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오솔길] 영화 '루퍼' 리뷰

 

▲ SBS콘텐츠허브 제공. 영화 포스터

현재의 내 삶과 노력이 미래의 나를 결정하기 때문에 미래의 내 삶은 현재의 그림자와 같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내 삶에 개입하려 한다면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어 뒤죽박죽 섞이게 될 터인데 다행히 현실의 우리 삶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타임머신’ 즉 ‘시간여행’이라는 시퀀스를 통해 가능성을 열고 그것으로부터 빚어질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여행

2010년에 개봉된 영화 “인셉션”은 ‘꿈’이라는 시퀀스를 통해 시, 공간이 왜곡되는 상황을 설정하였는데 매우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 공간 왜곡의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차용하는데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는 SF영화의 단골메뉴이지만 이 영화가 SF영화라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그 보다는 SF적 요소를 하나의 시퀀스로 이용하고 있는 드라마쪽에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 SBS콘텐츠허브 제공. 시.공간을 초월해서 만난 두 명의 조.

어쨌거나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는 앞서 이야기 한 미래와 현재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다. 오히려 미래에 의한 현재의 변화라는 상식 논리의 오류를 가져올 수 있는데 이러한 발상으로부터 영화적 긴장이 조성된다. 주인공 현재의 조(조셉 고든 레빗 분)와 마주앉은 미래의 조(부루스 윌리스 분)의 장면은 일찍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장면인데 미래의 조는 현재의 조를 미래의 상황에 맞추려고 현재의 조를 협박한다. 이 상황은 현재와 미래가 동일 공간에 존재하고 시간은 마치 조각보처럼 수평 혹은 수직으로 이어지는 상황처럼 보인다. 당연히 물리적 오류이지만 이런 영화적 상상은 관객에게 특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디스토피아

미래에 대한 전망이 희망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은 현재의 삶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대중들의 생각은 영화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최근의 영화, 특히 SF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미래세계는 대부분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끝이 희망보다는 절망적일 것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모양이다. 현재의 발전 속도라면 미래의 기술력은 영화만큼이거나 어쩌면 영화를 뛰어 넘을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보는 절망적 미래는 아니어도 현재의 자본주의가 반성 없이 지속된다면 분명 미래의 모습은 비관적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의 무대는 의외로 미국 중, 남부에 위치한 캔사스시티다. 흔히 등장하는 미국의 초 거대도시(뉴욕, L.A, 시카고..)가 아니라 목축 중심의 도시가 무대이다. 이것은 영화에서 필요한 목초지 배경과 외부와의 단절이 가능한 도시라는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관객들이 뜻밖의 공간에서 느끼는 신선함을 감독은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2074년이 시간적 배경이므로 지금으로부터 62년 뒤의 일인데 현재의 문명발전 속도라면 62년 뒤에는 영화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 문명이 반성 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감독이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문명의 모습은 분명 반성 없이 발전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이는 금전만능이 가져오는 인간성 상실의 징조는 지금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토리라인

뫼비우스가 1858년 발견한 안과 겉의 구분이 없는 2차원 곡면은 그 뒤 순환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조의 삶이 순환하고 있음을 비유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으로 생각한다.

현재의 조는 시간여행을 통해 현재로 보내진 미래의 조 자신을 죽이고 난 뒤 세월이 지나 다시 미래의 조가 된다. 그 미래의 조는 그 뒤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현재의 조를 만나는데 그 시점은 사실 미래도 아니고 엄격하게 현재도 아니다. 즉 뫼비우스 띠에서 안쪽 면을 시간으로 바깥을 공간으로 가정했을 때, 두 사람(지금의 조와 미래의 조)은 시간과 공간이 모호한 어떤 지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거기에다 염력이라는 제재를 적절히 가미하여 스토리를 두텁게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제재 때문에 난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상영 시간 대부분,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인지 감독의 주된 목소리는 없고 가십거리만 가득한 주간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의 궤를 벗어나고 있는데 앞부분의 어지러운 느낌을 제압하고 남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족

시드(피어스 가뇽 분)를 키우는 사라(에밀리 브런트 분)의 모정은 뜬금없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와 대척점에 놓인 장치로서 사용된 이 모정의 출처는 매우 모호하고 어색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조와 사라의 사랑은 영화 스토리 라인에서 어떤 의미도 없는 사건이다. 또 미래의 조가 만나 시간여행까지 결심하게 만드는 미지의 중국 여인(허청 분)과 미래의 조 사이의 사랑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 사랑은 전체 스토리의 주된 동력원이 되는 것임에도 당위성이 떨어져 오히려 영화적인 힘을 잃게 한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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