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센 불꽃으로 휘감는 게 특징.. 갈치머리 육수는 시원한 맛 비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6일 초저녁에 갈치찌개 집을 찾아 나섰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꽃샘추위가 몰아 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지금 내리는 비는 봄을 재촉하는 봄비라기보다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를 몰고 오는 비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모두다 옷깃을 잔뜩 올려 비도 피하고 찬바람도 피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생선 비린내가 더 심하기 때문에 생선 반찬을 피하는 법이다. 갈치는 비린내가 심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생선이다. 그런데 하필 우리는 비 오는 날 일부러 갈치 집을 찾아 나선 셈이다. 지난주 맛집 방문을 마치면서 이번 주 맛집은 삼천포항에 있는 '갈치집'을 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사를 계획대로 하는 것이 좋고, 오히려 오늘 같은 날은 식당이 한가할 것이기에 취재하기에는 더 좋을 지도 모를 일이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6일 저녁 삼천포에서 맛있는 갈치찌개집으로 이름난 동동 '어머니의 갈치찌개'를 찾았다.
삼천포에 입하되는 해산물 중에 갈치는 빼 놓을 수 없는 생선이다. 갈치는 연중 잡히고 먹는 생선이지만 특히 2월에서 9월까지 많이 잡히고 살이 오른다.

흔히 갈치하면 제주에서 올라오는 은갈치를 말하곤 하지만 삼천포에서는 은갈치는 싱겁다하면서 먹갈치를 더 높이 쳐 준다. 과거에는 저녁에 전마선을 노 저어 잠시 마을 앞바다에 나가 낚시를 드리우면 하루거리 반찬 될 만큼의 갈치는 예사로 잡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주를 넘어 한바다로 나가야 갈치를 잡는다. 그래서 갈치 배는 일단 출항하면 달포를 바다에서 지내기가 예사가 되었다. 식당에서 먹는 갈치는 먼 바다에서 잡아 온 것이라 보면 된다. 그런데도 싱싱한 맛이 나는 것은 배에서 갈치를 잡는 즉시 급랭하여 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찾아 온 집은 동동 복개천에 자리 잡은 '어머니의 갈치찌개' 집이다. 손님들이 빈틈없이 채워도 40명이 겨우 앉을 만한 자그마한 가게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진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식당 안에는 우리 시식 단을 빼고는 한 테이블 밖에 손님이 없다. 부부 동반으로 친구 간에 식사를 하러 온 듯 한 모습인데, 이미 식사를 마친 후인데도 한가하게 다리를 펴고 쉬고 있다. 식당 안에 다른 손님들도 없으니 바쁘게 일어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약한 불 위에 얹혀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에는 갈치가 가득하다.
약한 불 위에 얹혀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에는 갈치가 가득하다. 갈치찌개를 본 첫 인상은 다소 의외였다. 왜냐면 ‘무겁다!’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바닷가 식탁에 오르는 갈치는 애호박을 썸벅썸벅 썰어 넣고 헐렁하게 끊인 ‘갈치국’이거나 찌개라도 국물이 많은 시원한 찌개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찌개는 그야말로 찐득한 찌개이다. 마치 고기전골이나 오리전골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의외로 국물은 시원하고 단맛이 살짝 있는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찌개를 찐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토란대를 가득히 냄비 바닥에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갈치의 맛이 배여 있는 토란대 맛이 깊다.

조성근 씨.
조성근(50세) 사장은 실용음악 학원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홀에서 심부름을 주로 맡는 모양이다. 부엌에서 조리를 책임지는 안주인 황정선(54세)씨는 고향이 수원이다. 남해 바다의 대표적인 생선인 갈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수원 출생이라니? 전라도에서 오랫동안 식당일을 해 왔고, 여기 삼천포에 자리 잡은 지도 10년이 되었단다. 그러니 이해가 된다.

실용한복으로 차려입은 조 사장은 음악을 하는 사람답게 조용하게 말을 하며 음전한데 반하여 부인 황 씨는 칼칼한 목소리로 거침없다.

"우리 가게에 전에도 기자라고 와서 맛집 선정해 주는데 200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것은 절대로 사양해요."

황정선 씨.
취재 요청 하러간 우리 시식단의 막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안주인의 칼칼한 큰 소리만 온 식당에 울려 퍼진다. 여기에도 사이비 기자가 다녀갔던가. 몇 차례나 겪는 일이지만 매번 사이비 기자로 오해 받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우리는 일체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

다만 외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에게 괜찮은 집을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관광에 있어 ‘맛집 탐방’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니까. 영리한 관광객들은 그 고장을 대표하는 신문을 검색해 맛집을 찾는다. 우리 신문이 ‘맛집’ 기획취재를 하는 것은 그런 스마트한 관광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맛집 발굴’ 프로그램이다. 기업형 식당들의 취재를 서둘지 않는 것도 그런 식당들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여 굳이 급하게 취재하여 홍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날이 이렇게 궂으니 아무래도 한산하죠?"

"우리 집 갈치에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요. 오늘도 비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외지사람들 사이에는 소문이 많이 나서 진주 사람들도 많이 와요."

토란대에 갈치를 싸서 먹으면 일품이다.
국물은 시원하고 단맛이 살짝 있는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집에서는 주방에서 초벌로 갈치찌개를 끓일 때 뚜껑을 열어 놓고 큰 불을 밑에서 피워 올린다. 그러면 불꽃이 찌개를 휘감고 넘나들며 비린내를 지워준다. 양념의 감칠맛은 물엿에 고추장, 간장으로 간을 보아 보름동안 숙성시켜서 낸다.

“육수는 어떻게 만드나요?”

“우리 집에는 갈치 머리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 머리를 잔뜩 넣고 푹 고와서 육수로 사용하면 갈치찌개에 제일 좋지요.”

하긴 과거부터 어두육미라고 했다. 어떤 생선도 머리에서 고소한 맛이 제일 많이 난다. 안주인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우리 집 갈치 자세히 보세요. 갈치 장만할 때 뱃살에 붙어 있는 검은 속을 깨끗이 해요. 그렇지 않으면 쓰기도 하거니와 보기가 흉하잖아요?”

어머니의 갈치찌개는 삼천포수산시장 옆 동동 복개천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사천 사람들은 뱃살에 붙은 검은 속을 굳이 힘들어 벗겨 내지 않는다. 그 맛도 있는 것이다. 이 집의 맛은 사천 본토박이들에게는 오히려 이색적인 맛이 되겠고 외지인이나 관광객에게는 부담 없고 익숙한 맛일 것 같았다.

음식의 맛도 추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냄새로 강하게 기억된다. 식당 문을 열고나서니 보슬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는데 따뜻한 갈치찌개와 반주로 한 잔한 소주 덕분에 추위는 가셔있다. 뺨을 간질이는 빗방울은 영락없는 봄비이다.

문득 비릿한 갈치 토막을 숯불 위에서 구울 때 나는 연기 속에 배여 나오는 짙은 비린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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