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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항에서 /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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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등록일
2013-01-05 11:56:17
조회수
8531
삼천포 항에서



빈 호주머니 속 시린 손을 넣고
몇 푼의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배를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오지 않는다.
부두에는 작은 배들 속에 작은 깃발만이
파도위로 불어대는 바람에 함성처럼 날리고
갈매기는 불 꺼진 등대위에서
야윈 낙엽같이 졸고,
눈이 내리려는지 바다는
화톳불에 타다 만 몇 조각 장작처럼 식어
깃 틈 사위로 스며드는 냉기에
촉촉이 젖은 외로움에
동여맨 가슴을 더더욱 쓰리게 한다.
거리의 빈 술병들이
스산한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세월만큼 굽은 손수레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파도는 잊혀진 이름들을 호명하듯
한숨 같은 담배연기 속에 작은 순간들을
하나둘씩 넉넉한 바다 위로 그려낸다.
'그래, 지금은
고등어 한 마리와 한 병의 소주를 들고
그리움을 찾아 호젓한 술집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녹슨 젊은 날의 노래를 부르자 구나'
추위에 지친 듯 느린 마지막 밤배에
보내는 애절함도 흑백 같은 낡은이별도 없이
비틀거리는 몸을 실었다.
몇 잎의 낙엽 같은 등불을 달고
뱃고동을 울리며 삼천포항을 한참을 떠난
마지막 밤배는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희미해져 가는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잡고
차마 나는 어둠속에 일렁이는 파도위로
소리 없이 눈물 한 줌을 던져주었다.
(2000.1월 삼천포항에서 기환)
작성일:2013-01-05 11:56:17 121.135.2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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