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7. 인연도 때가 따로 있는 법이야!

▲ 유적지 안에 해안가가 바로 위치해 있어 이색적 풍경을 연출해 내는 뚤룸 유적지와 해변
멕시코를 여행한 많은 이들이 최고로 꼽는 뚤룸~!
유적지를 자꾸 보다 보니, 웬만한 건 그냥 큰 돌덩어리로 보이던 시점이라, 보지 않으려 했지만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 여행객 아영이를 만나 함께 갔다.

크지 않은 유적지에 왜 이리 수영복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나 했더니 유적지와 함께 위치한 비치를 본 후 바로 이해가 되었다.
얼마 후 나도 그들과 함께 합류했으니깐.ㅋㅋ

사람이 적은 아침에 갔으면 나만의 작은 해변을 즐기면서 나 또한 많은 이들처럼 뚤룸을 최고의 해변으로 꼽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로 가득한 오후에 간 나로서는 유적지와 함께 있는 비치가 특이했다는 것 이외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른 외국 여행자와 이야기했더니 뚤룸 유적지 옆에 위치한 공용 해변이 그리 예쁘단다. 그 친구의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있는 뚤룸 비치를 보니 또 그 말에 공감이 되면서 언젠가 그 바닷가에 꼭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뚤룸 유적지와 해변 바위 사이로 보이던 에메랄드빛 바다
그래서 난 이런 표현을 좋아한다.
다른 여행자들이 어디어디를 가 봤냐고 묻는데, 난 그 장소에 별 관심이 없을 때
"아직은 나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말한다.

그때의 뚤룸은 나랑 큰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인연이 닿았으니 큰 인연 한 번 만들러 가야겠다.

나에게 인연의 때를 다시금 생각나게 한 곳은 ‘세레스톤’이다. 2월에 ‘세레스톤’에 다녀온 오스트리아인 친구 코로나가 그랬다.

수천 마리의 플라맹고를 봤는데, ‘어메이징’했다고.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난 서양아이들의 ‘어메이징’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코로나가 한 번 가보라고 강력하게 권할 때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에서 플라맹고를 이미 보았기에 굳이 보러 가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4월에 ‘메리다’에서 만난 스페인에서 온 성격 강한 국선 변호사 출신 마리아가 같이 가자고 꼬득였을 때는, 갔다.
시간적 여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때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 수천마리의 플라멩고 대신에 본 세레스톤의 아름다운 다른 풍경
메리다에서 거의 3시간 걸려 간 ‘세레스톤’에서, 처음엔 너무 신났다.
스페인어가 네이티브인 마리아 덕분에 투어 보트도 저렴하게 선택했고, 그 보트의 속도가 기대와 달리 엄청 빨라 보트를 타는 것 자체만도 신났으니깐.

하지만 코로나가 본 수천마리의 어메이징한 플라맹고는 다른 동네에 놀러 가고 없어 우리가 본 건 5마리 플라맹고가 전부~!

놀러 간 플라맹고는 5월에 다시 온단다. 헐~!!

투어를 출발하기 전에 그 이야기를 진작 해 줬어야지, 우리가 플라맹고 보러 왔지 이렇게 보트 타러 온 줄 아나. 쩝…….

거기다 수영복까지 챙겨 가며 기대했던 ‘eye of water’는 정말 조그만 하고, 수학여행 온 듯 한 현지 학생들이 우글거려 구경하는데 5분도 안 걸렸다.

이래서 다 여행엔 때가 있는 거다.
그때 2월에 와서 수천마리 플라맹고가 나는 모습을 보았으면 정말 장관이었을 텐데…….

아쉬운 맘에 5월에 다시 메리다에 와서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는데, 그걸 눈치 챈 마리아가 말한다.

"나 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하지만 네가 5월에 다시 메리다에 온다고 하면 나, 너를 죽여 버릴테야~!" 

헐~! 무서운 여인 같으니라고~!
왜 마리아가 그토록 강력하게 말했냐고?

▲ 남쪽 나라로 놀러가 5마리 밖에 볼 수 없었던 플라멩고. 그나마 사진에는 4마리만 나왔다.ㅠㅠ
사실 다시 온 메리다는 엄청 더웠다.
오죽했음 온몸에 땀띠가 나서 매일 밤잠을 못 이룰 정도였으니.

거기다 마리아는 나에게 이왕 다시 왔으니 과테말라, 니콰라구아 등 센트럴 아메리카의 다른 매력적인 나라로 가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쉽게 동의하지 않자,

"너 캐리비안 바다가 너무 좋다고 했지? 플라야 델 카르멘 같은 관광지 말고 리얼 캐리비안이 보고 싶지 않니? 그럼 과테말라 리빙스톤으로 가야 해."

라며,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메리다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하려 했다.

나에겐 다시 갈 정도로 매력적인 메리다가 마리아에겐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일반 변호사 보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하루 6시간 여유롭게 일하며, 이렇게 본인 맘만 먹으면 자비휴가를 보낼 수 있는 현재 생활이 너무 좋다는 강력한 여인 마리아는 내가 그 후에 다시 메리다에 간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겠지.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모든 건 인연의 때가 따로 있으니 어쩌겠는가.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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