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오브 스틸' 리뷰

143분 동안 극장에 앉아서 뭘 보았나 하는 생각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엄청난 파괴와 특수효과가 나에게 준 것이 단지 무료함과 무감각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용을 이미 알 만큼 알고 본 영화라서 그럴까? 아니면 실제 영화의 수준이 그 정도일까? 엔딩 크레디트에 음악 한스 짐머를 보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묘한 쓴 웃음이 나왔다.

슈퍼맨 탄생

▲ 지구의 아버지 켄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대화장면. 사진출처=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우주에 지구 같은 별(생명체가 존재하는)이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간낭비라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사람이라면 늘 UFO의 존재와 외계인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그러한 가정(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가정)아래 먼 외계의 어느 별에서 한 생명이 태어난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해서 지구로 보내진다. 그의 별과 지구 환경의 차이 탓에 지구로 온 그 생명체는 엄청난 힘과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양부모 조나단 켄트(케빈 코스터너 분)와 마샤 켄트(다이안 레인 분)는 그를 평범하게 키우지만 그의 능력이 드러날 때면 어린 켄트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부분이 아마 켄트 부부의 슈퍼맨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성년이 된 슈퍼맨, 즉 클락 켄트(칼엘, 헨리 카빌 분)는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 방황하게 된다. 

황야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장 27절)

▲ 지구를 구하려는 슈퍼맨의 낯설기만 한 저 표정. 사진출처=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조엘(슈퍼맨의 생부)이 지구로 그의 아들을 보내면서 그들(지구인들)에게는 이 아이가 신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은 어쩌면 창세기의 이 구절에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클락이 성장하면서 잠재된 그의 능력을 깨닫고 스스로 그 능력을 사용하려하자 지구인 아버지 켄트는 아들 켄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네 능력 때문에 네 삶이 위험해질 수 있어!” 하지만 어린 켄트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마침내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게 된다. 이 대목은 예수께서 황야에 나아가 스스로 40일을 지낸 것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황야의 방황 끝에 마침내 클락은 그의 별(크립톤)에서 온 단서를 찾고 그는 지구를 구할 슈퍼맨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마치 예수께서 방황을 끝내시고 돌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을 구원하려 하신 것처럼.

가시면류관

▲ 스스로 인류를 위해(?) 가시면류관을 쓰는 슈퍼맨. 사진출처=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클락의 슈퍼맨으로의 변화과정에서 발생한 파장은 결국 그의 별에서 슈퍼맨의 생부를 죽인 조드 장군(마이클 새넌 분)을 지구로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어 지구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봉착한다. 스스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슈퍼맨은 지구를 위해 스스로 가시면류관을 쓰고 조드의 요구에 응한다. 하지만 이 지점부터 영화는 갑자기 돌변한다. 하기야 이 영화의 원작이 만화이며 슈퍼맨은 배트맨과 더불어 DC 코믹스의 대표적 주인공 아닌가! 그 나마 유지되어 왔던 극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분위기를 모두 뒤로 하고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엄청난 규모의 파괴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잠재의식

9.11 이후로 미국인의 잠재의식 속에는 그들의 국토가 파괴당하는 장면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다. 마블사의 영웅이 총출동하는 어밴져스(2012)에도 미국의 도시가 외계인에 의해 침공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 영화에서도 역시 미국의 거대도시가 파괴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잠재의식 속에는 또 하나의 묘한 의식도 역시 숨어 있는데 미국이 공격당하면 세계 전제, 즉 인류의 공멸이라는 기이한 의식도 숨어 있다. 즉 미국과 세계를 등치시키는 건전하지 못한 생각을 자주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 슈퍼맨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또 다른 외계의 우주)에서 내려온 신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하늘로의 비상장면에서 마치 전 인류의 안위를 걱정하는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전편, 즉 “슈퍼맨 리턴즈”에도 이 장면과 유사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제 그런 비장한 표정과 분위기가 매우 낯설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습기까지 하다.

사족

로이스 레인(에이미 에덤스 분)은 이 영화 속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딱히 무슨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할 수 없이 있는 배역이라는 느낌만 강했는데 왜 그녀는 슈퍼맨을 따라다니고 슈퍼맨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한편, 그 큰 건물을 파괴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아무리 슈퍼맨이 나오는 영화라 할지라도 조금 심한 파괴 장면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그 엄청난 살상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로이스)을 살리려고 슈퍼맨은 또 얼마나 바쁜지! 예전의 슈퍼맨은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먼저 살리고 싸움은 나중에 했는데 이 영화의 슈퍼맨은 결국 지구를 구하기는 하지만 거의 악당에게 당하기만 하고 사람들 살리는 일에는 무관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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