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세계일주>7. 여행길의 불편했던 기억 '머리손질'

▲ 여행을 하는 동안 '머리손질을 어떻게 할까'는 큰 고민거리였다. 사진은 불안하고 어설퍼 보이는 손놀림과는 달리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준 셀축의 헤어디자이너들과 함께.
나는 지저분한 머리상태를 싫어한다. 그래서 13개월간의 여행기간동안 터키, 이탈리아, 멕시코, 과테말라 등 낯선 나라, 낯선 이에게도 내 머리손질을 맡겨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쉽고 편리하게 미용실을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터키 셀축, 멕시코 메리다에서는 이발소는 여기저기 쉽게 볼 수 있었지만 미용실은 물어물어 찾아가도 2시간에서 4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드물었다.

설상가상 그나마 겨우겨우 찾은 미용실은 간판도 없이 허름한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미용도구조차 변변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준 곳은 셀축이다.

▲ 터키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차이(Cay)'. 그래서인지 미용실을 찾기 위해 셀축 시내를 돌아다니면서도 저 '차이'를 배달하는 아저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이'를 배달하는 분들은 다 아저씨였다. 나만 '차이' 나르는 여인을 보지 못한 것일까?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현지인들에게 아무리 바디랭귀지로 설명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어 갑갑해 하며 거리를 헤매던 중, 우아한 헤어스타일의 예쁜 터키 여인네를 발견하고 무작정 그녀가 들어가는 가게로 들어갔다.

분위기상 그녀의 가게인 듯 했고, 남편인 듯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손님이 온 줄 알고 쳐다보는 그들에게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You are so beautiful~!" 이라며 감탄사를 날린 후, 특히 당신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든다며 어디를 가면 당신 같은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영어와 필사적인 바디랭귀지를 섞어서.

세계를 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예쁘다는 말은 다들 어찌 그리 잘 알아듣는지 신기하다.

이번에도 예쁘다는 나의 말을 직감적으로 알아들은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자세히 길을 설명해 주다가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깐 남편을 시켜 우리를 직접 미용실로 안내해 주었다.

근데 불빛조차 없는 어두컴컴하고 허술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마음이 영 불안했다.  왠지 이상한 곳으로 잘못 온 느낌이랄까.

▲ * 좌측 : 셀축에서 내 지저분한 머리를 손질해 주었던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터키 아가씨.* 우측 : 메리다에서 쉽게 볼 있는 특상품 모자
근데 문을 여니 낡고 허접한 미용 도구와 불량 고삐리처럼 보이는 아가씨 셋이 있었다. 순간 제대로 온 것 같아 안도의 웃음이 나온다.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아가씨에게 바디랭귀지로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설명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세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완전 신나서 떠드는 것이 아무래도 외국인 손님은 처음인 듯 했다.

아무리 스타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쿨한 ‘나’지만 미용사 자격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려보이는 초보자 아가씨가 물 칠한 머리카락을 빗은 다음 그대로 빗을 대고 종이 자르듯 자르니 슬슬 불안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이왕 벌어진 일 중지시킬 순 없기에 ‘뭐 안 되면 모자 쓰고 다니면 되지’라며, 이것도 즐거운 경험으로 생각하자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나중에 보니 머리카락 길이가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드라이 후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워 불안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날리며 함박웃음으로 같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하지만 항상 나의 이런 위험스런(?) 선택이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 4시간 넘게 미용실을 찾아 헤메게 만들었던 메리다의 시내에 있는 대성당.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밤/낮으로 다양한 무료 공연들을 쉽게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멕시코 메리다에서 또다시 지저분한 내 헤어스타일이 싫어 장장 4시간을 헤맨 끝에 미용실을 찾았다.
그런데 도로변에 접한 이 미용실은 문도 없고, 우리네 옛 시절처럼 사람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감고 돌아다닌다.

가만히 살펴보니 대부분 염색이나 기장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원했던 것은 별다른 손질이 필요없는 파머스타일이었기에 손가락으로 머리모양을 구불하게 만들며 가능하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촌스럽지만 여러 헤어스타일이 있는 책자하나를 건네주었다.
사진에서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선택하고, 바디랭귀지로 나름 최선을 다해 설명한 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파머하는 이가 없는 것에 불안해하며 기구를 보여 달라고 하니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는 긴 막대기로 된 파머기구 하나만 보여준다. 헐~! 다른 건 없냐고 하니 없단다.
하지만 이걸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자신 있는 표정을 보인다.

▲ 한 종류 밖에 없는 도구로 연출된 메리다 스타일(?)의 파머를 한 나의 모습. 지극히 현지인답게 보인다.ㅋㅋ
터키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말정말 불길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 돈 만3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혹하고, 지저분한 내 헤어스타일이 싫었기에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곧 이런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우리네 서비스 수준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파머약이 온 얼굴과 몸에 흘러내리게 약을 뿌릴 뿐 아니라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아 2시간 내내 흘러내리는 파머 약을 닦아야 했고, 설상가상 길거리 쪽에 나를 앉혀 두고 2차 조치를 해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에게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순간 화가 났지만 그들도 신기해서 보는 것이라 생각을 바꾸니 이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긍정적으로 변화된 나의 마음에 반응이라도 하듯 어떤 이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긍정성도 완성된 헤어스타일을 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선택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소위 아주머니들이 하는 꼬불꼬불한 파머머리 스타일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써 울고픈 맘을 추스르고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오니 같은 방에서 같이 묵는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묻는다.

“너 그 스타일 좋아서 한 거야?”

너 같으면 좋겠냐고 되묻고 싶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웃으며 자위했다.

' 그래! 모든 선택이 다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실패한 선택을 통해 얻는 것도 있고.'

그래서 뭘 얻었냐고?

'우리나라 헤어디자이너들의 실력과 서비스 정신이면 세계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겠구나' 라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감사함과 우리나라 헤어디자이너들의 실력에 대한 자랑스러움?

▲ * 좌측 : 메리다 근교 '쿠사마(Cuzama)'에서 세노떼(동굴) 투어 가는 길에 이용한 독특한 오토바이* 우측 : 옛 기차길 위를 달리는 마차. '쿠사마'에는 200여개가 넘는 세노떼가 있는데, 저 마차를 빌리면 그 중 3곳을 데리다 주고, 손님들이 동굴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 준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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