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흐르는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 바로잡을 기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당시 '국민학교'의 명칭이 일제 때 황국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자질을 익혀 천황께 복무하라는 뜻으로 일제가 지어준 사실을 알았을 때에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등교할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입고 갔던 검은 색 그 교복이 왜놈의 순사 복장을 본떠와 만들어졌다는 것을 졸업 후 한참 지난 후에 알았을 때 한순간 나는 무지와 부끄러움으로 더 큰 충격 속에 빠졌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까지 나 자신도 모르게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황국시민으로 살아왔단 말인가? 도대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가로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일제에 대항한 독립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치욕의 36년 동안 우리의 목숨을 짐승 목숨 다루듯이 '지들' 마음대로 결정짓던 그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의 상징인 '순사'의 복장은 그냥 일본식 옷이 아니라 일본의 정신과 천황 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해방이후 국가백년지대계인 교육분야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거의 3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의 모든 중고등학생이 입는 교복으로 입고 다녔다.

해방이후에도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을 찬양하고 천황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입고 다니고 황국의 신민으로 충성을 다하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에게 지배당했던 그 36년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직도 그 복장을 자랑스럽게 입고다니냐고 속으로 비웃지 않았을까?

부끄럽게도 너무도 부끄럽게도 그런 일들이 얼마나 선조와 독립투사들을 욕되게 하는 것인가 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 바로 너와 나 대한민국이었다.

어디 이 뿐이었겠나, 친일의 잔재가.......

지금은 어떠한가? 일제의 치욕을 떨쳐내고 그 잔재를 뿌리뽑고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고, 중고등학교 교복을 자율화 했다고 일제의 잔재를 씻어 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일본 순사 복장의 교복보다 국민학교 명칭처럼 눈에 보이는 내용보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대한민국의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

▲ 해방직전 광복군 시절의 장준하 선생(좌) 해방직전 일본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우)
일본천황에게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던 정보장교 출신으로 남로당 간부를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영구 집권을 꿈꾸다가 부하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마친 민족의 배신자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으로 떠받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일제의 징용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친일파 출신의 대통령에게 "만약 지금우리가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도 독립군을 죽이러 다니고 있을 것 아니냐"고 일갈하신 분이 사실상 타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음에도 국가와 사회가 침묵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우리는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했다고 볼 수 없다.

모질고도 질긴 일제의 잔재는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우리 고장의 문화와 일상생활에도 뿌리 깊게 녹아있다. 봄이 오면 사천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하나가 선진리성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진리 왜성(船津里倭城) 즉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하면서 왜군 장수 모리 요시시로[毛利吉城]가 축조한 성이다.

문제는 이 왜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사천시의 재정 또는 도비 등으로 복원됐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왜성이라서 전혀 문화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소중한 우리 문화재의 복원은 제껴두고 왜 하필이면 이 곳 왜성에 우리 돈을 쏟아 부어 흔적만 남은 성을 복원했는지 소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일본식 성곽의 사령부 역할을 하던 복원된 선진리 왜성 천수각( 天守閣)터 위에 세워진 충령비. 비문에는 6.25부터 지리산 공비 토벌 까지 장렬히 산화한 공군장병 65명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 쓰여있다. 과연 호국영령들께서 이곳에서 편안하게 쉬고 계실까? 역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둔다나 이 곳은 임란 때 조명연합군이 참패한 곳으로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그들의 전승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기념식수가 오늘날 선진리 벚꽃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을 벚꽃놀이를 즐기는 상춘객이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그 선진리 왜성에서 사천시의 공식적인 문화제인 '와룡문화제'가 개최되었는데 대체 사천시는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다른 곳으로 둘러 보자. 곤명면의 단종,세종 태실지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지만 아직도 이 조선의 성서로운 단종 태실지는 당시 사천지역 친일파 최씨에게 불하되어 최씨 일가의 영원한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고 있는 형세다. 뻔뻔하기도 하거니와 이런 저런 시민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행위를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큰소리 치며 오늘날까지 떵떵거리는 것이 우리 지역의 현실이다. 가까이 있는 세종태실지도 마찬가지이다. 원래의 위치에서 쫒겨나고 그 위치에는 어느 재벌 그룹의 가족묘가 들어서 있다.

▲ 단종태실지에 자리잡은 사천지역 대표적인 친일파 최씨묘. 태실지의 부조물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일제에 충성한 친일파 묘지의 망부석이 되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친일의 잔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지역이나 시대, 분야를 뛰어 넘어 질기고도 독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온갖 기득권을 거머쥐고 아직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호위호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전방위로 퍼져있는 친일세력의 영향력 확대의 출발은 해방직후 친일세력을 비호한 미군, 그리고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무력화시킨 이승만 때문이다. 나아가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친일파는 탄탄대로를 걸어 오늘날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친일의 막강한 영향력이 노골적으로 표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의 영혼과 우리 사회를 갉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집권세력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결국 출발은 이승만 정권이고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고리역할을 한 박정희 정권과 직접 연결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연결 구조를 대부분 유권자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마치 한일전 축구대회에서 목이터져라 응원하면 스스로가 애국자라고 여기고 실제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친일세력의 은밀한 영향력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버지가 친일파라고 해서 딸이 친일파라고 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냉혹한 독재자라고 해서 그의 딸도 독재자가 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과거 아버지의 정치 후광을 지금 현재 자신에게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그 정치 자산을 관리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통령 선거에 임한다면 이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흔히들 역사의 강물이 거꾸로 흐를 경우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다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많은 고통과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고들 한다. 하지만 역사의 물줄기 방향을 제대로 바꾸는 일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대가 잘못 잡은 역사의 물줄기를 오늘날 우리가 바로잡지 못하면 나의 후손들이 나보다 훨씬 더 혹독한 고통과 희생을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12월 19일, 거꾸로 흐르는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기 위한 역사적 순간이다.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의 길을 갈 것인가! 그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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