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덤으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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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덤으로 갔어요'
  • 임계재 시민기자
  • 승인 2013.06.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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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재의 음악놀이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 '황제'

학기말이 가까워 오면 이번 학기 잘 가르쳤나?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빠진 것 없나 살피며 허둥댑니다. 무슨 일이든 끝내고 보면 흡족하고 후련한 경우는 드물지요.

논문 쓰는 후배들에게 자주 이르는 말이 있습니다.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말까 하는 논문 쓸 욕심 내지 말아요! 쓰고 나서야 시작이니까" "이중섭 화백이 그러셨대. 당신의 친구들이 얇은 호주머니 털어 그림 한 점 사주면 ‘내가 다음에 꼭 좋은 그림으로 바꿔줄게’라고. 그러니 부담감 너무 많이 갖지 말고 일단 써!”

라고요. 자기가 한 일 뭔가 찜찜해 속에 있는 말 표현한 것으로 이보다 더 기막힌 발언이 있을까요?

수업시간에 가끔 시를 읽어줍니다. 더러 아는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지요.

백석의 <여승>이라는 시, 알지요?

... 섶벌같이 나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이어지는 다음 대목은 떠 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 그래서 어쨌다고요?

“돌무덤으로 갔어요, 으앙!”

한 학생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세상에나! 이러니 안 이쁠 수가 있겠습니까.

자, 마지막 연을 봅시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함께 떨어진 그런 날이 있었다.

수업과 연계하니 음식문화로 잇습니다. ‘아마도 평안도 출신의 시인이라서 다음 구절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

평안도 냉면은 꿩 냉면이라고도 해요. 강원도도 있지만 산 깊은 평안도라서 그런 것 아닐지, 함경도에서는 바다에서 잡은 가오리나 명태 삭힌 것을 꾸미로 넣은 감자 전분의 비빔국수가 더 많아요.

농산물 풍부한 전라도, 경상도 김치는 양념, 젓갈 많이 넣는데 비해 서울이북은 그렇지 않고 간도 슴슴해요.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맛이지요.

그러니 음식문화라는 것은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재료가 나오느냐로 특성화 되는 겁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늘 먹어오면 그것이 입맛에 고착되는 거지요.

중국 음식도 그래요, 북방에는 강이 적어 물고기 요리가 드물지요, 반면에 쌀 많이 나는 장강 이남은 쌀국수도 많아요, 알겠지요?
 
“네”

사실 음식 전문가들이 들으면 반박할 여지는 많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거든요.

음식문화 설명하다 애꿎은 학생 울렸지만 참 고맙고 기특할 뿐입니다.

기말고사 보는 날은 학교 카페테리아에 비치해 놓은 돼지저금통과 권장도서목록을 들고 갑니다.
답안지 받으며 ‘한 학기 구박 받느라 고생했다', 방학 잘 보내라고 인사하고 권장도서 목록 건네며 돼지저금통에 지폐 한 장씩 넣으라 청합니다. 동전도 고맙지만 들고 가다 손목 나가게 무겁거든요.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학기마다 돼지 한 마리씩 전하는 저에게 [돼지엄마]라고 하십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 세계 여러 곳에 퍼뜨릴 경비 모금이 자원봉사자인 저의 일입니다.
 
그걸 아시니 “돼지엄마야, 1억만 모아 온나” 하셨거든요. 해야지요.

‘돼지도 입맛이 까다로워 동전은 싫어해요, 천 원 이상씩 넣어주면 일본군 종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잘 전할게요.’ 군말 없이 용돈 털어냅니다. 고마울 뿐입니다.

<여승> 구절에 울던 학생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시험지 다 받을 때까지 긴장하며 떨던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남자친구나 애인 있어?”

민망한 표정으로 대꾸합니다.
 
“없어요...”
“너 같은 녀석은 원래 내가 가르칠 수 없어, 자존심 상해서. 우리학교에 교문이 왜 없는 줄 알아? 전에 교문 있었을 때 남학생들이 하도 만나달라고 매달려서 무너진 거야!”

그러면서 별 것 아닌 중국물품을 건넸습니다.
 
“이건 자네한테 주는 게 아냐, <여승>을 외우며 울음이 솟는 신통한 딸을 낳아주신 네 부모님께 전해. 라면국물 떠 자실 때 편하게 쓰시라고. 그리고 애인 생겨 함께 국물 떠먹을 때까지는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

고맙습니다”.

두 손 덜덜 떨며 화장지에 대충 싼 것을 소중하게 받아갑니다. 이 학생 수업 열심히 들었습니다, 당연히 답도 깔끔하게 잘 썼더군요.

다음 학기 초 누군가 벼락같이 와서 매달립니다.

“실크로드 다녀왔어요, 학교 프로그램에 당선돼서요.”

“잘 했구나!.”


왜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당연하지요.
순수한 열정과 맑은 영혼 지닌 젊은이들 많이 있으니 ‘요즘 젊은 애들...’ 하지 말자구요.
혹시라도 좀 거슬리는 부분 있더라도 대부분은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될 것 같아요.




 

지난 해 있었던 일을 떠 올리니 그 젊은 영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습니다.
제목이 잘못 번역됐다는데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입니다.
학교에서 강요하는 방식과 다르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순수하고 맑은 어린 영혼들이 기득권의 메이저 권력에 저항하는 이야기지요.

다행히 이들의 타는 목마름을 달래 줄 선장이 나타나 학생들에게는 단비를, 기득권자들에게는 두통을 안겨주지요. 구태의연한 책은 아예 찢어버려라, 답답하기만 했던 젊은 숨통 틔워주는 명구, ‘바로 지금’이라는 <카르페 디엠>. 소름 돋습니다.

하지만 이런 혁명이 쉽게 성공하나요, 공고한 권력 테두리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 아닌 캡틴은 쫓겨나며 마지막 물건 챙기러 교실에 들어가지요.

하나 둘 일어나는 학생들, ‘자리에 앉아, 앉으라고!’ 으르렁 거리는 새로운 선생의 외침을 모른 체하며 한 둘씩 외치는
 
“캡틴, 오 나의 캡틴!”

누군들 이 장면에서 눈매 시큰해지지 않을까요.
그 장면에 깔리는 모리스 자르의 음악, [닥터 지바고]의 음악을 만들었던 영화음악의 거장인데 두 말할 필요 있을라고요.

“고맙네, 그대들, 고마워!”

애틋한 눈길로 작별하는 이 영혼들의 상실을 더 위로해 주는 것은 영화가 끝난 후의 음악인 듯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베토벤의 5개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황제>라는 별칭이 붙은 제 5번의 2악장이 깔립니다.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로 짐작되는 이 부분의 서정적이며 끝없이 이어질 듯 이어지는 피아니시모의 여리고도 준엄한 음표에서 누구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처럼 떠올린 이 영화의 끝을 지키고 앉았을 때 들렸던 베토벤의 음악을 <여승>의 간절한 슬픔을 잘 이해했던 학생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ps, 엄혹한 독재시대에 월북(사실은 이 시인은 다만 평안도 출신일 뿐인데도)이란 이유로 읽지 못했던 이 시인의 시를 알기에 신통하게 여겼더니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더군요.
이게 어딘가요? <국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까지 다 읽을 수 있는데요.
그래서 한 가지 덧붙입니다.
한여름, 보나마나 무지하게 더울 텐데 백석을 평생 사랑했던 분의 시주로 요정에서 청정지대로 변한 성북동 [길상사] 절 마당을 꼭 걸어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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