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40여년 깊은 맛의 비밀은 자연산 광어와 제철 횟감

▲ 여느 해 보다 빨리 온 여름탓에 물횟집을 찾았다. 자연그대로의 바다에서 나온 해산물과 신선한 야채로 버무려진 횟감들 사이에 빙산처럼 앉은 얼음덩이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이번 물횟집 탐방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오후 5시부터 시작했다.

요즈음 식객들로 몹시 붐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물회가 성수기를 맞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이지만 여느 때보다 빨리 온 여름 탓 때문일 것이다. 하긴 사계절이 실종된 지는 오래되었다. 봄이 오는 둥 마는 둥 하였는데 벌써 한 여름이다.

노산 공원 아래 팔포 매립지에 위치하고 있고 식당 앞에는 제법 넓은 유료주차장이 있는데 삼학횟집 주차장도 겸하게 되어있다. 삼학횟집에 들리는 손님들은 무료란 말이겠다. 텅 비어 있다시피 한 주차장에는 관리인이 있는지 없는지 별로 관여하는 눈치도 없다.

식당에 들어가니 우리가 첫 손님이다. 그런데 주방에는 부산하다. 이제 앞으로 들어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분주함으로 활기가 넘친다. 우리가 이른 시간을 택한 것은 손님이 많아지면 주인과 인터뷰하는 것이 용이치 않기 때문인데 잘 맞추어 온 셈이다.

▲ 40여 년 물회집을 해 온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가는 박숙희 씨
그런데 아뿔싸, 40여년 물회를 말아 온 원조 할머니께서 병원에 가셨단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한사코 사양하는 따님과 인터뷰를 했다. 막상 이야기하다보니 이미 딸이 번연히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숙희(46세) 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어머니 일을 도우다가 5년 전 부터는 아예 사장으로 사업자 등록에 올렸단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물회 양념 맛은 어머니께서만 내실 수 있다며 겸손을 떤다. 효녀이다.

이 가게에는 세 종류의 물회가 나온다. 보통 물회, 특 물회, 전복 물회이다. 보통 물회에 해
삼이 더해 진 것이 ‘특 물회’이고, 전복이 더해진 것이 ‘전복 물회’이다. 가격도 약간씩 차이가 난다. 물론 비싼 전복이 들어간 전복 물회가 제일 비싸다. 또 전복 물회에는 국수 사리대신에 냉면 사리가 나온다.

“ 왜 전복 물회에만 국수사리 대신에 냉면 사리를 넣어요?”
“ 그냥 전복과 냉면사리가 잘 어울려서 그렇게 해요.”

‘왜’라고 물었는데 ‘그냥’이란다. 하긴 음식 맛을 내는데 ‘왜’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냥’그러면 되는 것이지.

물회에 들어가는 횟감들은 철에 따라 다르다. 봄에는 한치, 갑오징어, 장갱이에 자연산 광어가 들어간다. 광어는 반드시 자연산이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양식어 특유의 기름진 냄새와 맛이 나서 물회의 산뜻한 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뒷맛이 깔끔하다.

모조리 자연 그대로의 바다에서 나온 해산물들과 신선한 야채로 버무려진 횟감들 사이에 큼직한 얼음덩이들이 빙산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다. 먹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부분의 이 지역 사람들은 우선 국수사리를 물회에 말아서 반주를 마시며 안주처럼 먹고 난후, 나머지 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다. 이 때 나오는 공기 밥은 한 여름철에는 밥을 식혀 내지만 아직은 봄이라서 따뜻한 밥이 나왔다.

처음 물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취향에 따라 먹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보통은 국수사리를 물회에 말아서 먹고 난 후, 나머지 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다.
회덮밥을 회로 비빈 비빔밥이라고 한다면 물회는 회가 담겨 나오는 국밥이라 할 만하다.
40년 전에 잠수기 조합 사무실에 물횟집이 두 군데 있었단다. 음식점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장터 코너 비슷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해녀와 잠수부들이 물질해 온 해산물은 매일 오후에 경매를 봤고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고 사람 모이는 곳에 제일 먼저 서는 것이 먹거리 장터가 아닌가.

매일 바다에서 올라온 해산물이 재료가 되는 것이 당연하였고. 장터 음식이란 다 그렇듯이 실용적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갓 잡은 해산물과 횟감을 밥과 함께 국밥같이 한 대접에 담아내었던 것이다. 내륙지방 장터 국밥을 연상하면 된다. 재료가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아니고 싱싱한 해산물이란 차이이다.

그러다가 잠수기조합이 이전을 하면서 밥집도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조합 사무실 안에서 물회를 내 놓았던 아주머니 두 사람은 바닷가에 ‘물회’가게를 차렸고 그 중의 하나가 삼학횟집이다. 벌써 26년 전의 일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횟집 밖을 나서니 아직 초여름 저녁 햇살이 따갑다. 파도가 햇빛을 반사하여 마치 유리조각들을 뿌려 놓은 듯 한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한 장의 사진, 내 앨범에 꽂혀있는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 노산 공원 아래 팔포 매립지에 위치하고 있는 삼학물회
여기서 멀지 않은 사량도 한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찍은 40년 묵은 사진, 그 사진에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몇몇의 풋풋한 청춘 남녀들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마을에서 우리는 밤마다 동네 사람들과 회 잔치를 즐겼었다. 어부들이 갓 잡아 온 잡어를 뭉텅 뭉텅 회를 쳐서 바닷물에 헹군 후 세숫대야만큼이나 커다란 대접에 쏟아 넣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 쓱쓱 버무려 키득거리며 숟가락으로 퍼 먹었었다. 40년 전 잠수기 조합 내에서 경매꾼들이 먹었던 물회도 그런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오밀조밀 여러 가지 횟감과 야채로 단아하게 차려 내온 물회를 먹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다에 박혀있는 무인도 밑뿌리에 부딪치는 파도의 흰 이빨을 보는 순간 40년 전 섬마을의 정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캄캄한 밤바다 위에 반딧불 마냥 떠 있는 어선들의 집어등, 그리고 너무나 자연적이다 못해 야생적이기까지 했던 막대접에 담긴 회가 생각났던 것이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고 파도는 여전한데, 빛나던 청춘의 빛은 바래져 버렸다. 젊음을 구가했던 사진 속의 그 때 소년, 소녀들은 이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늙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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