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10. '누리던' 것에서 '알리는' 여행자'로 한 걸음..
때문에 당일의 스케줄이 맞으면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며 '에바 페론'이 잠들어 있는 '레콜레타'나 수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라보까’ 지역을 관광 다니기도 하고, 이민자의 한이 서린 섹시하면서도 발놀림이 우아한 '땅고'와 파워풀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우리나라 난타와 비슷한 유형의 ‘라 붐바’를 비롯한 착한 가격의 다양한 공연과 유서 깊은 카페의 커피를 맛보러 다니곤 했다.
물론 무리지어 다닐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는 소매치기와 강도사건으로 유명한 남미 지역을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라는 필연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특히 소가 사람 숫자 보다 많다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매일 3000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쇠고기를 사 스테이크를 요리해 먹으며 간만에 장기 여행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미식 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언니, 요새 저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들어보고 의견 좀 주세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본인이 남미 여행을 다니다 보니 한국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사관에 연락을 해 봤는데, 그런걸 뭐하려고 하려 하느냐며 귀찮게 대응해 순간 화가 치밀어 자기 혼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혼자 하려니 막막하니 언니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좋은 경험으로 남길 바랐기에 최대한 성공할 수 있도록 행사를 위한 세부 계획수립 지도와 동시에 같은 숙소 내 여행자들의 동참 권유, 업무분담을 비롯한 금전적 지원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한국음식 알리기 행사~!’
여행자로서의 빠듯한 예산과 우리의 요리실력, 그리고 서양인의 입맛 등을 고려하여 선택한 음식은 ‘야채전’
근데 채 썰어야 할 감자와 당근의 양이 많다 보니 손에 물집이 잡힌다. 헐~.
다행히 1시간 쯤 지나니 지원군들이 나섰고, 있는 프라이팬을 다 동원해 ‘야채전’ 굽기에 돌입.
기름 냄새가 질릴 때 쯤 거실에 나가보니 우리나라 태극기와 오늘의 행사를 알리기 위한 포스터 그리기가 한창이다.
그냥 '넌 디자인 전공이니 누구누구를 데리고 그림 담당'이란 간단한 지침만 줬을 뿐인데도 알아서 척척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 각자의 개성과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세부 지침 없이도 큰 원칙만 정해주면 저렇게 일을 잘 하는데, 우리네 사회는 세부적인 것까지 뭘 그리 정하는지…….“
마침내 야심차게 준비한 야채전과 광고 포스트를 가지고 우리가 출동한 곳은 노점상들이 늘어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페루 거리’
종이 박스로 얼기설기 엮은 판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Free Food"라고 외쳐서 사람들에게 호객 행위(?)를 한 후 음식을 받으러 온 이에게 이 음식은 한국의 야채전이고 이렇게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고 시범을 보여주니 맛 본 이들이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주었다.
거기에 더불어 한쪽에는 독도에 관한 포스터를 보여주고 그것에 관한 설명을 해 주니 전을 먹으며 이것저것 질문하는 적극적인 관광객들도 있었다.
또한 무언가를 금지시키고 금지당하는 것,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고 매사에 분석하며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작은 씨앗이 자라도록 지지하고,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들이 그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할 수 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