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다솔사 중흥' 내건 주지(住持) 동초스님
"차(茶), 만당, 등신불.. 자랑스런 역사․문화 아름답게 가꿀 것"

▲ 다솔사의 새 주지 동초스님. 그는 '다솔사 중흥'을 꿈꾸며 지역민들에게 함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유난히 낮은 기온으로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예사로 쓰이던 4월이 지나가니 공기가 사뭇 다르다. 농부의 손을 떠난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몸을 살찌우기에는 안성맞춤이겠다.

대지에 푸름이 더하는 요즘, 초록빛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분홍빛이 있으니 곧 연등이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함과 동시에 중생들의 소원성취 염원도 이 연등에 깃들어 있음이다.

이런 가운데 불기2557년 부처님오신날을 더욱 특별하게 준비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다솔사(多率寺)다.

다솔사에는 흔히 ‘천년고찰’이란 말이 수식어로 따르지만 사실 다솔사의 역사는 천년에서 훨씬 더한다. 신라 지증왕 4년, 서기 503년에 창건했으니 1510년이란 나이를 먹은 셈이다. 물론 그때 이름은 다솔사가 아니라 영악사(靈嶽寺)였다. 다솔사의 지나온 역사를 하나하나 설명하긴 어려우나 그 오랜 세월만큼 역사적, 문화적 가치 또한 크고 높음이다.

▲ 동초스님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차와 함께 스스럼없이 풀어냈다.
그런데 굳이 지금 다솔사에 주목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변화의 꿈틀거림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다솔사의 가까운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면,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그 이후엔 ‘등신불’로 대표되는 문학의 산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주지로 있던 효당스님은 차(茶)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차(茶)문화 보급에 힘썼다. 효당스님 이전에는 차를 즐겨 마시는 문화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니 새삼 놀랍다. 그는 ‘한국의 차도’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런 갖가지 이유로 불교계는 물론 다양한 관점에서 주목받아온 다솔사가 어느 때부턴가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역시 절을 관리하는 스님인 주지(住持)의 책임이 크다 하겠다.

다솔사에 변화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도 여기 있다. 새로이 주지를 맡은 이는 동초(東初)스님으로, 그는 다솔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봉일암에서 10년째 수행하며 ‘있는 듯 없는 듯’ 다솔사를 지켜봐온 분이다. 그를 만나 다솔사에 관한 이야기와 주지를 맡은 심경을 들었다.

동초스님이 기거하는 방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茶道無門’(다도무문)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전 주지인 효당스님의 낙관이 찍힌 현판으로 한눈에 그의 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으니, 진품은 아니란 점이다. 효당스님의 글을 본떠 최근 만든 것이라 했다.

“요즘은 기술이 워낙 좋아서 꼭 몇 십 년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니까.”

▲ 동초스님 거처에 걸린 효당스님의 글씨 현판 '다도무문'
그 전에 동초스님을 몇 번 만났던 기억으론 웃음 띤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멋쩍게 웃는 표정이 해맑아 보였다.

다도무문(茶道無門). ‘차를 마시는 데 있어 특별한 문턱이 없음’을 뜻한다는데, 듣고 보니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초스님은 올해 갓 딴 찻잎으로 만들었다는 녹차를 권하고는 출가 직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40년 넘는 세월을 거리낌 없이 풀어놓았다.

“나는 사실 무술이나 도를 닦는 것에 관심이 더 있었지. 그러다 내 나이 열여덟에 태백산에 들어갔다가 출가를 결심했고, 부산 범어사에서 본격적인 행자의 길을 걸었어. 그때도 은사인 지효스님이 ‘왜 왔느냐’고 묻자 ‘도인 찾아 왔습니다’라고 답했으니...”

해인사에서 운영하는 승가대학을 졸업한 동초스님은 전국 곳곳을 돌며 수행하다 1980년 다솔사와 첫 인연을 맺는다. 당시 은사인 지효스님을 모시며 봉일암에서 2년 간 기거했다. 이후 가끔씩 다솔사에 들르곤 했던 그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봉일암에 눌러 앉아 수행해왔다.

▲ 녹차 잎을 따고 있는 동초스님. 그는 다솔사가 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기간에 동초스님은 태극권에 심취했다. 수행 초기 얻었던 상기병을 깨끗이 치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상기병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에겐 낯설게 들릴 텐데, 우리 같은 수행자들이 수행 중 몸 속의 기운이 치솟아 생기는 병으로 보면 돼. 스님들한텐 치명적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 이 상기병이 20대 초반에 생겨 끊임없이 괴롭혔는데, 태극권을 하면서 완전히 나았어. 태극권은 결국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운동이고, 명상 또는 선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지.”

동초스님은 중국 당대 10대 무술 명사인 진정뢰 대사로부터 동선진식태극권을 사사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요즘도 아침마다 지역 동호인들과 다솔사 경내에서 태극권으로 수행한다고. 그의 태극권 찬사는 이어진다.

“태극권은 몸을 무리하게 다루는 운동이 아니라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 건강 문제에 예민한 요즘, 시대적으로도 꼭 맞아.”

동초스님이 조계종단과 범어사로부터 다솔사 주지 임명을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올해 들어서야 제 자리에 앉았다. 다솔사의 속사정이 조금은 복잡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과거에 연연할 그가 아니었다. 지나간 허물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와 미래를 보고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금 그의 최대 관심사를 요약하면 ‘다솔사의 중흥’이다. 이야기 내내 끝까지 놓치지 않는 맥(脈)이었다고나 할까.

“효당스님, 만해 한용운, 독립결사체 만당(卍黨), 김동리의 등신불, 차 문화의 발상지, 1500년이 넘는 역사, ……. 다솔사가 안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대단하다. 이를 살려서 아름답게 가꾸고, 다솔사를 찾는 이들에게 휴식처와 수양처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불자들은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그는 다솔사의 중흥과 발전을 위한 추진 기구를 만들어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 속에 투명하게 운영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 또는 선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옛 도량도 일부 복원하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효당스님과 지역 차인들이 중심이 돼 이끌어온 차문화 보급에도 힘쓸 생각이다. 그 노력의 하나로 오는 24일 ‘다솔사 차 축제’를 연다. 동초스님은 “차(茶)와 도(道)는 불이(不二)이며 무문(無門)”이라 말하며 ‘새로운 인연’을 제안했다.

천오백년을 넘게 사천과 호흡해 온 다솔사. 새 출발점에 선 다솔사가 어떤 변화의 몸짓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끝으로, 그 각오를 다솔사의 사이버법당(www.dasolsa.co.kr) 주지인사말에서 찾는다.

“다솔사의 오늘이 비록 어제의 바탕 위에서 가뭇없이 흔들렸으나, 다솔사의 내일은 오늘을 토대로 여법한 도량으로 환골탈태 할 것입니다.”

▲ 다솔사에서는 지역 차인들과 함께 제1회 다솔사 차 축제를 오는 24일 개최한다. 사진은 관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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