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줘도 안 받아, 반대토론 역사에 기록”.. 행동은 거꾸로

4.11총선이 막판으로 흐르는 가운데 여상규 후보가 남해하동선거구 통폐합 결정 직전에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공천)줘도 더러워서 안 받고 싶습니다. 공천이 됐다 하더라도 반납하고 (정계를)떠날 것입니다. 국회본회의장에서 5분 풀로 채워서 끝까지 반대토론 할 것입니다. 반대토론이 의회 역사에 남아 남해하동선거구를 되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발언은 제19대 국회의원선거 사천남해하동선거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여상규 후보가 남해하동선거구의 통폐합이 결정되던 지난 2월 27일 국회 앞에서 상경투쟁에 참여한 남해하동군민들 앞에서 한 것이다.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30분 전이었다.

하지만 여 후보는 이날 이 발언을 지키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해 선거구획정 내용을 담고 있는 공직선거법개정안에 반대토론도 하지 않았고, 새누리당 공천을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던 약속도 ‘없던 일’로 넘기며 현재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에 임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선거운동이 본격화 할수록 이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지난 3월 28일 뉴스사천과 서경방송 등이 공동 개최한 1차 토론회에 이어, MBC경남과 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4월 2일과 3일 연달아 열린 2차, 3차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강기갑, 이방호 후보는 토론회 때마다 여상규 후보의 '말 바꾸기'를 질타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무소속 이방호 후보는 매번 여 후보를 향해 “선거구 획정이 결정될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고 어디서 뭘 했나” “반드시 하겠다던 반대토론은 왜 하지 않았나”라는 따가운 질문을 던졌다. 나아가 “혹시 새누리당으로부터 이미 공천을 약속 받고 꼬리를 내린 것은 아니었나”라는 의혹제기까지 했다.

이들이 토론회 때마다 똑 같은 질문을 던져야 했던 것은 그 만큼 여상규 후보의 방어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선거구 획정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어서 반대토론을 해도 뒤집어지지 않을 상황이었다”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때로는 상대후보들을 향해 “그러는 당신들은 뭘 했나”라며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사천이 3일 입수한 동영상 자료를 보면 여상규 후보의 그 당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2월 27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국회 앞에서 촬영된 이 동영상에는 남해하동군민들을 향해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는 여상규 의원(후보)의 모습이 담겼다.

여 의원은 이날 남해하동군민들을 향해 “공천여부는 전혀 관심없습니다. 심사한다고 나오라 하면 안 나갈 겁니다. (생략)줘도 더러워서 안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남해하동군민의 의견을 물어서 단 한 명이라도 제가 ‘정계를 떠나는 것이 옳겠다’라는 의견을 주시면 저는 미련 없이 떠날 것이고, 공천이 됐다 하더라도 공천을 반납하고 떠날 것입니다”라고 말해, 사실상 이번 4.11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반대토론을 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제가 5분 풀로 채워서 반대토론 할 것입니다. 왜냐, 우리 남해하동선거구가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는지 그거를 기록으로 남겨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농어촌선거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대 토론을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 남해하동선거구가 조금이나마 빨리 환원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반대토론을 할 것이고, 제 반대토론이 우리 의회 역사에 그대로 남아서 다음 국회 때, 또 다음 국회 때 우리 남해하동선거구를 되살리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할 것입니다.”

비장함이 묻어나는 여 의원의 이런 발언은 유명 연설로 남을 뻔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발언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대 후보들은 이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셈이다.

이와 관련해 여상규 후보는 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방송토론회에서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 답변을 못했다”며 해명에 나섰다.

“당시 반대토론 할 거냐고 원내대표 쪽에서 물어 왔다. 나는 당연히 할 거라고 했고, 이에 ‘모두가 여 의원을 주시하고 있다’며 ‘반대토론에 나서면 당론으로 결정해 처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 상황에서 친한 몇몇 의원들이 ‘몸싸움 과정에서 아픈 곳도 있으니까, 그냥 병원에 가서 드러누워 버려라’고 했고, 나는 그게 낫겠다고 판단해 국회를 빠져나왔다.”

결국 남해하동선거구의 통폐합이 결정될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없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여 후보는 당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여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여상규 후보의 말 바꾸기가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당시 (공직선거법개정안에) 의원들 표결 결과 47%가 반대 또는 기권에 표를 던졌는데, 나는 그것이 내가 반대토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반대토론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찬성표가 나왔을 것이다.”

여 후보는 국회 본회의장 불출석을 두고 적극 해명한 데 비해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것에는 말끝을 흐렸다. 다만 공식 불출마선언이나 정계은퇴선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조유행 하동군수가 ‘군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진다’며 말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 후보의 이 같은 해명에는 억울한 심경이 짙게 깔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출직 공무원에게 ‘뱉은 말에 책임지는 자세’를 강하게 요구하는 유권자들임을 볼 때, 얼마나 공감을 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번 선거가 정책적 차별성보다 후보 자질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여상규 동영상’이 남은 선거운동기간 미칠 영향이 더욱 클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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