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16년 역사.. 겨울엔 제주 먹장어로 사시사철 제 맛 볼 수 있어

다소 철이 이르지만 이번엔 장어구이 집을 찾아 나섰다. 삼천포농협로터리 근처 한산한 뒤안길에 위치한 '대영장어' 식당에는 초저녁인데도 손님들이 제법 자리 잡고 있다.

식객들의 면면을 슬쩍 살펴보니 계모임 하러 온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 오붓하게 마주 앉은 중년부부, 할아버지가 제일 어른인 가족 모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20대 젊은 연인들, 식당 한 구석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술꾼들도 보인다. 다종다기한 사람들이 식당에 모여 있다. 장어구이는 모든 세대에 걸쳐 고루 사랑 받는 음식이 된 증거이다.

장어구이와 돌솥밥으로 유명한 대영장어.
불판 위에서 장어가 익고 있다.
장어구이 한 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방에 두 사람이 보인다. 홀에는 세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식당 규모에 비해 일꾼들이 많다. 일하는 사람이 충분하면 아무래도 손님 접대에 여유가 있다. 자고로 식당이 잘 되려면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동시에 인건비에 인색해서도 안 된다. 사람을 쓰는데 인색하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 질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니까.

그런데 누가 주인일까? 다섯 명 중에 유일한 남성이며 부엌에서 장어를 다루고 종업원을 지휘하는 양반이 남자 주인일 것은 분명한데, 여 주인은 누구인가?

주방에서 찬모 역을 하고 있는 맵시 있게 머리 수건을 동여 맨 저 멋쟁이 중년 여인이 주인일까? 쾌활하게 홀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세 여인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주인일까? 자세히 살펴보니 홀과 카운터를 종횡무진 오가는 여인이 보인다. 원래 계산 하는 일은 주인 몫이다.

조광여(49세) 사장.
그녀가 조광여(49세) 사장이다. 입이 큼직하고 잘 웃고 유쾌한 느낌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좋은 인상이다. 이 동네 통장을 오랫동안 했단다. 통장 일을 잘 하는 사람치고 대인관계가 허술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삼천포에서 장어구이로는 꽤 오래된 집이라 들었습니다.”

“1996년 11월 15일에 이 자리에서 개업을 했으니까, 시간이 좀 흘렀죠.”

햇수로 따지면 16년이다. 개업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개업 첫날에 판 돌솥밥 그릇 수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장어구이와 돌솥밥이란 조합이 아무래도 엉뚱한데 왜 그렇게 되었어요?”

“요즈음도 그렇지만 장어는 아무래도 여름 음식이잖아요? 그런데 개업을 겨울을 앞두고 하게 되었으니 겨울에도 맞는 음식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돌솥밥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개업하는 날 열 한 그릇 팔리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참 참담했지요.”

그런데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돌솥밥을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옆 좌석의 손님들은 장어는 먹지 않고 돌솥밥만 먹고 나갔다. 돌솥밥도 의연히 메뉴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장어구이와 함께 돌솥밥을 찾는 손님이 많다.
평소에는 삼천포항에서 내린 장어나 통영에서 내오는 장어를 쓴다. 그런데 겨울에는 제주도 먹장어를 쓴단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겨울엔 장어를 안 먹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1월에서 2월까지 제주도에서 나오는 먹장어는 살이 통통하고 기름이 올라 정말 맛있어요.”

그러니까 사시사철 장어를 먹어도 된다는 말이 되겠다. 하긴 요즈음 철을 가리지 않고 먹는 음식이 되었긴 하다. 생 장어를 불판에 즉석에서 그대로 굽어 먹는 이런 식을 처음으로 시작했단다. 그러면 원조인 셈인가?

구운 장어를 방아 잎과 생강 등을 버무린 양념장에 찍어서 상추와 깻잎에 얹어 고추 마늘 등과 함께 싸서 먹으면 일품이다.
어쨌거나 이 집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장어구이를 반주의 안주삼아 먹고 돌솥밥을 뒤에 시켜 먹는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장어구이와 돌솥밥이 이 집에서는 잘 배합이 된 것이다.

구운 장어를 방아 잎과 생강 등을 버무린 양념장에 찍어서 상추와 깻잎에 얹어 고추 마늘 등과 함께 싸서 먹는다. 팁을 하나 준다면 여기에 밥을 반 숟갈 정도 함께 해서 먹으면 한 맛이 더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렇다. 이러면 장어의 단백질과 밥의 탄수화물이 배합되어 감칠맛이 더 있다. 고기와 빵을 따로 먹는 것은 서양식이다. 이렇게 먹으면 아무래도 고기를 많이 먹게 된다.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 소비량이 격감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 때문이다. 나는 고기와 밥을 함께 먹는 것이 우리 식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에도 맛에도 좋다고 고집한다.

음식 만들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조 사장은 요즈음도 모든 찬을 직접 만들고 간을 맞춘다.
음식 만들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조 사장은 요즈음도 모든 찬을 직접 만들고 간을 맞춘다. 그래서인지 모든 찬들이 한 가지 한 가지가 맛깔이 난다. 이 업소에서는 대부분의 장어구이 집에서 나오는 장어 국을 내지 않는다. 대신 담백한 된장찌개를 끓여낸다. 장어구이에 또 장어국은 너무 무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된장 국물이 뒷맛을 깔끔하게 해 준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밤하늘에 벚꽃이 눈처럼 내리고 차창을 통해 본 와룡산 산기슭의 짙은 산 그림자가 아늑하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산이 외로워 산 그림자를 짓고 밤이 되면 마을로 스며들어온다’고.

삼천포농협로터리 근처 '대영장어' 식당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