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엄마의 엄마가 담던 술, 이제는 내가 손수...

지난 4일 삼천포 5일장에서 누룩을 샀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안점산봉수대를 지나 무지개 샘에서 물을 길러왔다.

안점산봉수꾼들이 이 샘물로 제수를 올려 소원성취를 빌었다. 그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보호하며, 길을 안내하였고, 성스러운 영험이 있었다고 한다.

차를 우려 먹을때도 수돗물 혹은 약수에 따라 차맛이 다르듯, 술 또한 좋은 물로 담그면 좋을 것 같아 꾸역꾸역 무지개 샘을 찾은 것이다.

 

지인이 고맙게도 본가에 비워진 술독을 가져다 주신다.

그리고 4월 10일은 12지 중 말날이고...

찹쌀과 백미 한 되로 밥을 하고, 누룩은 깨끗하게 씻고 불려 걸러내고...

깨끗하게 씻은 독에 꼬들꼬들 잘 말려진 밥을 넣고, 누룩 걸려낸 샘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다. 아직 찬기운이 있는지라 깨끗이 씻어놓은 이불을 덮는다.

일단 술독에서 동동주가 익어갈 것이다.

 

누룩 으깨다 술 향이 솔솔나는 통에 술에 취한듯,

발효되고 나면 함께 마실 지인들 생각에 행복에 취하고...

 

문득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가 떠오른다.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생각하다, 대학시절 문예학습 했던 기억이 몽실몽실.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로 문예학습을 하며, 박목월 시인을 엄청 비판했던 기억.

92년 리얼리즘 문학이 대세를 이루면서, 일본강점기 수탈정책으로 술익는 마을마다가 가당찮았던 것이다.

여직 책 제목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때는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이였을까?

 

오늘도 엄마에게서 주섬주섬 들은 이야기로 술을 담근다,

외증조모의 엄마, 외할머니의 엄마,엄마의 엄마, 울엄마의 딸 내가...

 

▲ 동동주가 완성되었습니다(4월22일)
지금 40대로 접어든 내 기억 속에는 분명 어린시절의 ‘마을’이 존재했으며, 마을공동체 문화가 그래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뜻조차 퇴색되어 가는 것 같다.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말 또는 마실이라고도 한다. 말은 지명에 사용되고 있는데, 아랫말, 윗말에 포함되어 있다.

마을마다 제각각의 음식. 놀이. 전통문화가 있었으며, 집집마다 내려오는 문화도 조금씩 달랐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전통문화가 퇴색되어 가고, 아니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여러 사회 문제들 또한 공동체문화의 부재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공동체마을 조성과 지속적인 관심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모색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동동동 밥알이 떠오르고, 뽁딲뽁딲 발효가 되어가는 술독 들여다보며, 술지게미 먹고 술에 취해 대청마루에 뻗었다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없는 생각을 한다.

곧 동동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 울 아이들에 먹여볼까.....

엄마에게서 옛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지울수 있듯, 우리 아이들도 제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옛이야기로 오늘을 살았으면 좋겠다.

술이 익어가고, 사람도 구수하게 익어가고, 봄도 익어 여름의 초입에서 제각각의 열매를 맺었으면 참 좋겠다.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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