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13) 3코스 '통오름과 바다목장'

<혼자 떠나는 제주 올레길>이 글은 '갯가' 시민기자님이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도보로 여행한 뒤 자신의 블로거에 올린 것으로, 이를 일부 고쳐 뉴스사천에 다시 올려주셨습니다. -편집자-

오전 6시께 잠을 깨니, 도대체 내가 어젯밤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나는 야영한 정자 옆 공중화장실에서 샤워를 한 다음 배낭을 꾸려 도선을 타고 성산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어젯밤 막걸리로 저녁을 때워 그런지 무척 배가 고파 온다. 이리저리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근처 해장국집에 들렀다. 뭘 주문할까 망설이는데 먼저 오신 분이 육개장을 권하신다. 육개장은 그런대로 남에게 권할 만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둘째 날 계획은 작년 올레길 여행에서 뛰어넘은 올레 3코스다. 버스타기도 어중간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아까 식당에서 식사하시던 분들이 개인택시 기사분이라 올레 3코스 출발점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를 타고 3코스의 출발지인 온평포구에 도착하니, 작년에 다녀왔던 곳이라 동네가 낯에 익어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작년 올레길 여행이 생각난다.

올레길을 따라 바닷가를 벗어나 내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어 좁은 농로를 따라 걷다보니 더운 날씨에 몸도 지치고 체력도 지쳐온다. 그리곤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쉬는 횟수는 자꾸만 늘어난다. 하지만 밭에 있는 농업용 수도꼭지를 틀어 머리위로 물을 흠뻑 뒤집어 쓰기도 하고, 딱딱해진 발바닥을 주무르기도 하면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후 농로길을 걷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옅은 비와 함께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헉헉거리며 통오름 정상에 올라서니, 굵어진 빗줄기가 얼굴을 때리고 온몸의 열을 식혀줘 기분이 짜릿하다.

▲ 저멀리 통오름이 보인다.
▲ 일찍 핀 코스모스

잠시 쉬면서 배낭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독자오름을 지나자 길이 바닷가쪽으로 바뀐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올레꾼들이 추천하는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가격만 비싸고, 아예 1인분은 팔지도 않는단다. 씁쓸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왔다. 이후 배고픔을 참고 길을 가다 바닷가 작은 마을의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통, 계란 세 개, 빵 등으로 배를 채웠다. 이 가게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인제 살만 합니까"라고 물으시길래, 나는 "예 겨우 살만합니다"라고 답했다.

▲ 바다목장
▲ 바다목장 길 해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길, 바닷가에 붙어 있는 목장 일명 '바다목장'에서 저 멀리서 느긋하게 풀을 뜯는 말과 소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애고 난 뭘 얻을 거라고 혼자서 무거운 짐지고 비까지 맞으면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이후 바다목장 근처 길을 지나자, 거친 비바람과 싸우면서 비옷을 입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낚시꾼들이 마치 '사람은 무조건 편안함만 쫓아가는 게 결코 좋은게 아냐'라며 행동으로 나를 격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 대물을 꿈에 안고 비바람과 거친 파도에 맞서는 낚시꾼들.

하긴 대물을 꿈에 안고 비바람과 거친 파도에 맞서는 낚시꾼들이 아니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나? 낚시꾼들 또한 나처럼 혼자서 무거운 배낭 메고 올레길을 헤메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표선 해수욕장 도착 전 잠시 만나 헤어졌던 올레꾼들.

이후 앞서가는 올레꾼 3명과 일행이 되었다.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길을 걷다, 표선 해수욕장 입구에서 헤어진 후 나는 해수욕장 야영장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친 뒤,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제 우도봉에 만났던 서울 젊은이가 성큼성큼 야영장으로 들어 선다. 서울 젊은이는 올레 10코스를 마친 후 야영하기 좋은 곳을 올레꾼들에게 물으니, 표선해수욕장 야영장을 추천해 버스로 다시 되돌아왔단다. 반가운 마음으로 해녀의집에서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함께 먹고,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 제주도에서의 둘째 날을 보냈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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