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도 겁박도 아니라면 ‘흔들리지 않는’ 목표 따라 산청으로 가라!

▲ KAI가 공장부지 무상임대와 폐수처리시설 지원 등을 요구하자 사천시가 이를 대부분 수락했다. 엄청난 특혜 약속이다. 이에 가난한 지자체를 상대로 무리한 지원책을 요구한다며 KAI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다.
A320 날개 하부구조물(=WBP) 생산공장을 두고 KAI의 ‘몸값 부풀리기’가 위험수위다. 산청군에 이어 사천시로부터도 공장부지 무상임대와 폐수처리시설 지원, 나아가 직원들의 복지시설까지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KAI 김홍경 사장이 ‘베팅을 아주 잘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사천시는 몰라도 사천시민들이 여기에 동의할 지는 의문이다. 지난 16일, 사천시가 KAI에 공장 유치를 위한 제안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벌써부터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뉴스사천의 기사 댓글에 올라온 표현을 빌리면 '거지 똥구멍에 콩나물을 빼먹어라!'라는 게 다수 시민들의 마음이다. 기업 유치에 발버둥치는 자치단체들의 약점을 이용해 가난하기 짝이 없는 그들에게 온갖 혜택을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는 거다.

따라서 “이런 조건이라면 굳이 카이 신규 공장을 유치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등등하다.

물론 반대의 여론도 있다. “항공산업이 사천에 특화된 산업이라 할 수 있는데, 관련 공장이 1차로 빠져나가면 2차, 3차 연이어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유치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무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선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지방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퍼 줄 수는 없으니 사회적 합의 정도는 필요한 법이니까.

이쯤에서 사천시가 KAI에 제공하기로 한 ‘혜택’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먼저 KAI가 필요하다는 공장부지 6만6000㎡(=2만평)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종포(신촌)스포츠파크 부지를 용도 변경해 11월 10일까지 공장 착공이 가능하도록 모든 조건을 갖춰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 종포지구는 사천만에서 퍼 올린 준설토만 매립돼 있을 뿐 부지정지작업이나 수도, 전기, 가스 등 기본설비가 갖춰지지 않았다. 진입도로도 대형 트레일러가 드나들 수 있게 넓혀야 한다. 폐수처리장도 지어야 한다. 사천시는 이 일에 74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지만 턱 없이 적은 느낌이다. 여기에 준설토를 모두 치환해 달라는 요구까지 수용하려면 비용은 급격히 올라간다.

또 공장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하면 KAI는 해마다 1억 원 이상의 임대료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사천시의 몫이 된다. 이밖에 방파제 보완, 해수유입 방지시설과 배수펌프장 설치, 300대 규모의 주차시설과 식당 신축, 체육시설 지원 약속까지 지키려면 사천시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런 어마한 지원을 약속 받은 KAI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이를 두고 ‘단지 표정관리 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KAI 입장에선 진짜 난감한 상황일 수도 있음이다. 금서제2농공단지에 들어가기로 오래전부터 산청군과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사천시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천의 제안을 뿌리칠 새로운 명분을 찾아 다행이다. 사천시가 제 아무리 재주를 부리더라도 짧은 시간에 준설토 전체를 파내고 다른 흙으로 채우라는 조건은 만족시키지 못할 테니까.

결국 KAI는 산청군과 추진하던 A320 WBP 생산공장 신축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마당에 KAI에 당부 하나 꼭 해야겠다. 오는 24일 열릴 이사회에서 A320 WBP 생산공장부지로 산청군을 반드시 택하라고. 마치 정치인이나 지역사회의 여론에 부담을 느끼는 것처럼 가짜 표정 짓지 말고 당당하게 산청으로 가시란 말이다. 그게 바로 ‘흔들리지 않는’ 목표 아니었던가. 만약 사천시의 제안을 덜컥 수용하기라도 하면 사천시와 지역사회는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으니, 부디 가던 길 곱게 가시라.

또 하나. 지난 9일 사천시에 요구하기를 “(비록 산청으로 가더라도)종포부지는 당사 타사업 또는 협력업체 부지로 우선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바란다”고 했는데, 꿈 깨시라. 그대들 말처럼 종포부지는 공장을 짓기엔 적절치 않은 곳이다. 그러니 사천시가 제공하는 산업부지가 있다면 정상적인 가격으로 구입 또는 임대해서 떳떳하게 돈 벌기 바란다. 일감을 너무 싸게 맡았다고 가난한 지자체에 손 벌리는 일은 다시는 없게 하라.

정만규 사천시장에게도 당부할 말이 있다. 정 시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밝혔듯이, 시가 KAI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내용은 명백한 특혜다. “이런 공장 하나 더 유치했다가는 재정이 거덜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조건”이라 한 것처럼 그 말을 꼭 지키시라.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기는 어렵겠으나, 만약 KAI가 사천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시민의 혈세를 지원하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를 바란다.

이참에 사천시는 공단조성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개별공장이나 소규모 공업단지 허가를 남발하기보다 철저한 계획 속에 공단을 집적화 할 필요가 있다. 항공국가산업단지 조성계획이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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