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 출신... 서예협회 사천지부장 맡아

우천 강선규 선생
벼루에 먹을 갈고, 화선지와 그 아래 받침까지 단단히 준비한 다음에야 글을 쓰는 서예. 그 뒷정리는 또 얼마인가. 바지런하지 못한 나로서는 학창시절 이후 붓을 잡아보지 않았을 만큼 쉬이 흉내 내지 못한 일이다.

그런 탓에 사천지역 대표적 서예가 중 한 분인 우천(牛川) 강선규(47) 선생을 취재하러 가는 일이 마음에 여간 된 게 아니었다.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낮고 짧음이 단박에 드러날 것도 걱정이었다.

늦은 오후 조심스런 마음으로 우천서실을 찾았다. 우천서실은 사천성당에서 사천공설운동장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 옛 사천시청사 방향으로 꺾어지는 귀퉁이 건물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사천향교 소유로서 한학과 서예 보급에 힘쓰는 우천 선생에게 10년간 무상임대를 해줬다고 하니, 문화예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르겠다.

서실에 들어서자 묵향이 진동했다. 머리가 희끗한 두어 분과 주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단정한 자세로 붓을 잡고 있었다. 저만치서 글쓰기를 가르치던 우천 선생이 입구에서 머뭇거리던 나를 알아보고 반가이 맞았다.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 출신 초대작가 '우천(牛川)'

우천 선생은 우리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 출신의 초대작가이다. 지난해에는 대한서예대전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할 만큼 그 실력과 명성이 전국에 알려져 있다.

재미나게도 사남면 우천(牛川)마을에서 만들었다는 가시오가피 음료를 앞에 놓고 서실 안쪽 작은 방에서 우천 선생과 마주 앉았다. 선생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꾸밈과 덧붙임이 없는 그의 말, 어쩌면 ‘참 재미없는’ 말이었다.

2001년 새해를 맞아 우천 선생이 직접 지은 7언율시 가운데 일부분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워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머리 돌리니 강 기슭에는 새의 근심이 깊지만 발을 옮겨 하늘봉에 오르니 사람의 뜻 높더라"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곤혹스런 일이다. 허나 요지부동, 그의 말과 몸짓에 드러냄도 지나침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눌한 듯 하면서도 알맹이에 다가가는 그의 말,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의 말은 누구나 하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모습 그대로’만을 드러내는 일인 듯 했다.

우천 선생은 정동면 대곡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동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처음 붓을 잡았는데, 그때부터 계속 끌리더란다. 사천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진주의 경산(耕山) 김형한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인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경남자영고의 전신인 사천농업고교에 진학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학교에선 출석만 확인한 뒤 경산 선생을 찾아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한다.

고교 졸업 이후 한 때는 돌에 글을 새기는 전각에 빠져든다. 그래서 서울에서 서예평론가로 활동하던 농산(農山) 정충락 선생을 찾아가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복무 이후에는 사천에 내려와 글쓰기에 전념했다.

세상은 우천 선생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본 듯하다. 고3 시절에 경남서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도 꾸준히 입선(4회) 성적을 올렸다. 그러던 중 1994년엔 경남서예대전 대상을, 그리고 1996년엔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차지한다.

사실상 독학으로 이룬 필력에 전국적 명성

이 소식은 전국 서예가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전국을 놓고 보면 경남은 서예분야에 변방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우천의 스승인 경산 선생도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에 사실상 독학으로 공부한 거나 다름없는 게 우천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호들갑을 뒤로하고, 20대 중반부터 운영하던 서실을 우천 선생은 지금껏 이어오며 지역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소박한 생활인으로 자리 잡았다. 부인 방경옥(45)씨 사이에 딸 둘 아들 하나도 두었다.

그는 자신의 서실 외에 사천읍자치센터나 KAI의 서예동호회에 나가 시민들에게 서예의 참맛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그러다보니 올해는 한국서예협회 사천지부에서 지부장을 맡기기도 했다.

우천 선생은 서예의 참맛이 뭐냐는 물음에 “내적 심취 그리고 창작”이라고 짧게 답한다. 좀 거창한 설명을 기대했던 내 기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깨졌다. ‘역시 우천은 牛川이다.’

입춘 날 저녁에 갖는 '축 뜻풀이 행사' 

그런 우천 선생이 이야기를 끝낼 무렵에서야 한 가지 귀띔해준다. “오는 4일 입춘 날에 재밌는 걸 해볼까 하는데 놀러 오소!”

‘이렇게 반가울 수가!’

들어 보니 입춘 날 저녁, 지역 문화예술인 몇몇이 사천읍내 한 식당에 모여 ‘입춘맞이 축 뜻풀이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기축년을 맞아 새해 인사도 나누고 덕담도 주고받는 자리라는 것이다.

‘열 일 제쳐 놓고 가보리라, 막걸리값 챙겨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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