 남자를 또는 한 나라를 무너뜨린 여인에 관한 이야기 참 많이도 있습니다.

오래 동안 억울한 누명을 쓴 천하절색인 여인들을 위해 역사를 반박해볼 생각입니다.

아직 존재 장소가 발견되지 않은 하(夏(하))나라 걸(傑(걸))왕 때 말희(妺(말)喜(희))가 나라 말아먹은 미녀죄인으로 첫 번째 등장합니다.

그 고운 여인이 도무지 웃질 않았다지요.

‘저 얼굴에 웃음이 서리면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다울 것인고?’ 걸왕은 속이 탔겠지요.

그런데 비단 옷자락이 찢기는 소리를 듣고 말희가 ‘깔깔’ 웃었다지요.

‘이거다!’

그래서 아예 전담으로 비단 찢는 궁녀를 두었다나요?

‘얼간이!’



마네스의 오페라 마농에 나오는 아리아 <꿈>

“여러분, 결국 이 설화를 보면 하나라 시대에 이미 비단이 있었다는 반증이지요, 또 당시에도 비단은 귀한 물품이니 상당한 금전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고요. 문화의 이면 읽어내는 훈련은 생각보다 쉬워요.”
 
“아!”

뭐 그래서 하나라가 망했다지요, 여자한테 홀려서 정치는 뒷전이고 국고 탕진해서요. 참 내!


상(商(상))나라 주(紂(주))왕은 더 심했지요.

주왕이 정신 줄 놓아버린 이 미인 때문에 은나라가 망했대요.

酒池肉林(주지육림)이니 炮烙(포락)之(지)刑(형) 이니 이런 말이 모두가 달기 때문에 생겨났대요.

달기에게 홀린 주왕이 정사는 뒷전이고 놀기만 해 나라가 위태로워질 지경이 되자

‘상감마마, 그리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통촉 하시옵소서!’ 이렇게 충신들의 간언이 빗발치니 왕으로서는 듣기 싫었겠지요. 그중에는 아마도 달기를 멀리하라는 충고도 했을 겁니다.

달기는 그저 왕이 놀자고 해 그랬을 뿐인데 실정의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오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자신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왕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오빠, 쟤 죽여!”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지금 세태를 보면 말이지요.

속없는 왕은 '그래, 충신의 심장은 어떤지 보자!'며 머저리마냥 어진 신하를 죽였고요.

가장 독한 미녀로 등극한 기록입니다, 달기로서는 자기가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텐데요..

또 있습니다.

주(周(주)}나라는 전, 후 두 시기로 나뉘지요.

西周(서주), 말기에 유왕(幽王(유왕))은 웃음이 없는 미녀 포사(褒(포)姒(사))를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아들도 떡 하니 낳은 이 여인에게 변화는 없었다네요.

그러다 적군이 쳐들어왔다는 봉화불이 오보였음이 밝혀졌을 때 평소 점잖 빼던 고위관리의 봉두난발에 흐트러진 매무새, 허둥거리던 행동에 막혔던 웃음보가 기능을 열었고 얼빠진 유왕은 시도 때도 없이 봉홧불 올리기 놀이를 했다지요.



베토벤의 가곡 <아델라이데>

양치기 목동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결정적 순간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요.

익히 잘 아는 얘기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나라 망한 죄'를 여인에게 뒤집어씌운 기록이 약 올라서입니다.

아니, 자기네가 아름다운 여인 웃는 모습 보려고 국고 탕진에 국정 직무유기 해놓고 어째 그 잘못을 여인들에게 돌린단 말입니까. 그 여인들은 김동환의 <웃은 죄>와 마찬가지로 ‘예쁜 죄’밖에 없잖아요. 그런데도 수 천 년 동안 ‘나라 말아먹은 악녀’라는 오명을 전가한 겁니다.

나라 망하면 미모 덕분에 호의호식하던 그 여인들도 함께 무너지는 판인데 어떤 미인계. 결사대가 자기 몸 불사르며 구렁텅이로 빠지겠느냐고요.

.일반적으로 역사란 남성의 기록이고 또 승자의 기록이니 새로운 국가를 세웠을 때 이전의 왕조를 칭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그러니 황음무도하고 국정에 게을러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이유를 대개는 왕이 정신 빼앗긴 미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닐지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누군가를 속죄양으로 삼는 인간의 심리가 여기도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늦잠에 숙제도 안 한 아이들이 ‘엄마 때문이야!’ 대드는 심정과 얼마나 다를까요?

서양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제법 눈에 뜨입니다.

백면서생인 아들이 ‘마농’이라는 ‘요물’에게 홀려 엉망이 됐대요. 얼마나 미인이었을까요?

방탕한 여인의 대명사,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어버린 마농에게 자기들은 무슨 짓을 한 건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지요.



스티븐 포스터의 <금발의 제니>

마스네([Jules Emile Frdric Massenet 1842∼1912)의 오페라 [마농]에 나오는 <꿈>이라는 아리아 한 번 들어 보세요.

수많은 성악가가 불렀지만 스웨덴 출신의 유씨 비욜링(Jussi Bjorling 1911-1960.)이 투명하고 보석 같은 음색으로 <Il Sogno>를 불러대기 시작하면 살 수가 없어요.

남자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답니다. 정말로 달콤한 <Il Sogno>, 속에 빠져요.

이왕이면 한 곡 더, 베토벤의 가곡 <아델라이데>도 곁들여보세요.

악녀가 아니라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노래한 이 곡은 수많은 성악가가 꼭 부르는 레퍼토리인데 수없이 많이 불렀을 이 곡은 [카네기 홀 실황]을 듣는 것도 좋더라고요. 미국공연임을 감안해서이어서인지 스티븐 포스터의 <금발의 제니>를 어눌한 발음으로 노래하는 것도 신선합니다.

어학실습실에 영상, 음악자료가 많았던 오래전, 순한 조교에게 <마농>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수업 마치고 나온 저에게 ‘만 원’을 내밀더군요.

“이게 무슨 돈이에요?”

“선생님이 만 원 빌려달라고 하셨잖아요.”

넘어갔습니다.

지금쯤 개구쟁이 아들을 둘 쯤 키우거나 혹은 좋은 교사로 무던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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