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5. 오썸에 속고 나니 "오~썸~"

멕시코와 과테말라 플로레스에서 만난 외국여행자들은 "과테말라에 왔으면 마야 최대 유적지 ‘띠깔’도 좋지만 ‘세묵참페이’도 오썸이니 꼭 가라"고 다들 난리였다. 그래서 다들 끼리끼리, 혹은 커플끼리 온 투어에 나 혼자 씩씩하게 참여했다.

근데, 볼거리라고는 세묵참페이 투어 선전할 때 보이던 첫 번째 사진 정경이 전부다.
뭐, 바위 아래를 통과해 계곡 물이 흐르고, 남해 계단식 논과 매우 유사한 방식의 조그마한 물웅덩이에서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섞여 수영하며 놀긴 하지만 정말 그게 다다.

뭐 우리네 남해와 같은 지형을 본 적이 없는 외국 관광객들은 그 계단식 독특한 지형과 에메랄드 빛 물의 조화를 이룬 이곳에 격찬을 아끼지 않기도 하더라마는.

하지만 산과 계곡이 풍부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관광 상품화 시킨 그들의 능력이 더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 뷰 포인트에서 찍은 세묵참페이. 이 모습에 반해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어떻게 관광 상품화 시켰냐고?
고등학생 또래의 관광가이드 한 명이 투어 그룹을 인솔하여 뷰포인트를 알려 주며, 사진을 촬영하게 하고, 계단식 물웅덩이에서 다이빙하게 하게 하는 게 전부다.

자기네들도 이것만으로 관광 패키지로 파는 게 미안해서인지, 튜빙(커다란 튜브 타고 ‘까본’ 강물 따라 내려오는 거다. 근데 헐~! 물이 지저분하다)하고, 동굴 투어를 하나의 패키지화해서 판매한다.

그나마 재미있었던 건 동굴투어인데,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을 새끼손가락 굵기의 얇은 촛불 하나 의지해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격훈련 하듯이 밧줄 타고 바위를 오르기도 한다. 결코 다이빙을 해서는 안 되는 높이에서 다이빙을 유도하는 식이다.

근데, 이 유치한 동굴탐험이 나름 재미있었다.
황당한 건 난 나름 재미있다고 표현하면 충분한 상황을 서양 관광객들은 "오~썸~!"이라고 표현했다.

난 이 ‘오~썸!’을 ‘완전 멋있다, 완전 재미있다’로 받아들여 여러 번 황당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서적 표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꾸 그들에게 속았다.

하지만 정말로 오썸하고, 어메이징한 일은 이 투어 후에 일어났다.

▲ 리빙스톤에 정박되어 있던 라파의 자랑스런 크루즈 '카타마린'
투어를 끝내고, 호스텔로 복귀하는 트럭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투어에서 만난 폴란드계 미국인 라파가 “아까 너 수영하는 모습을 보니 남들과 다르던데, 전문적으로 수영 배웠니?”라고 물으며 말을 걸었다. “난 수영강사였고, 스쿠버와 요트 등 다른 해양스포츠도 했다”고 답했더니 본인도 ‘다이버 마스터’라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세일링 경험에 대해 자세히 묻기에 2년 정도 주말마다 세일링을 했고, 부산-일본 대마도 등 장거리 세일링 경험이 있다고 하니 향후 여행 일정을 묻는다.

어디를 여행했는지, 향후 여행지는 어디인지를 묻는 것은 여행자들 사이에 가장 흔한 질문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대답했는데, 듣고 있던 라파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리오둘세에 아름다운 내 카타마린(대형 요트의 한 종류.)이 있어" "그걸로 과테말라 리빙스톤, 온두라스 베이 아일랜드까지 이동할건데, 네 여행루트랑 비슷해. 그러니 너 내 크루즈 탈 생각 없니?"

"만약 네가 승낙만 한다면 승선해 있는 동안, 식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를 지불해 줄께. 대신 나랑 교대로 크루즈를 몰아주면 돼. 24시간 세일링 코스도 있어서 아나랑 단둘이 세일링을 하기에는 무리야" "여기 내 명함에 홈피 주소 있으니 확인하고, 3일 이내에 내 메일로 답변 줄래?”

그렇게 시작된 캐리비안 바다에서의 세일링 라이프~!

나에게 그 멋진 제안을 한 라파는 미국에서 IT사업을 하다가 조기은퇴 후, 카타마린 한 척을 구입해 이제는 상업용 크루즈 캡틴 겸 패디 마스터를 겸하고 있는 아저씨고, 처음에 라파 여자 친구로 오해한 폴란드에서 온 늘씬한 금발의 미녀 아나는 라파와 함께 일하고 있는 고용인이었다.

▲ *정박 중인 크루즈 '카타마린'. *크루즈 위에서 견시를 하는 동안 바라본 석양. 평화로운 그 순간에도 망망대해에서 갑자기 보이는 각종 위험물들를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아야 했다. *세일링을 하는 썬베싱을 즐기곤 하던 늘씬 폴란드 미녀 아나.*캐리비안 바다를 항해하는 나.(사진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3일 후 리빙스톤에서 다시 만난 이들과 출발 전 크루즈 청소도 하고, 물과 식품도 채우며 장거리 세일링을 준비하는데, 간만에 크루즈를 탄다고 생각하니 24시간 항해라고 겁주는 것에도 신경은커녕 흥분되어 가슴만 떨렸다.

기상 요건이 맞지 않아 4일 후 겨우 출발한 항해에서 내가 하는 일은 대략 4가지가 전부였다.

첫 번째, 스키퍼로서 요트 조정하기
두 번째, 스키퍼 교대 후 견시 보기
세 번째, 아나가 해주는 폴란드식 맛있는 요리 먹기~! ^ ^
네 번째, 아나랑 수다 떨며 썬 베씽하기

내가 사랑하는 캐리비안 바다를 세일링 한다는 사실에 매 순간 행복하기만 했는데, 특히, 높은 파도로 리빙스톤 앞 바다에서 정박해 밤을 셀 때 아나가 보여준 일종의 바다에서 하는 ‘반딧불 쇼’(칠흑 같이 검은 밤 막대기로 바다를 휘저으면 플랑크톤이 반딧불처럼 사방에서 보인다)는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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