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어머니' 앞에 한없이 여린 '육군 상병' 이야기

▲ 모처럼의 휴가를 어머니 가게에서 보내고 있는 육군 상병 이훈민 씨와 그의 어머니 곽성진 씨가 활짝 웃고 있다.
"톡톡톡, 송송송.."

도마 위 칼질 소리가 경쾌한 이곳은 사천읍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이다. 오후5시를 넘긴 시간, 퇴근길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선술집 이름은 ‘황토실비’. 그리고 웬만한 애주가라면 한 번 쯤 들렀을 이 가게 주인은 곽성진(52) 씨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져 어린 아들을 이 가게에 의지해 키웠다.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미뤄 짐작할 수 있음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인내의 세월을 어찌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까.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유난히 속을 썩일 무렵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되고, 투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또 다른 병마도 곽 씨의 약해진 몸을 기웃거리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역시 ‘피붙이’가 있어서다. 한때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던 아들이지만 이젠 의젓한 성인, 그것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이다. 곽 씨의 손놀림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 이날(7일), 그 곁을 든든한 아들 이훈민(24) 씨가 지키고 있었다.

<하병주가 만난 사람>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육군 상병 이훈민 씨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 어렸을 적 시절의 회한, 사회진출을 앞둔 군인으로서의 고민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상병 계급장 단지 3개월이라 들었다. 요즘 군 생활은 어떤가?

= 구타나 얼차려 등 친구나 선배로부터 입대 전에 들었던 여러 가지 얘기들은 과장된 것이었다. 선임과 후임들 모두 관계가 좋은 편이다. 최근에 새로 지은 막사로 옮겨, 내무반에서 동기들끼리만 생활해 마음이 더 편하다. 어느 새 선임보다 후임이 더 많아졌는데, 오히려 이등병 시절보다 신경 쓸 일은 더 많아졌다.

▲ 육군 상병 훈민 씨. 그가 어머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즘 동료 군인들의 주요 관심사는 뭔가. 여전히 예쁜 여자 연예인이 1위?

= (웃음)그렇다. 걸그룹이나 미모의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앞은 늘 만원이다. 그런데 전역 후 뭘 할까 고민하는 동기나 선임도 많다. 취침 전 눈 감고 있으면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청년 실업’ 문제도 와 닿는다. 전역 후 이런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계획을 말하면 동료들이 자문해주기도 한다. 간부들도 관심을 가져 줘서 참고할 내용이 많다.

△청소년 시절, 시쳇말로 ‘좀 놀았다’고 하던데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 부끄러울 따름이다.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약한 애들한테 못되게 굴고... 심지어 친구를 때리기도 하고 돈도 뺏었다. 그 땐 죄책감도 없었고, 그저 ‘멋’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를 1년 꿇어야 했다. 선생님들과 엄마 속 참 많이 썩였다.

△그럼 스스로 돌아볼 때 언제부터 생각이 달라졌나?

= 18살 때부터 ‘이건 아니다’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만 그럴 뿐 버릇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21살 무렵 옷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돈 귀한 줄 알게 됐고, 자연스레 어머니 고생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라면 자식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더 나은 직장 찾기를 바라기가 보통이다. 대학 공부에는 관심 없나?

= A대학 산업인테리어학과에 진학했지만 하루 만에 휴학했다. 재미도 자신도 없었다. 아직은 대학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대학공부보다 현장공부에 더 관심이 간다. 지금 나의 주 관심사는 옷을 예쁘고 멋스럽게 입는 일이다. 내가 추천한 대로 옷을 갖춰 입고 만족해하는 손님들을 보면 더 없이 기쁘다.

▲ 이 씨 어머니가 운영하는 선술집 벽에 걸린 시. 손님으로 왔던 신동포 시인이 어머니 곽 씨를 모티브로 써 기증했다.
△8개월 만에 어머니를 만난 것으로 안다. 휴가 내내 어머니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고 하던데...

=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가게는)저녁부터 문을 여니까 그 전까지는 친구들을 만난다든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어머니가 앓고 있는 병의 심각성을 잘 몰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힘든 어머니를 알아주지 못했고,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번에 오랜만에 어머니를 보니 옛날 같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겉모습도 그렇고 속도 더 상한 것 같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밖에 없어서 부대 복귀전까지는 (어머니)일을 돕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견충돌이 없지 않을 텐데 그럴 땐 어찌 하는지?

= 예전엔 반항도 했지만 요즘은 일방적으로 야단을 맞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무조건 내가 지는 것이다. 단, 내 진로문제와 관련해선 아직 내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어머니 하시는 일이 술을 파는 일이다. 거부감은 없나?

= ‘황토실비’ 하면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 특별히 거부감이나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진 않다. 그럼에도 예전부터 ‘다른 일을 했으면..’하고 바랐다.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손님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했다. 얼마 전까지는 친구들이 자주 들러 일을 거들곤 했는데, 이젠 친구들도 모두 군대 있거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마음이 더 불안하다.

▲ 암투병 중임에도 가게일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어머니. 짧은 휴가기간이라도 어머니를 도울 수 있어 행복한 아들 훈민 군.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주방에서 음식 준비에 부산했던 어머니 곽 씨. 그녀에게 아들에 관해 물었다.

“요즘 워낙 잘하니까 옛날 애 먹였던 건 다 잊었죠. 엄마를 많이 위한다는 마음, 느껴요. 군 생활 잘 마치고 제 하고 싶은 일 찾아 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훈민 씨는 앞으로 패션디렉터가 되는 것이 꿈이다. 따라서 군 생활 틈틈이 관련 정보와 자료를 스크랩하는 등 꿈을 키워 나가고 싶어 한다. 2013년 새해가 그에게 도전과 희망을 주는 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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