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당신은 내 맘이예요!

물론 영어에 대한 이야기지만, 세상에서 가장 느낌이 좋은 말로 엄마가 꼽혔다.

2등은 아빠가 아닌 Passion이었다는 후문도 있었고...

어쨋든 엄마라는 말과 마더라는 말의 공통된 '음'은 가장 어렸을 적에 가장 기분좋은 소리였으며, 젖을 빨 때에나 옹알이를 시작할 때에 최초로 나오는 소리라고 하니...

그런 포근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동서양에서 공통된 현상임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엄마란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눈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늦은 밤, 예배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그 곳에서 어머니는 왜 그렇게 울면서 기도를 했을까?

나중에 어떤이에게 듣기로는 그 때의 눈물은 슬픔만은 아니라고 이야기 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그 눈물에 먹먹해 짐은 어쩔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가장 좋은 시절을 나는 울릉도에서 보냈다.

작은 낙원과도 같은 곳. 여름에는 수영으로, 겨울에는 썰매타기로, 마치 만화영화 속 '코난'과 같이 혹은 그것보다 더 즐겁게 그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내 유년은 참 행복했다.


그럼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몇 번 실례를 하곤 했다.

그래도 큰 것은 한 번도 실수 한 적이 없었는데.... 아뿔사!

동네 제일 꼭대기 초등학교 계단을 내려오면서부터 신호가 온 것이었다.

급한 김에, 지금이라면 어떻게든지 해결을 보련만,

정말로 안간힘으로 견디면서 한 발짝 한 발짝을 내 딛었지만...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큰 변이 바지를 적시고 신발에 흘러내리면서 질퍽한 느낌과...

한창 따뜻한 가을 볕과 길가의 코스모스가 하늘 거리던 그 길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물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머니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초등학교 육학년이나 되어서.. 바지에 X을 한 없이 묻혀 온 나에게..

어머니는 아마도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가지셨을 것이다.

큰 대야에 물을 한 껏 부어서 그렇게 빨래를 하셨다.

십 수년 전 그 때처럼...


지금 남은 삶 동안에, 그렇게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사랑할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마저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불행이면서도 조금 더 큰 행운이다.


그래서 신은 모든 이들과 함께 할 수가 없을 때가 만약 있다면, 그 때를 위해 우리에게 어머니를 주셨다고 한다.

아마도,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하는 까닭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 하는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어머니가 그리워서일 것이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외국어 번역 행정사'라는 넘기 힘든 관문을 뚫기 위해 독서실에 스며든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이런 나를 위해 매일 오후 1시에, 7시에, 새벽 2시에 도시락을 들고, 혹은 데리러 오는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느낀다.

무릎을 다쳐 기브스를 했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 지도 모른다.


그냥,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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