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아름다운 길>(3) 1000년의 역사 향기 묻어나는 길 곤양 흥사~곤명 신흥

 신선들이 글을 읽었던 곳이라는 선들재는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와 곤명면 신흥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선들다’는 불교 용어로 선방에 참선하러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선들재 주변에 꽤 많은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절은 문달사, 은적암 등이다.

▲ 사천매향비 부근의 논-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문달사는 사천매향비와 관련이 깊은 절인데 지금은 산기슭 대나무 밭 사이에 무너진 절터만 남아있다. 최근에 발행된 곤양 면지에는 ‘곤양읍지에 문달사는 제방산록에 있다고 하였으나, 건립 및 상존 년한과 규모는 나타나 있지 않다.’라고만 되어 있다.

▲ 문달사와 곽가등이 있는 곳- 왼편 골짜기에 문달사지, 오른쪽 산 등성이에 곽가등이 있다.

 이어 ‘문달사지(文達寺址)는 명당이라 전해지는 흥사리 최북단 곽가등 아래 제방에서 뻗어내려 온 산줄기에 흥사 도로에서 실개천을 따라 1km정도 떨어진 대밭 속에 주춧돌로 추측되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기왓장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주변은 완전 대숲으로 덮여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사천매향비 가는 길

 문달사가 주축이 돼서 4,100여명과 함께 향계를 모아 매향비를 세웠는데 매향비는 갯벌 속의 향나무가 미륵불이 되어서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해 줄 것이란 염원을 담고 있다.

 선들재 넘는 길은 역사를 돌이켜 보는 길이다.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일제 강점기 때 구강언을 막기 전 까지는 회관이 있는 앞들까지 배들이 들어와서 염전용 화목과 기타 화물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바다였던 곳에 지금은 고속도로도 생기고, 골프장도 들어서고, 산업단지도 조성되고 있다.

▲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선들재 가는 길가 갑사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수령 200년 정도 된 큰 팽나무(포구나무)가 서있다. 이 나무는 범우골 산에 선영을 모신 김씨 문중이 비보 풍수 차원에서 심은 나무로 나무가 점점 커지면서부터는 아래에서 반상회도 하고 마을 모임도 하던 마을 집회소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나무 옆에는 주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흥사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 흥사일반산업단지 조성지- 범이 자주 나나탔다는 범우골이다.
▲ 선들재 입구-개별 공장이 조성되고 있다.

 선들재는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이다. 낙남정맥은 남해와 내륙을 구획하는 산줄기로 동쪽에는 낙동강, 서쪽에는 섬진강, 남쪽으로는 남해, 북쪽으로는 남강이 흐른다. 

▲ 선들재 정상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빗방울의 운명이 엇갈린다. 북쪽으로 떨어진 물은 남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을 지나 부산 앞바다로 향하고, 남쪽으로 떨어진 물은 곧바로 남해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물론 사천만쪽으로 나 있는 남강댐 방류구가 없었을 때의 일이다.

▲ 낙남정맥 표지판
▲ 낙남정맥 등산길을 알리는 리본들

 선들재 주변엔 남남정맥을 표시한 나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지나간 흔적도 리본으로 남아있다. 고개를 넘어서면 곤명면 신흥리 만지마을이다. 멀리 지리산 능선이 보인다. 곤양면 사람들이 완사장을 보러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 곤명면 신흥리 만지마을

 사천만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나 파래, 조개 등의 해산물과 모시를 팔러 가던 고개다. 어릴 적에 들었던 증조 할머니 말로는 여우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올라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게를 고정시켜 놓으면 여우가 몰래 다가와 지게를 흔들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1천년 전 역사가 함께하는 선들재길... 옛날의 운치가 사라지기 전에 한번쯤 걸어볼 만한 길이다.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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