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맛집기행>'돼지고기와 김치찌개'.. 사천의 대표음식으로 자리잡기까지

사천맛집기행, 이번에는 '김치찌개 할배'를 찾아 나섰다.

김치찌개란 시큼해진 김치에다 비계가 붙어 있는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다가 대파나 숭숭 썰어 얹어 나오면 되는 음식이다. 가정에 따라 돼지고기를 먼저 참기름에 볶은 다음에 육수와 김치를 넣기도 하지만 조리 방식은 대동소이하고 맛도 비슷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천을 대표하는 대중음식 중의 하나로 ‘김치찌개’가 자리 잡았단다.
아무튼 이렇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음식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원조’이다.

그래서 ‘원조 할배’가 운영한다는 식당으로 찾아 간 것이다. 고즈늑한 어촌이기만 했던 초전 방지 마을 근처는 온통 조선소와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 공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공단 노동자들을 겨냥하여 큼직한 식당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원조 할배가 운영한다는 ‘김치찌개’식당이다. 식당 이름은 ‘고쌈식당’. 원래 한일식당으로 시작하였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이번에 상호 등록을 하면서 ‘고기와 쌈’의 의미를 담아서 지었단다.

▲ '김치찌개 할배'의 고쌈식당 김치찌개가 먹음직스럽다.
이광복 사장(73세)은 연세에 비해 정정하다. 세월이 스치고 지나간 얼굴의 주름살은 지울 수는 없으나 자세나 말투는 과거 해병대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22살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10년간 복무하였는데, 신병 훈련소 소대장을 쭉 맡았다가 중사로 전역했다.

워낙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삼시세끼 돼지고기를 먹었단다. 그래서 전역한 후 진해에 식육식당을 차렸는데 "아마도 대한민국 식육식당의 효시"일 것이라고 했다. 돼지고기 1근에 2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얼핏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 돼지고기 삼겹살 200g에 7000원이라고 되어있다. 1근이 600g이니 지금 이 식당 시세로는 근당 2만1000원인 셈이다.

그래도 저렴한 편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 자본주의란 원래 인플레와는 불가분의 관계이긴 하나 요즈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재벌들의 곳간은 넘쳐흐른다는데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져 가기만하고 생활고만 높아진다.

▲ 김치찌개 한 상.
이 사장은 고향이 창원인데 굳이 사천에 자리 잡은 데에는 사연이 있는 듯하였다. 보기 싫은 것은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사고(?)를 많이 쳤단다. 그래서 식육식당 하면서 벌어 논 돈을 다 잃고 타지로 흘러 들어와 하기 쉬운 것이 식당이라 차린 것이 ‘김치찌개 식당, 한일 식당’이었는데 대박을 친 것이다.

장사가 잘 되니 하려는 사람이 나오고, 그러면 나름의 비법을 전수하고 다른 곳에 차리고 또 넘기고 하여, 사천읍에 두 군데, 삼천포에 두 군데를 넘겨주었단다. 이 식당들이 나름대로 다 성황중이다. 그리하여 ‘김치찌개’가 사천의 명물 음식이 된 것이다.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더니만 사천에서는 김치찌개가 명물 음식으로 등장했다.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돼지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을 생각을 어떻게 하셨나요?” 물으니, “원래 돼지고기를 상추에 싸 먹으면 들컨하니(달콤하니) 좋잖아요?” 하고 오히려 되묻는다.

하긴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상추에 싸 먹으니 찌개에 들어있는 고기를 상추에 얹어 먹는다고 별 이상할 일이 없겠다. 수 십 년 동안 돼지고기를 즐겨온 터이니 저절로 습득했으리라. 대부분의 식당들의 맛은 이렇게 경험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

▲ 사천식 김치찌개의 특징은 돼지고기를 쌈으로 먹는 것이다.
김치찌개의 모습은 별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김치가 들어있고 여기에 두부도 같이 끓여진다. 돼지고기는 생고기를 사용하는데 비계도 적당히 붙어있다. 돼지고기에는 적당한 지방이 있어야 참맛이 나온다. 찌개 안에 고기가 제법 많이 들어 있어서 건져내어 상추에 쌈 싸먹을 만 했다. 고기가 몇 점 없으면 싸고 자시고 할 것이 있겠는가? 이 정도이니까 ‘고기와 쌈’이 되긴 하겠다. 김치찌개에는 김치 못지않게 맛을 내는데 중요한 것이 돼지고기인데 ‘하동 솔잎 돼지고기’라고 했다.

공기에 밥이 담겨 나왔는데 꾹꾹 눌러 담은 것이 공기 밥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그야말로 사발이 스텐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곤 옛날 농사꾼들이 먹었던 사발 고봉밥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집의 후한 인심을 알만하다. 하긴 쇠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벽면서생과 같은 양을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 고쌈식당 주인인 이광복 씨가 자신의 인생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김치찌개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김치가 가장 으뜸 식재료이다. 매일매일 담고 1주일간 숙성시킨 후 사용한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김치 담그는 비법을 물어 보았다.

“난 몰라요. 우리 집에 할매가 김치를 담근다오. 식당에 일하는 이모들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모양이던데.”

“육수는 어떻게 만들어요? 그것도 비법이 있는가요?”

“글쎄, 원래 돼지고기에서 맛이 많이 나오잖아요? 김치하고 돼지고기가 같이 어울리면 그냥 맛이 우러나오지, 뭐 별 비법이 있겠어요?”

흔히 맛 집 프로그램에서 등장하여 비법을 숨기려는 시늉을 하는 맛 집 주인의 말투가 연상되어 짓궂은 질문을 해 본다.

“혹시 인공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시지는 않나요?”

그러자 즉각 돼지고기 예찬론자다운 답이 돌아 나왔다.

“돼지고기에서 맛이 그렇게 많이 우러나는데 무슨 조미료? 아무튼 난 몰라요.”

▲ 고쌈식당은 사천시 사남면 방지리, 사천일반산업단지 근처에 있다.
식당을 나서니 밤은 깊어지는데 주위의 몇 몇 공장에서는 불이 환히 밝혀있고 쇠 깎는 소리인지 다듬는 소리인지, ‘쿵 쿵’하는 굉음과 ‘쏴’하는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 공장들에는 잔업이나 철야를 하는 철의 노동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새들도 보금자리로 찾아 들었을 터인데 저들은 공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한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는 있는 것인가?

문득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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