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삽입곡,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

90년 대 어떤 먹튀가 있었습니다. 가진 돈이 29만1000원뿐이라고 우겼지요. 그 아들은 가난한 아비 버려두고 하늘에서 돈벼락이 바로 코앞에 떨어졌는지 출판계를 공룡처럼 먹어들어 갔습니다. 그 출판사의 번역소설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크게 보면 유부녀 바람난 이야기입니다만 매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권 뿌린 후 그 남편들에게 뒷말 많이 들었습니다.

“거 왜 이런 책 선물해 저녁도 못 먹게 하는 거요?!”

아낙들이 지는 해 바라보며 자기세계에 빠지는 바람에 저녁밥도 안 짓고 훌쩍인 집이 꽤 많았다나요.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국내 개봉한 날, 서울에도 ‘서울극장(지금은 없어졌어요.)앞에는 하필 날 잡아 비까지 내리는 오후 중년여성이 장사진을 쳤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결혼이민(특히 여성)이 많아졌지요.

세계 제2차 대전 때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국 농촌의 군인과 결혼해 온 이탈리아 여성은 교사를 하다가 출산 이후로 남의 집 숟가락 개수도 다 아는 농촌마을에서 그럭저럭 농부의 아낙으로 살아갑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사춘기 남매, 마음 터놓을 곳 없는 아줌마가 아침밥 준비하며 켜 놓은 라디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오페라 아리아가 흐릅니다. <카스타 디바(Casta Diva) 순결한 여신이여)>,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하이라이트이지요.

2층에서 아침 먹으려 팔랑 팔랑 내려온 십 대 딸이 야박하게 채널을 돌립니다, 좀 전의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는 요란한 컨트리 음악으로 바뀌고 엄마는 씁쓸한 얼굴이 됩니다.

먹는 데만 열중할 뿐 다정한 말 한 마디 없는 가족들, 그 남편이 아이들 데리고 먼 곳으로 떠나자 아내는 집안 치우고 나무로 만든 데크에서 시원해 보이는 음료를 마십니다. 고바우 심한 길로 차 한 대가 나타나고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가운데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가 역시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으로 깔립니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이야기입니다.
큰 얼개로 본다면 마흔 넘긴 주부가 남편 없는 며칠 동안 외간남자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니 흔한 말로 불륜이라 해도 반박할 말 없습니다. 1960년대였고 엄밀히 말하면 어쨌든 사고 쳤으니까요. 이 두 장면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거의 설명된다고 봅니다.

우리 여성들,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 모두 여신 아닙니까, 남이 또는 스스로가 인정 못 할뿐이지. 비록 밥 지으면서 그나마 다 듣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라디오에서 첫 곡으로 <카스타 디바>를 흘려주지요. 저는 이 노래에 무릎을 쳤습니다. 음악감독이 누굴까.

그리고 또 한 곡,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이제 사랑이 시작됨을 알려주지 않습니까. 이건 공식이지요. 거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배역을 잘 소화시킨다고 확신하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색으로 흐르니 뭘 더 바라겠습니까.

오페라 줄거리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경우도 더러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뻔한 내용’이 더 많지요. 각각의 배역이 자기 역할을 노래하는데 뭐 그리 문학적 우월성을 나타내야만 할까요. 청중도 생각해야지요.
설령 알아듣지 못해도 줄거리를 말로 하니 그저 추임새 넣으면 되지 않을런지요.

수업과 연관해 더러 영화를 보여주는데 좀 거시기해도 가끔 이 작품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연기가 기막힌 메릴 스트립이라는 뛰어난 배우의 역할 해석에 반한 면도 있습니다.

두 시간 속강할 때
 
"영화 봅니다. 미국영화예요."

"와~!"

박수와 함성이 강의실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모르는 게 있습니다.

“<초중경처>와 비교 분석해 A4 7장, 위아래 여백주기 반으로 줄여서 두 주 후에 제출해요, 기간 넘기면 감점입니다.”

“에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두 시간이나 들인 보충교재인데 말입니다. 당연한 일인데.
저는 피드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생들 밤새워 작성한 리포트 대충 넘기는 짓은 못하겠어요. 그래서 심지어 띄어쓰기 맞춤법도 고쳐주기도 합니다.

제가 컴맹에 가까운 실력으로 검색, 전자편지 보내기 등 겨우 살아내는 형편이지만 남의 글 베낀 것은 알아낼 재간이 있습니다. 빤하지요. 대학생이 쓰면 얼마나 쓰겠습니까, 저도 그랬던 걸요.

이 숙제하면서 흔하게 베낀 대목, '주인공 여성은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교양인이다.' 요렇게 씁니다. 그러면 빨간 연필로 극성스레 반박하지요.

"주인공은 이탈리아 여성입니다, 오페라는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 성행했으니 살면서 유명한 아리아 정도는 자주 듣지요, 우리 판소리를 생각해 봐요. ‘<춘향전>의 쑥대머리’정도는 대충 알잖아요. 차라리 미국이주 후 공부해 영화 초반 예이츠의 시 구절을 쪽지에 써 사진작가의 작업 장소에 붙인 게 더 지식인 측면을 드러내지요."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알고 보니 이 대목이 어떤 블로거의 영화평이더군요. 에구, 공부 좀 하지. 겁도 없네. 오페라 아리아 듣는 여성은 교양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교양인'이고? 개 풀 뜯어먹네.

말도 안 되는 잣대로 스스로 멋진 글이라 자부하는 사람, 서양 클래식음악 들으면 정신적으로 우아한 사람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해(노름 따위는 빼고요)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뭐든 상관일까요. 더구나 열린 공간이라 누구라도 접속하는데 잘못된 지식이 민들레 꽃씨처럼 널리 퍼지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카스타 디바>는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제일인 것 같습니다. 누가 그랬어요. 칼라스가 부르면 ‘순결한 여신’이지만 다른 성악가가 부른 건 ‘순결한 여인’이라고요! 절단입니다.

가능하면 달랑 그 부분만 듣지 마시고 오케스트라 반주가 뒤까지 이어지는 좀 긴 부분을 다 들으시도록. 장엄한 풀 오케스트려이션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책상이라도 두드리게 됩니다.

혹시 음반 구하시려면 몇 년 전 EMI에서 나온 [마리아 칼라스] 100곡 베스트, CD 3장으로 출간된 게 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했습니다. 한 2만 원 정도.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가 종합세트처럼 죽자고 이어집니다. 이게 웬 떡인지요. 여러 사람에게 선물 했습니다.

함께 행복하자고요.

<임계재의 음악놀이터>는 음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거나 감동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공간이다. 글쓴이 임계재 선생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작가이면서, 현재 숙명여대에서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학창시절, 전공 공부보다는 음악듣기에 더 빠져 있었다는 게 글쓴이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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