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통합으로 표심은 '지역주의'..사천 패권 놓고 강-이 격돌

경남 사천시, 남해군, 하동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는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함께 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느 때의 3월이라면, 봄기운을 타고 도다리 잡이와 쑥 캐기에 여념이 없을 평화로운 곳이지만 4.11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금은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지난달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사천선거구와 남해하동선거구가 하나로 묶인 데다, 영남이 지지기반인 새누리당이 3월 7일 공천을 확정함으로써 기쁨과 분노, 희망과 좌절이 뒤섞였다.

반면 새누리당 후보가 확정되면서, 서울 면적의 2배가 넘는 ‘사천남해하동선거구’의 선거 윤곽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참고로 사천남해하동선거구 면적은 대략 1430㎢이고 서울시 면적은 605㎢정도다. 그런데 이번 제19대총선에서 지역구 몫의 의석이 ‘1석 대 48석’이니, 면적만 놓고 보면 엄청난 불균형이다.

▲ 4.11총선의 사천남해하동선거구는 강기갑-여상규 두 현역의원에 이방호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가세해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된다.
어쨌거나 ‘새누리당 후보 확정’으로 총선 본선진출자가 또렷해지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여상규 현역의원(남해하동)과, 역시 현역인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사천), 그리고 이날 공천에서 탈락한 뒤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방호 전 의원이 그들이다.

물론 강기갑 의원의 경우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 단일화 과정을 남겨 놓고 있지만 이변이 없는 한 본선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여상규-강기갑 두 현역의원과, 여 의원에겐 공천에서 밀리고 강 의원에겐 178표 차이로 땅을 쳐야 했던 이방호 전 의원 사이에 불꽃 튀는 경쟁이 예상된다.

여상규 느긋, 강기갑-이방호 '사천' 안방 놓고 격전 예고

이들 중 8일 현재 가장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쪽은 여상규 의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사천남해하동을 비롯한 영남권이 새누리당의 전통적 텃밭인 데다, 올해 초부터 ‘농어촌선거구 지키기 운동’을 펼치면서 지역민들과 밀착해 호흡했다는 게 느긋한 표정의 배경이다. 또 경쟁자인 강기갑 의원과 이방호 전 의원이 둘 다 사천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이런 심리를 보여주듯 여 의원의 목소리에도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7일, 새누리당의 3차 공천명단 발표 뒤 가진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그 동안 선거구 지키기에 올인 해왔는데, 이렇게 공천을 받음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절반이라도 보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또 사천시민들을 향해서는 “사천 출신 국회의원이 중앙정치는 잘 했는지 몰라도 지역 기여는 미흡했다. 이제는 사천시민도 (지역을 위해)일하는 의원을 뽑아야 할 때”라고 말해, 강 의원을 은근히 압박했다.

여 의원은 8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남해와 사천 등을 방문하며 본격적인 총선 행보를 해나갈 예정이다.

▲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비교적 느긋한 입장인 여상규 의원. 사진출처 : 여상규 의원 홈페이지.
새누리당의 여 의원 공천을 두고 강기갑 의원은 어느 정도 예측했다는 반응이다. 나아가 여 의원의 느긋한 표정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즉 “남해하동선거구가 통폐합 대상으로 전락한 것에서 새누리당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여 의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특히 선거구 통합이 확정되던 지난 2월27일, 선거구 획정 등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여 의원이 본회의장 참석조차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짜인 각본이 아니었을까”라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당시 본회의 재석 의원은 174명. 이 가운데 92명이 개정선거법에 찬성한 반면 반대가 39표, 기권이 43표였다. 의안 가결이 재석 의원의 절반이 넘는 찬성으로 이뤄지는 점에 비춰 보면 최소 88명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선거법개정안은 가까스로 통과한 셈이다. 강 의원은 이 점을 추궁하고 있는 것이다.

강 의원은 7일 남해와 하동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는 등 총선 행보를 이 지역으로 넓히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한 이방호 의원은 같은 날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동시에 선언했다. 그가 밝힌 탈당과 무소속 출마 이유는, “선거구 통폐합의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 의원을 공천한 것은 사천남해하동 유권자들을 무시한 결정”이란 것이다.

이날 경남도의회 박동식 의원과 사천시의회 최동식, 최갑현, 박종권, 김국연, 강태석 의원 등이 뜻을 같이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해 이 전 의원에게 힘을 실었다.

▲ 이방호 의원 역시 사천의 민심을 얼마나 독차지 할 수 있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이처럼 이 전 의원의 발 빠른 탈당 선언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내던 그는 이른 바 ‘친박 공천 학살’의 책임자로 찍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여기에 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가동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총선에서 공천 배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다.

하지만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치는 동안 사천시당원협의회장을 맡으며 오랜 맹주로 군림한 만큼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독한 '지역주의 투표' 예상.. 지역별 투표율에 울고 웃을 듯

그렇다면 이들 3인방이 펼치는 사천남해하동선거구의 총선 관전 포인트는 어떻게 될까?

일단 후보들의 공통된 생각은 선거구가 처음 통합된 만큼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무척 심할 것’이란 예상이다. 자연스럽게 정책이나 공약을 부각시키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따라서 후보 저마다 출신지역에서 몰표를 받으면서 상대 진영에서는 선전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여상규 의원이 조금은 더 유리해 보인다. 그는 하동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사천과 남해에서도 고른 득표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강기갑, 이방호 측은 사천을 대표하는 지역후보 이미지를 꿰차기 위해 먼저 경쟁해야 한다. 만약 두 후보가 사천에서 팽팽하게 접전을 펼치면 이는 곧 둘 다에게 ‘낙선’을 뜻함이다.

▲ 남해와 하동에서도 고른 지지가 예상되는 강기갑 의원은 안방인 사천의 민심을 얼마나 사로잡느냐가 관건이다.
사천에서 둘 중 누군가에게 힘이 쏠리면 그 다음은 남해지역이 당락을 결정짓는 최종 격전지다. 남해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같은 선거구로서 하동과 경쟁해 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선거구통폐합 저지 운동을 거치며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러나 남해는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는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고향이고, 역시 민주통합당 소속인 정현태 남해군수가 버티고 있어서 새누리당의 일방적 승리가 쉽지 않으리란 예측도 있다.

여기에 오랫동안 수산업 분야에 종사한 이방호 전 의원 역시 남해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어, 이곳 민심이 어떻게 흐를지는 미지수다.

표심이 ‘지역주의 성향’을 띨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투표율이 더욱 중요하게 떠오른다. 특히 사천, 남해, 하동 세 지역의 투표율이 어떤지에 따라 후보들은 울고 웃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대 총선 자료를 분석해 보면, 선거구가 통합되긴 했으나 남해하동지역이 사천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투표 참여자는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의 선거구 획정 기준이 되는 지난해 10월 말의 사천시, 남해군, 하동군의 각 유권자 수는 9만996명, 4만3114명, 4만6073명이다. 또 18대 총선 당시 각 투표율은 57.6%, 69.8%, 72%이다.

만약 19대 총선에서 지역별로 18대와 똑 같은 투표율을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실제 투표에 참여할 사천, 남해, 하동의 각 투표인구는 5만2413명, 3만93명, 3만3172명이다. 사천의 경우 전체 유권자는 남해하동보다 2000명 가까이 많지만 낮은 투표율 탓에 실제 투표인구는 남해하동에 비해 1만 명 넘게 적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사천시 투표율이 어느 정도 나오느냐에 따라 여상규 또는 강기갑, 이방호 측에 유불리로 작용할 수 있다.

공천에 탈락한 예비후보들, 단일후보 옹립 가능할까?

끝으로 여상규 의원은 남해하동선거구 통폐합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부담, 그리고 그 책임에서 새누리당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남은 기간 중요 과제다.

국가적 중요 정책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름을 올리는 강기갑 의원은 ‘중앙정치용이 아닌 지역 일꾼이 필요하다’는 다른 후보들의 공격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이다.

이방호 전 의원은 ‘공천에 불복해 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서명하고도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 부담이다. 특히 ‘당 사무총장까지 지냈으면서, 탈당했다’는 비판이 따갑다.

▲ 새누리당 공천이 여상규 의원으로 확정됨으로써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을 끄는 사천지역 새누리당 예비후보들. 왼쪽부터 유홍재, 이종찬, 강대형, 이상의, 송영곤, 정승재.
한편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던 나머지 7명의 발걸음에도 눈길이 간다. 사천지역 공천신청자 강대형, 송영곤, 유홍재, 이상의, 이종찬, 정승재 예비후보는 7일 성명을 통해 “사천시민의 의사를 결집시켜 단일후보를 옹립하는 방안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여 공동대처 한다”고 밝혔다. 또 당에 공천 재심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단일 후보를 내세우는 일이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도 후보단일화 방식을 두고 의견을 나눴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또 단일 후보를 낼 경우 나머지는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했으나, 이럴 경우 이후의 새누리당 공천은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선택이 쉽지 않다.

남해가 지지기반인 하영제 예비후보 역시 당에 재심을 요청하겠다는 뜻은 밝혔지만 크게 반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만약 이들 공천탈락자들이 후보를 단일화 해 무소속 출마에 나선다면 사천지역 표심은 세 갈래로 나뉘게 돼 18대 국회 남해하동선거구 현역의원이자 새누리당 공천까지 받은 여상규 의원에게는 더욱 호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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