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세계일주]8. 모진 추위에 눈물 흘렸던 '토레스 델 파이네'

▲ 칠레의 최남단 '토레스 델 파이네(Torre del Paine) 국립공원'의 'W' 트래킹 후 눈거풀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피곤에 온 몸이 절어 있는 가운데서도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석양 무렵의 파이네 산괴 모습.
세상의 땅 끝을 묻는다면?

혹자는 남아메리카 최남단 파타고니아 지역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Torre del Paine)라 하고, 혹자는 ‘우수아이’라 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땅 끝이라 하는 사람들은 우수아이는 섬이기에 땅 끝이라 보기 어렵고, 진정한 땅 끝은 토레스 델 파이네라 주장하는 것이다.

‘큰 발’이란 뜻을 지닌 파타고니아는 1520년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던 마젤란이 원주민의 큰 발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 하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쪽 끝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암튼, 지구별의 땅 끝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빙하가 깎아 만든 파타고니아의 절대 비경으로 세계 최고의 트래킹 코스라 해서 난 그곳에 갔다. 파타고니아 지방의 가장 유명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그것도 나를 포함, 8명이라는 엄청난 인원과 함께.

남들이 5일 정도 소요된다는 그레이 빙하에서 시작하여 산 아래까지 ‘W’자 모양으로 걷는 ‘파이네 W 트레킹’을 3박 4일의 코스로 잡아서 말이다.

▲ 파타고니아 지역의 빙하가 만들어낸 절대 비경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 '엘 깔라파데(El Calafate) 빙하 국립공원'의 모레노 빙하. 이 모습에 반해 35시간 이상씩 버스를 타야할 정도로 불편한 교통상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일주 루트에서 파타고니아 지역을 포함 시켰었다.
함께한 소중한 트레킹 멤버들은, 내 맘대로 남미 최고의 아름다운 장소로 꼽는 아르헨티나의 엘 찰튼을 1박 2일간 함께 트레킹 했던 유진과 소담. 고등학교 1학년 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귀여운 외모와 새카맣게 그을려진 모습의 그녀들을 처음 만난 곳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민박집에서였다.

순간 민박집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그 친구들 주변을 둘러 앉아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르헨티나 전 여행지가 중동과 아프리카였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본인들은 대학교 1학년 휴학 중인 학생이란다. 헐~!

더 재미있는 건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녀들이 엄청난 술꾼들이었다는 것.
그녀들은 남미에선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다며 낮에도 술을 달고 다니던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매일 무언가를 정말 잘 잃어버리는 쌍둥이 형제 석민/석재 - 이들 형제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형 석민이는 남미 입성하자마자 카메라를 잃어버리더니, 며칠 후 뒤늦게 한국에서 합류한 동생 석재가 남미여행 신고식이라도 하듯 형 핸드폰을 어느 공연장에서 잃어버려 주변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너무 착하고 어수룩해서 마구 챙겨 주고 싶었던 형제들~!

▲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로 차가운 빙하 녹은 호수에 작은 팬티 한장에 의지(?)하여 자연과 하나 되신 용감한 할아버지. 잔뜩 껴입어도 오덜오덜 떨었던 그곳에서 여유롭게 수영까지 하고 나오시자 보았던 모든 이들이 박수이 아낌없는 보냈다.
하지만 이들 형제 또한 순해 보이는 언행과 어울리지 않게 어찌나 술을 좋아하던지, 이 녀석들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엄청난 와인과 맥주를 마셔야 했다…….

3박 4일 산행으로 짐이 엄청난 상황에서도 4리터의 와인은 포기할 수 없다며 들고 갈 정도였으니 그들의 알코올 사랑이 짐작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삼성 다니다 그만두고 1년간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부부여행자 현선/윤주였다.

그리고 전 세계 암벽 등반가들에게 꿈의 루트로 알려져 있는 수직 벽의 높이가 1000미터가 넘는 ‘세로토레’(Cerro Torre)와 ‘피츠로이’(Fitz Roy) 앞 에메랄드 빛 차가운 빙하 호수에 오직 팬티 한 장 달랑 입고 덤벙 뛰어드신 용감한 할아버지를 기억에 담았다.

또한 경험했다. 뼈 속을 스며드는 엄청난 추위를…….

유럽에서 남미로 넘어가면서 남미는 따뜻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겨울 옷가지를 다 버려 등산화 빼고는 특별한 겨울 산행 준비물이 없었던 나는 현선부부가 준 파카에 의지하여 등산을 했었는데, 걷는 동안의 세찬 바람도 추웠지만 무엇보다 텐트에서 맞이하는 밤의 추위는 그 상상을 초월했다.
가지고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잤는데도, 추워서 얼어 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실감할 수 있었고, 뼈 속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기온에 잠은 고사하고 눈물로 그 밤을 꼴딱 새웠다.

▲ 빙하 녹은 물이 인위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쪽빛을 보여주었던 파이네의 '그레이 호수'. 그 아름다운 색 때문에 등에 맨 배냥의 무게에 눌린 어깨와 다리의 통증을 견딜 수 있었다.
사실 현선부부 빼고 우리 모두 등산 준비물이 없었다. 그나마 등산화라도 있는 나는 양호한 편이었고,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남미로 온 소담과 유진은 운동화에 짧은 옷이 전부라 우리 모두 십시일반으로 옷이며 양말 등을 나눠 줘야 했다.

그리고 텐트 3개에, 침낭에다 3박 4일치의 먹을 것을 짊어지고 걷는 일일 8시간의 산행은 새삼 군에서의 훈련을 생각나게 할 만큼 힘들었고, 전역하고도 이게 웬 사서 고생이냐는 생각이 트래킹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함께한 멤버들 덕분이었다. 힘들다고 느낄 때도 귀염둥이 춤꾼 유진과 소담의 재롱(?)에 힘을 얻었고, 손이 얼어 밥 떠먹는 것조차 힘들 때는 현선의 익살스런 농담에 웃을 수 있었다.

아무리 남들이 여기저기 여행 다녔다고 해도 만년설 녹은 물에 밥 먹고 설거지 하는 고통을 겪어 보지 못했으면 말을 말라고 해. 이정도 해야 여행 좀 했다고 하지. 이건 완전 rare experience야!”

하지만 너무 고생한 탓이었을까?
3박 4일간의 W코스의 트래킹을 하는 동안 등골이 빠질 것 같은 짐과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로 남들이 그렇게 아름답다 한 토레스 델 파이네는 나에겐 죽음의 훈련장소로 기억에 남게 됐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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