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대로 세계일주>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은 안타깝다!

이 글은 김윤경 시민기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7월까지 13개월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녀는 1997년 해군장교로 임관해 근무하다 2010년 11월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지금은 보건교사로 일한다. 고향은 경남 진주다. -편집자-

프롤로그 : '내 맘 대로 세계일주' 연재에 들어가며

세계일주를 계획하거나 다녀온 여행자 대부분이 듣는 이야기가 “같다 오면 책 쓸거니?”라는 질문과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책 한권 내라”라는 조언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만큼 여행 관련 책이 우리에게 친숙하다는 의미겠다.

그것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싫다”였다. 당시 내가 가고 있던 길이 싫어서가 아니라 새로이 생긴 제2의 꿈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해,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길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며 결정한 여행이니 만큼 여행 그 자체 이외에 다른 목적을 더하기가 싫어서였다. 여행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는 순간 내 꿈이 훼손당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 '제2의 꿈, 세계일주'를 떠남에 있어 '여행을 통한 행복' 그것 말고는 생각하기 싫었다. 사진은 온두라스의 작은 섬 케이 아일랜드.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 내가 지금 왜 여행기를 쓰고 있을까? 여행 중 만난 이 대부분이 스스로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하는 걸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다. 또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계일주, 혹은 길고 짧은 여행을 다니는 이들은 왜 여행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이는 방학을 이용해, 어떤 이는 그냥 여행이 좋아서,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시작에 앞서 에너지 충전을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결정하지만, 그 내면에 깔린 진짜 이유는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결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10여 년 전 신혼여행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한 후 새로이 생긴 꿈이 ‘세계일주’였다. 당시 여행길에서 “10년 후 반드시 세계일주를 할 거야”라고 남편과 나 자신에게 수없이 말했는데, 막상 10년이 지났을 즈음, 가던 길을 멈춘 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3년을 더 근무했다.

하지만 어릴 적 꿈이었던 그 길에서 점점 가슴 뛰지도, 행복해 하지도 않는 나를 보면서 새로이 생긴 꿈에 대한 열정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놓았다. 여행을 이유로 1년 이상의 휴직을 낼 수 없는 직업이기에...

▲ 내게 세계일주의 꿈을 키워 준 것은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유럽배낭여행이었다. 동서양을 잇는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 다리 전경(왼쪽 위), 터키 이스탄불 신시가지 풍경(왼쪽 아래), 페루 리마의 한 성당 앞에서 멋진 춤을 보여주었던 꼬마 신사와 숙녀(오른쪽).
그랬다. 난 내가 행복하기 위해 그 길을 택했다. 아마 길 위에서 만났던 다른 여행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가끔 이 기본적인 생각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아직은 비장한 각오로 본인들이 누리던 것을 내려놓고 선택해야 하는 길이고, 이를 잘 아는 주변인들의 조언과 꿈의 무게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난 말한다. 여행 중 가장 어려웠던 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행복한 여행을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우선 여행지 결정부터 그렇다.

난 유럽이 좋다. 하지만 주변에 많은 이들이 그랬다. 유럽은 가기도 쉽고,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으니 아프리카, 남미 등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고,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곳 위주로 여행지를 정하라고.

하지만 동물을 무서워하고, 정글 등에는 별 관심 없어 하는 나를 잘 알고 있기에, 아프리카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막상 말 하려니, 왠지 남들에게 내가 나약한 존재로 보이는 것 같아 힘들었다.

▲ 지난 여행에서 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여행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온두라스 코판에서 나의 갈증을 해결해 주었던 코코넛 파는 아저씨와 페루 꾸스코 시내. 그리고 캐나다 밴쿠버와 아르헨티나 푸에르또 이과수 폭포(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라에 있는 박물관이며 미술관 등이 필수코스이고, 그곳들을 보지 않으면 마치 농땡이 친 학생처럼 여기는 듯 한 눈길을 받을 때마다 혼자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난 지금 누구에게 여행 잘 한다고 평가받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 위해 여행하는 중이야'라고. '그래서 무엇을 하든 내 행복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 거야'라고.

이제 평생 주위의 평가와 눈높이에 맞춰 살아온 내가, 행복을 위해 발버둥 치며 길 위에서 보낸 13개월의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멋진 풍경 속에서, 가슴 시리도록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비록 남들이 '게으른 여행자'라 탓할지라도, "'여행자'로 불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했던 그 기억의 조각들을, 지금도 행복하기를 꿈꾸는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 지금도 행복하기를 꿈꾸는 또 다른 사람들과 내 기억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하늘 아래 첫번째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스위스 인터라켄의 피르스트(해발 2,168m)를 걷는 여행객들. 구름바다를 보며 걷는 바흐알프 호수까지의 왕복 트레킹 코스는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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