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8) 다시 꿈꾸는 올레길 여행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 해수욕장을 거닐었다. 아침 해가 바위 뒤로 솟아 오르고 있는게 보인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을 거닐고 있는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선물인 것만 같다.

▲ 도무지 해수욕장에서의 일출.

배낭을 챙겨 추자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를 사 먹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젊은 남자가 한 분이 나에게 온다.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라? 추자도에서 제주로 가는 배는 바로 이곳 신양항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멋모르고 추자항까지 갔다가, 배를 놓칠 뻔 했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별다른 준비 없이 길을 나서는 내 취향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오전 10시 30분 추자도 신양항에서 제주행 한일카훼리3호를 타고, 다시 제주항으로 향했다.

▲ 제주가는 배에서 바라다 본 추자도 바위섬. 추자도는 48개의 유·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인도 바위섬은 곳곳이 낚시 포인트라 '낚시천국'으로 불린다.
▲ 갑판에 나와 있는 필자 모습.

배안 3등석에는 에어콘이 있었지만 갑갑해서 갑판에 나와, 바다 경치를 즐겼다. 갑판에서 의자에 앉아 있다가, 힘들어 눕고 싶었다. 그런데 의자 때문에 영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벽에다 배낭을 눕히고 배낭에 누우면 될 것 같다. 누워보니 엄청 편안하다. 한참 그렇게 졸다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면, 이번 여행을 가장 잘 표현하는 모습일거라고.

그런데 주위를 둘러 보니 마땅히 사진을 부탁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망설이다 지나가는 사람 한 분에게 부탁 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신다. 처음에는 나를 중심으로 찍고 나서, 잠시 생각하더니 뒷배경으로 바다가 나오는 사진을 한 장 더 찍어 준다. 내 마음을 콕 집어 내어 주신 이름 모를 그 남자 분이 감사하다.

제주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내일 오후 5시 오렌지호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일단 출발지 성산포항으로 갈 생각이다. 제주도의 시외버스는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따라가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오후 2시쯤 성산포에 도착해서 먼저 오렌지호 터미널로 갔다. 내일 출발 예정이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오늘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집에 빨리 가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나도 많이 약해졌나 보다. 그런데 터미널에 알아보니 오늘 하루는 모두 예약이 돼, 표를 바꾸기 힘들거란다. 하는 수 없이 남는 시간에 바로 옆에 있는 우도행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은 1시간 동안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돌았다.

▲ 우도잠수함, 우도등대, 성산일출봉, 제주도 어선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다시 오렌지호 터미널로 돌아오니, 선착순 차량대기자와 직원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까 대기자 명단을 보니, 참고란에 바쁨이라고 쓴 분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나는 더 바쁨이라고 쓰여있었다. 혹시나 예약을 취소하면 선착순으로 대기자를 태워준다고 했는데, 정확히 순서가 지켜지지 않는가 보다.

직원에게 혹시 차량 외 사람은 빈 자리가 있는지 다시 물었다. 직원은 무조건 없단다. 이제 남은 일은 원래 계획 했던대로 작년 올레길 여행에서 봐두었던 성산일출봉 중턱의 전망대에서 야영을 하며, 내일 오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성산포 출발시간이 오후 5시라, 그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다.

오렌지호 출발 10분 전, 혹시나 해서 이번에는 매표 아가씨한테 문의했더니 개인은 자리가 남았단다. 그럼 내일 예약한 표와 바꾸어 처리해 달라고 하니, 금방 바꾸어 준다. 에고~ 다행이다. 오후 7시 해가 질 무렵 장흥항에 도착했다. 애마 갤로퍼를 보니 엄청 반갑다. 서둘러 출발해 밤 12시께 집에 도착했다. 이로 7박8일의 올레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올레길 고생을 낙으로 삼아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보니, 갑자기 웃음이 툭 튀어 나온다. 근원적이고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도대체 나는 왜 그 고생길을 나섰는지, 그 여행길에서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여행길의 화두, 다름이 아니라 바로 '캔맥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뙈약볕 아래 비지땀을 흘리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나는 것이 바로 시원한 '캔맥주' 였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7박 8일의 화두가 '캔맥주'라면 누구라도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눈과 마음에 담아 온 아름다운 제주도 경치. 또 우연히 만났다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각각의 길을 걸어갈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애틋하게 마음에 남는다.

비록 서로를 알기에는 터무니 없이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 여름 뙈약볕 아래 올레길에서 걸으면서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상대에 대한 상당한 신뢰와 서로에 대한 배려를 아낌 없이 내어 주었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 또한 나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길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게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일 떠날 것이다. 당장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고, 부르트는 발을 달래면서 내리쬐는 태양과 더위와 부딪친다 해도, 산길로 들길로 바닷길로 아름다운 경치와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러 주저 없이 올레길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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