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도 안 발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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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도 안 발랐어요~!"
  • 임계재 시민기자
  • 승인 2013.05.31 14: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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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재의 음악놀이터]사춘기소녀에게 권하는 모짜르트 협주곡

부부금슬 좋고 자녀 이쁜 가정은 이상이지요. 누구라도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요. 꽤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는 집이 있습니다.

‘아들 낳은 후 딸 낳으면 100점, 딸 낳고 아들 낳으면 200점’이라고 말해 딸 없거나 아들 없는 집 속을 긁는 그 집 아내는 유난히 깨끗한 피부에 야무진 입매를 오므리며 자기애들이 이뻐서 눈매까지 반달같이 휘어집니다.

 “그러다 몰매 맞으려고...”
 
제가 놀려도 웃습니다. ‘알콩달콩’산다고 소문난 집입니다.
오랜만에 그 집에 갔더랬습니다. 음식솜씨 좋은 안주인의 풍성한 상차림에 입이 헤벌어집니다.

제 식성에 맞춰 요것조것 나물은 또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요, 전업주부도 아니면서 바지런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원칙주의자 남편은 세상에 흔한 비리에 그 누구보다 화내고 분노합니다. 젊은 시절 두 눈으로 목격한 5월을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반듯한 사람 특유의 결기가 묻어나요.

맑은 양반이라 그 댁은 선물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차 한 통이면 몹시 반가워하니까요.
너무 꼿꼿한 남편이 때론 피곤도 하겠지요. 여자들 모여 수다 판 벌일 때 누군가의 남편 칭찬하면 그 아내들은
 
“에이구, 살아 봐요.”


하며 입을 삐죽이지요. 어느 집이나 비슷합니다.

사춘기 아이들 흔히 그렇듯 집에 간다고 일어날 때야 제 방에서 빼꼼 나와 인사합니다.

“어머, 얘가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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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말을 듣던 안 듣던 사춘기 딸내미 청춘이 얼굴에 피어납니다. 엄마 닮아 복사꽃마냥 분홍빛 도는 피부, 풍성하고 윤나는 머리카락, 여인의 모습을 갖춰가는 열 예닐곱 살 어린 처녀, 이런 곱디고운 애들을, 꽃이 피는지 달빛이 환한지도 모른 채 오밤중까지 책상에 잡아 앉혀야만 하는 입시라는 시스템에 맨 날 화를 낼 뿐 해결책 못 내놓는 우리의 무능함이 발밑이 꺼집니다.

각설하고 영양 좋고 건강미 넘치는 사춘기 딸내미 오랜만에 본 저의 찬탄에 원칙적이고 매사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바른생활사나이 그 집 아빠가 얼른 뒷말을 낚아챕니다.

“얘 얼굴, 뭐 바른 것 같지요? 한나도 안 발랐어요.”

'에라, 이 팔불출'. '킥' 웃음이 솟았습니다. 저야말로 팔불출 아빠가
 
“한나도 안 미웠거든요.”

문화란 다름을 인정하는 거라며 자주 쓰는 보충자료가 우리영화 [황산벌]입니다. 여기서 학생들이 가장 흔히 짚는 오류가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라고 말하는 점입니다.

당시로서는 백제 언어, 신라어인데 말입니다. 통일국가가 되어서야 수도를 중심으로 표준어, 방언으로 구분하는 건데, 현재를 기준으로 사투리라고 인지합니다. 당연히 바로잡아 줍니다.

“내는 계백이 무습데이..”

하던 찌질한 김유신 역을 맡은 정진영,

“앗쌀하게 거시기 해 불자!”

는 단순무식의 계백. 박중훈.

‘다름’을 배우는 문화비교에 이만한 자료도 흔치 않더라고요.
경상도 사투리, 또는 신라시대 말은 친구 덕에 꽤 알아듣는 편이지만, 백제 말투는 아직 헤맵니다.

그 중에 가장 따뜻하고 정겨운 말투는 전라도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이를 때 꼭 '우리 애기'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그러겠지요.

“우리 애기들 키울 때 어려워서 내 입에는 ...”




참 뭉클하고 언제가 되어도 못 갚을 부모의 깊은 정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말인 것 같아요.

자식 이야기에 맑고 겸손한 아빠가 갓 피어나는 딸의 얼굴을 가리키며 '(화장품) 한나도 안 바른 얼굴' 이라며 자랑스레 말하는 것 역시 '우리 애기'와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부모 마음 이니까요.

참 따뜻한 집입니다, 부부가 서로 존대하면서 참 이쁘게 살아요. 적은 나이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만 그렇게 본 게 아닙니다. 주변에서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얼굴에 화장품) 한나도 안 바른 딸내미'가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범생이에 사춘기도 모른 채 지나갔다는 그 아빠는 어려서 그리도 이쁘고 착했던 딸이 자기에게 말대꾸 심하게 하고 소리 지르고, 이러니 아마도 하늘이 반 쯤 무너졌을 겁니다.

어느 날 절박한 하소연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무개 중국이라도 데려갔다 와주세요!”

극심한 사춘기 자녀 둔 부모가 들으면 비웃겠지만 그 부부로서는 불감당이었겠지요.
한 열흘 겪어보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굳이 아이 행동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빈틈없는 부모의 꼼꼼한 보살핌에 젖었다는 점인 것 같았습니다. 워낙 투명한 부모라 어긋남이 없는 집이고 그러니 부모 모습과 같은 것이지만 이 딸은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자체 모순이 들어있더란 말이지요.

부모가 조금 성급한 겁니다. 걱정 마세요. 누구 자식인데.
5월, ‘가정의 달’이라잖아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뭐 이런 거 아니어도 매 번 평화롭던 가정에 도무지 말썽이라곤 일으킨 적 없었던 딸, 성장통이 그 정도면 아주 양호한 겁니다.

모르는 척 슬그머니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3번> 들려줘보세요.

터지듯 시작되는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은 매끈하고 따듯한 활 당기는 소리를 듣다보면. 청소년시기, 괴테가 말한 '질풍노도' 이런 곡 듣다보면 안에서 들끓는 성질 좀 가라앉을 듯도 해요. 반복해 들어 멜로디 익숙해지면 ’터키시‘라는 별명이 붙은 협주곡 5번 들려주고요. 급할 건 없습니다.

그나저나 아무개 아빠, 엄마. 지난여름 문제생긴 제 몸 고친다고 이리저리 애써준 후로 도통 얼굴 못보고 지냈는데 문자도 없네요.





지난주 몇 년 만에 장날 구경 갔더니 이상기온 탓인지 채소가게에 오이가 쌓여있더군요. 서로 바삐 사느라 무심했지만 중국 다녀온 후 그 좋은 솜씨에 밥 한 끼 안 주고, 그래만 봐요. 종강하기 전에 오이지 몇 접 담을 건데 수틀리면 오이지 ‘한나도’ 안 줄지 몰라요!

무서운 협박입니다. 행복한 그 집에 말입니다.

콜린 데이비스 지휘의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아르튀르 그루미오의 까다롭지 않은 연주가 참 좋습니다. 보편성에 우아함을 곁들였다고 할까요.

두 장짜리로 모차르트 바이올린협주곡 5곡 다 있고 거기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 협주곡인 [심포니아 콘체르탄테]까지 들어있는 꽤 좋은 음반인 듯해요, 보급판이라 부담도 없으니 금상첨화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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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2013-07-20 21:42:44
어느집인지 모르겠지만 참 이쁘게 묘사하셨네요.여느 집이나 사춘기 아이들 키우는집은 마찬가지일겁니다 .평범한 얘기일진데 글쓰신 분은 분명 맑고 고운 심성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구성지게 쓰신 글솜씨도 예사롭지 않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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